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요즘 일본에선 전용면적 30~50㎡대의 초소형 아파트가 붐이다. 도심 역세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콤팩트 맨션’의 급부상이다. 콤팩트 맨션은 전용면적 40㎡ 정도의 공동 집합 주택을 뜻한다. 한국식으로는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 혹은 초소형 아파트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출 건 다 갖췄다. 당장 독립 공간인 방이 2개다. 예전이었다면 원룸 형태의 독신자 전용 규모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3인 가족의 최저 공간이 60㎡라는 업계 공식이 깨졌다.
40㎡인데도 3인 가족이 너끈하고 쾌적하게 생활한다. 공간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넓은 수납 배려는 필수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최소화하고 사용 효율을 극대화한 집약 공간인 셈이다.
분양 업계에 따르면 콤팩트 맨션은 인기 절정이다. 수도권 신축 맨션이 연간 8만 호 초과 공급을 보였던 최근 10년간 콤팩트 맨션의 점유율은 10%에 불과했지만 신축 맨션이 지금은 4만 호로 줄어든 가운데 이 중 15%가 콤팩트 맨션이다. 축소 와중의 비중 증가란 점에서 이례적인 인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수요는 다양화된다.
과거 콤팩트 맨션은 그 이미지에 걸맞게 싱글 가구, 딩크(Dink)족 혹은 자녀 출가 후의 고령 가구 등 최대 2명 정도의 수요에 맞춰졌었다. 시장 자체가 작았던 것이다.
그랬던 게 3인 거주마저 가능해지면서 최근에는 1~3인의 가족 모델 전체를 흡수하는 유력 상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지금은 좁아도 자녀와 함께 살거나 출산 계획이 있는 가족까지 잠재 수요로 가세했다.
그 덕분에 발매 즉시 완판 기록을 세우는 히트 상품이 됐다. 지으면 팔려 나가는 속도에 업계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콤팩트 맨션의 기획은 대형 건설사의 중대형 모델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던 중견 업계에서 나왔다. 작지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반대로 좁은 공간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mm 단위까지 낭비하지 않는 효율 극대화에 사활을 걸었다. 부지 면적에 제한이 많고 땅값이 비싼 도심부에 게릴라식으로 소규모 공급 체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재건축은 물론 잔존하는 유휴 토지가 업계로서는 우군이다.
40㎡에 방이 2개인 콤팩트 맨션의 관건은 역시 독립 공간의 확보 여부다. 집이 좁을지라도 방만큼은 양보하기 힘든 현대 가족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 냈다. 이 때문에 개체화된 가족생활을 반영, 방의 크기보다 방의 숫자를 고집한다.
실제로 업계의 잠재 고객 관련 마케팅을 보면 소구 대상은 청년 시절부터 도심 생활에 익숙한 현역 커플이 주력이다. 도시 생활의 쾌적성과 최적화를 알기에 자녀 출산 이후에도 계속해 살려는 동기가 강하다. 자녀 양육과 교육 환경을 생각하면 도심 지향은 더더욱 그렇다.
핵심은 거실과 자녀 공간을 구분하는 벽이다. 이를 필요 여하에 맞춰 움직이게끔 했다. 자녀 독립 후를 감안, 넓은 거실로 되돌릴 수 있는 설계다. 도심에 살고 싶고 방마저 갖고 싶다면 평수는 양보할 수밖에 없다. 책은 도서관에서, 냉장고는 편의점에 기대면 된다는 실리 강조도 포인트다.
◆‘역에서 5분 거리’ 필수 조건
좁은 만큼 가격 부담이 작다. 젊은 맞벌이 부부라면 도전해 볼 수 있는 가격대다. 물론 입소문이 퍼지면서 갈수록 가격은 상승세다. 예전엔 3000만 엔대(평당 약 300만 엔)를 넘기면 팔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지금은 4000만 엔을 웃도는 물건까지 있다.
덩달아 입지적 다양성도 강화된다. 과거 도심 한복판의 핵심 권역 위주로 지어졌던 것에서 최근에는 부심의 환승 역세권은 물론 상업 시설 완비 여하에 따라 건설 반경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공통분모가 있다. ‘역에서 5분 거리’의 역세권 여부다.
신축 선호가 유독 높은 일본이지만 콤팩트 맨션은 역세권이면 중고 물건조차 크게 밀리지 않는다. 오래됐어도 거리만 가깝다면 사겠다는 응답이 최근 6년간 10% 포인트 늘었다(SUUMO 설문 조사).
콤팩트 맨션의 선호는 당분간 지속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느닷없이 나온 선호가 아니란 게 이를 뒷받침한다. 즉 콤팩트 맨션은 2000년대 도심부를 중심으로 확산된 협소 주택 붐의 연장선에 있다.
당초의 단독주택에서 지금의 공동주택으로 콤팩트의 활용 여지가 확대 적용된 셈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와 달리 과도한 소유욕을 내려놓고 가능한 한 짐을 줄여 살려는 청년 인구의 미니멀리즘과 일맥상통한다. 경제력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내려놓는 삶의 확산 기대다.
일각에서는 넒은 의미에서 거주 모델의 미래상으로 콤팩트 맨션을 지목한다. 콤팩트 맨션이 주목 받는 건 행복했던 과거의 거주 모델로 회귀하려는 동기와 연결된다는 해석이다.
실제 콤팩트 맨션의 원조는 개발 경제가 한창이던 1950~1960년대의 공영주택(40㎡ 이하)이며 당시 이곳이 샐러리맨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점이 근거다. 과도한 분석이긴 해도 일정 수준만 넘어서면 물질적인 소유 여부와 행복 정도가 무관하다(행복의 역설)는 점에서 낭설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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