선진국의 역모기지 대출과 같아…실제로는 매달 이자 내는 ‘대출’일 뿐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남는 시간을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고민은 어떻게 생활비를 조달하느냐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연금이다. 매달 꼬박꼬박 현금이 지급되는 연금이 있다면 행복한 노후가 반쯤은 보장된 셈이다. 결국 ‘연금’이라는 단어는 은퇴를 앞둔 계층에게는 로망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 당국에서는 ‘주택연금 3종 세트’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다.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모은 재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 고령층들에게 연금 형식으로 생활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동안 매달 일정액을 수령하는 상품이다. 사망 시점에 집값이 남아 있다면, 다시 말해 집의 가치에 비해 수령한 연금 총액이 적다면 자식에게 상속할 수도 있다.
서울시 중구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연금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 중구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연금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수입 없는 고령층에 희소식

주택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연금 형식으로 매월 일정액을 수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집을 팔면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첫째는 주거 문제다. 집을 팔아도 어디에선가 살아야 하는데, 월세로 살려면 자가로 사는 것보다 주거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전세로 살아도 녹록하지 않다. 2년마다 전셋값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는데, 수입이 없는 고령층으로서는 인상분을 마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금의 운용이다. 집을 팔아 목돈을 만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정작 본인이 필요한 것은 매월 일정액이 나오는 것이지 목돈은 아니다. 물론 은행에 넣어 두고 매월 얼마씩 인출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저금리 상황과 돈 가치 하락을 감안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다.

자식에게 집 판 돈을 다 증여하고 매달 얼마간 생활비를 타서 생활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의 결과는 좋지 않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자식과의 관계는 더 나빠지기도 한다.

그 차액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더 싼 주택으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래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과 주거의 질이 점점 나빠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이 때문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이 주거의 질을 낮추지 않고도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이런 제도가 한국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지 오래된 금융 상품이다. 역모기지 대출(Reverse Mortgage Loan)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내 집 마련이 한국보다 이른 편이다.

대출한도(LTV)가 한국보다 높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전에는 집값의 95%까지 대출이 가능했고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 규제가 강화된 지금도 집값의 85% 정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구입 자금을 대출로 조달하기 때문에 집을 사는 데 큰돈이 들어가지 않지만 전체 생활비 중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주택 담보대출 상환이다.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면 보통 30년 정도 후에 대출을 다 갚게 된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그 집의 소유권이 100% 본인에게 넘어 오고 그때는 은퇴가 가능한 것이다. 그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 대출을 신청하면 사망에 이를 때까지 일정액을 받을 수 있다.

이때 매달 고정 액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일시불이나 라인 오브 크레디트(Line of Credit) 방식으로 받을 수 있다. 라인 오브 크레디트는 한국의 마이너스통장이라고 보면 된다. 자금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한도 내에서 꺼내 쓰고 자금이 생기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

노후라도 다른 수입이 있는 사람은 이 방식이 유리하다. 통장에 여유 자금이 있는 것처럼 안심하고 노후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출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 언제나 쓸 수 있는 비상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역모기지 대출이 주택 담보대출과 다른 점은 일정한 연령층 이상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 신청 대상이 62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주택연금은 선진국의 역모기지 대출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연금으로 부르는 이유는 연금에 대한 수요층의 로망을 자극해 수요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명확히 말해 주택연금은 대출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는 주택연금으로 받은 돈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다른 연금 혜택이나 의료 보장 혜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연금과 다른 이런 점을 주택연금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주택연금의 본질이 대출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자기 집을 담보로 이자를 내고 대출을 받는데, 거기에다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 내수 활성화 위해 적극 홍보

그러면 이 시점에 정부에서 역모기지 대출을 주택연금이라고 부르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수 경기 활성화에 그 목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일부 금융회사에서 100세 시대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고령층에서는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위기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충분한 금융자산이 없는 상태에서의 은퇴라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자식에게 부양의 책임을 지우기도 어려운 세상이 됐기 때문에 은퇴 세대 또는 은퇴를 앞둔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절약뿐이다. 문제는 이것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내수 침체의 한 원인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다른 계층보다 고령층의 소비 심리 위축이 컸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구원투수가 바로 주택연금이다. 자산의 대부분이 몰려 있는 주택을 유동화해 소비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후 빈곤 문제 해결과 내수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늘어나면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홍보 효과가 확산된다. 본인이 지금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무 때나 가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에서 주택연금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주택연금이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제도는 연금이 아니라 대출이다.

자기 집을 담보로 이자를 부담하면서 돈을 빌려 쓰는 제도라는 뜻이다. 매달 이자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 금융회사의 컴퓨터에는 매달 꼬박꼬박 이자가 계산되고 있다. 그리고 본인 사망 시 정산되는 것이다. 연금을 타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받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택연금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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