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서비스 이어 음원·헤어숍 앱서 충돌…확산되는 ‘모바일 영토 전쟁’
네이버와 카카오가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두고 신규 사업에서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왜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지 알아봤다.네이버는 국내 포털 1위 사업자지만 모바일 시장에서 만큼은 카카오에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다. 네이버는 이제 더 이상 모바일 사업을 카카오에 내주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다.
반면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점차 플랫폼 사업자로 발전해 나가는 모양새다. 카카오는 콜택시인 ‘카카오택시’와 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 등 잇단 신규 서비스를 내놓으며 시장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2015년 12월 기준 카카오톡 국내 가입자는 4000만 명을 넘어섰고 카카오는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네이버 역시 온라인 시장의 자본과 영향력이 모바일로 차츰 옮겨감에 따라 그간 소홀했던 모바일 시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SDS 입사 동기 … NHN에서 한솥밥
네이버와 카카오가 모바일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두 기업은 처음부터 ‘적군’은 아니었다. 네이버 이해진,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한때 동료이자 사업 파트너로 절친한 사이였다.
이해진·김범수 의장의 인연은 지금부터 30년 전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1986년 서울대에 입학하며 첫 인연을 만들었다. 이 의장은 컴퓨터공학과, 김 의장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김 의장이 이 의장보다 한 살 더 많았지만 재수를 해 둘은 서울대 86학번 동기가 됐다.
이후 이 의장은 카이스트에서, 김 의장은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한다. 둘의 인연은 끝난 듯 보였지만 운명적이게도 두 사람은 1992년 삼성SDS에서 다시 입사 동기로 재회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김범수 의장이 1998년 ‘미션넘버원’이라는 PC방을 창업하며 퇴사했고 둘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 의장은 퇴사 후 차린 PC방에 전 재산과 사채까지 끌어들여 2억4000만원을 투자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당시 PC방은 모두에게 생소한 곳이었기 때문이 이처럼 거금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김 의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그의 손에는 5000만원의 수익이 쥐여졌다.
김 의장은 같은 해 11월 PC방 관리 프로그램과 장기·고스톱 등 보드게임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결정하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하 한게임)’을 설립했다. 한게임은 김 의장의 예상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때마침 스타크래프트 등이 히트를 치면서 PC방이 급증했고 김 의장은 이 기회조차 놓치지 않았다. 늘어나는 PC방에 무료로 PC 관리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는 대신 한게임을 첫 화면으로 사용하도록 해 트래픽과 이용자를 빠르게 늘려 갔다.
반면 이해진 의장은 1997년 삼성SDS 사내 벤처 ‘네이버포트’에서 사업을 준비하다가 1999년 ‘네이버닷컴’을 출범시킨다. 하지만 이미 국내 검색 시장은 야후·라이코스·다음·프리챌 등 굵직한 인터넷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의장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한게임에 합병을 제안해 2001년 9월 NHN을 탄생시킨다. 당시 네이버는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고 한게임은 회원 증가는 빠른 반면 당장 서버와 기술 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력이 부족했다. 이후 NHN은 ‘지식인(in)’을 내놓으며 게임보다 검색 광고에서 더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NHN이 성장하는 사이 한게임에서 합류했던 인원들은 대거 회사를 이탈했다. 이어 김 의장마저 회사를 떠나면서 이해진·김범수 의장의 사이가 틀어진 것 아니냐는 뒷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NHN을 떠난 김범수 의장은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한다. NHN 지분을 정리한 비용으로 여러 사업을 준비했지만 이미 온라인 시장은 굵직한 기업들이 모두 서비스를 선점해 이마저 쉽지 않았다.
이때 김범수 의장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아이폰’이다. 이전 국내시장은 윈도 기반의 삼성 ‘옴니아’가 첫 대중 스마트폰이었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이 때문에 국내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늦어졌다. 그러던 중 2009년 KT 이석채 전 회장이 아이폰 도입을 결정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아이폰의 등장과 스마트폰 대중화는 김범수 의장에게 기회가 됐다. 김 의장은 국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사업을 고심하다가 ‘왓츠앱’을 떠올렸다. 김범수 의장은 이를 모티브로 삼아 카카오톡을 만들기로 결정한다(왓츠앱은 2016년 1월 기준 10억 명이 가입한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다).
◆‘인터넷 공룡’ 네이버, 모바일에선 카카오에 밀려
돌아온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의 라이벌전은 이맘때부터 본격화됐다. 카카오가 빠르게 국내 모바일 시장을 잠식해 나가자 네이버도 민첩하게 대응했다. 이해진 의장은 2007년 인수한 벤처기업 ‘첫눈’ 개발자들이 만들어 낸 ‘라인’을 2011년 6월 일본에 출시했다.
국내시장은 이미 카카오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라인은 태국·대만·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등에서 사용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 가입자가 6억 명, 월간 활성 사용자가 2억150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성장했지만 국내 가입자는 카카오톡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네이버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뛰어들어 카카오를 위협한 것과 달리 카카오는 포털 시장을 넘볼 여력이 없었다. 이미 포털 사업에 뛰어들었던 파란·야후·라이코스 등도 네이버에 밀려 사업을 접거나 매각될 정도로 네이버의 지배력은 확고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인수하면서 카카오도 네이버가 가진 포털 검색 시장을 공격할 발판이 마련된다.
광고 시장과 트래픽을 두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점차 경쟁하는 일이 잦아졌다.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페이(Pay)’ 시장이다.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를 출시하며 맞붙었다. 모바일 서비스의 최종 서비스 종착역이 결제라는 점 때문에 두 기업은 이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먼저 카카오가 ‘뱅크월렛카카오’와 ‘카카오페이’를 선보였고 이어 네이버가 ‘네이버페이’를 출시했다. 뱅크월렛카카오는 송금과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담았다. 카카오페이는 신용카드 등을 미리 등록해 결제할 수 있는 간편 결제로 네이버페이 역시 이와 같다.
서비스 출시는 카카오가 빨랐지만 성과는 네이버가 앞섰다. 카카오페이가 2014년 9월 출시됐고 9개월 뒤인 2015년 6월 네이버페이가 공개됐다. 네이버페이가 뒤늦게 시장에 진입했지만 이용 금액과 건수는 카카오페이보다 높았다.
네이버페이는 2015년 12월 기준 가맹점 수가 8만5000여 곳, 월 거래액은 2000억원을 넘었다. 누적 결제 건수도 같은 기간 카카오의 5배가 넘는 6500만 건을 기록했다. 반면 카카오페이는 같은 기간 누적 결제 건수가 1300만 건에 불과했다. 가맹점 수도 약 800곳으로 네이버보다 적었다.
‘페이 전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네이버는 온라인에 머무르던 네이버페이 사용처를 오프라인으로 확대하고 신한카드와 함께 ‘네이버페이 체크카드’도 지난 4월 4일 출시했다. 이 체크카드는 사용처에 관계없이 네이버페이 포인트가 1%, 월 최대 1만원까지 적립된다.
네이버 최진우 페이셀장은 “네이버페이 체크카드는 사용자 경험 확대는 물론 적립된 포인트를 통해 네이버페이 가맹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몰 비즈니스 사업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페이 가맹점 중 90% 이상이 월 거래액 3000만원 미만의 중소 사업자다.
카카오는 이보다 앞선 4월 1일 신한카드와 함께 ‘카카오페이 신한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카카오페이 카드 결제를 이용하면 온라인 쇼핑에서부터 항공·여행·뷰티·도서·영화 등 생활 전반의 카카오페이 가맹점에서 10% 할인을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류영준 카카오 핀테크사업총괄 부사장은 “카카오페이 신한체크카드는 카카오페이 청구서, 카카오택시 블랙 등 카카오의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결제 시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이번 상품은 특히 카카오 특유의 디자인 감성을 표현하고 있어 많은 고객에게 어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모바일 시장에서 신사업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네이버는 사내 벤처를 활성화해 신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하는 정책을 세우고 CIC(Company-In-Company) 제도를 통해 사내 독립 기업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또 사내 벤처의 성장 가능성이 확인되면 별도 법인으로 분사를 장려하고 있다.
반면 카카오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성장 찾기에 더욱 집중할 방침이다. 카카오는 최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운영사 ‘로엔엔터테이먼트’와 내비게이션 김기사 운영사 ‘록앤올’을 인수했다. 이들 기업의 인수 금액은 각각 1조8700억원, 626억원이다.
◆이해진 ‘자체 개발’ 김범수 ‘M&A’ 선호
이처럼 네이버와 카카오의 신규 사업 전략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이는 서비스 제공 방식에서도 두드러진다. 네이버는 신규 서비스를 별도 애플리케이션(앱) 대신 기존 앱에 포함해 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카카오는 각 서비스마다 개별 앱을 별도로 이용하도록 하는 전략을 택했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서비스가 많은 반면 카카오는 벤처기업 M&A로 서비스를 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출시될 ‘헤어샵 예약앱’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됐다. 네이버는 기존 ‘예약 서비스’에 헤어샵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방식을 택한 반면 카카오는 ‘카카오헤어샵’ 앱을 별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헤어샵 앱은 카카오톡 사용자의 주변 미용실을 위성항법장치(GPS) 기반으로 검색·예약·결제까지 진행할 수 있는 서비스다. 또 카카오헤어샵을 이용하면 그동안 입소문에만 의존했던 미용실 정보를 보다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전화 예약이 아닌 앱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를 선택, 결제할 수도 있어 편리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6조원대의 미용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존 헤어숍 솔루션 제공 업체를 인수하거나 협업하고 있다. 이미 기존 시장 지배 사업자들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편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먼저 네이버는 ‘핸드SOS’와 함께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핸드SOS는 전국 4000개의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는 미용실 고객 관리 프로그램 운영 업체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자회사로 편입한 하시스의 ‘헤어짱’ 가맹점(9000개)을 기반으로 서비스에 나선다. 가맹점 수에서 2배 이상의 열세를 가진 네이버는 무료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카카오가 예정 중인 가맹점 최초 가입비 5만원과 매월 2만원의 이용료를 면제한다. 또 결제 수단별 수수료 외 모든 수익을 점주에게 돌아가도록 설계해 사업 초기 가입자 확대를 최우선으로 삼을 예정이다. 반면 카카오는 초기 비용과 월 사용료 이외에도 결제 금액의 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는 정책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 두 기업을 보는 정보기술(IT) 업계의 시각은 차갑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가 신규 사업을 하면 네이버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고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방식의 경쟁은 두 기업은 물론 전체 모바일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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