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인맥⑨ KT그룹]

삼성 출신 반도체 전문가, KT에 ‘혁신 DNA’ 이식

황창규 KT 회장, '황의 법칙'부터 '기가토피아'까지
KT가 변화하고 있다. 황창규 회장 취임 이전 적자를 내던 기업 구조는 흑자로 돌아서 영업이익 ‘1조클럽’에 가입했고 통신 산업과 관계없는 계열사 정리를 통해 산업 집중화도 이뤄냈다.

또 ‘기가토피아’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글로벌 기가토피아’ 전략을 통해 전 세계 통신 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 통신 역사 131년을 써 내려온 KT가 황창규 회장과 함께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문가가 ‘공룡’ 통신 기업 KT를 변화시키고 있다. 취임 당시 황창규 회장은 반도체 전문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통신 기업인 KT 회장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황 회장이 KT에 심은 ‘삼성 DNA’는 2년이 지난 지금 KT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KT는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KT는 2018년 평창에서 세계 최초의 ‘5G 올림픽’을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업체들과 협력 중이다.

◆ 2014년 취임 후 흑자 전환 이끌어

황 회장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 출신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을 거쳐 1989년 삼성반도체 DVC 담당으로 입사, 2009년까지 20년간 줄곧 삼성에서만 근무한 대표적인 ‘삼성맨’이다.

황 회장은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Hwang’s Law)을 제시했고 이 법칙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이론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황창규 KT 회장, '황의 법칙'부터 '기가토피아'까지
황 회장은 1994년 세계 최초로 메모리 반도체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라는 수식어도 달았다.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에 이어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2008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지냈다. 삼성전자에서 떠난 뒤에는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했다.

그러던 그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KT 회장에 올랐다. 당시 KT 회장에는 정치권 인사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하지만 KT 최고경영자(CEO)추천위원회는 2014년 황 회장을 추천했다.

KT CEO추천위원회 관계자는 “민간 기업 KT가 여전히 공기업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황 회장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추천 위원 다수가 황 회장이 KT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황 회장 역시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업무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글로벌 신시장을 개척했던 경험을 통신 산업으로 확대해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창의·혁신·융합의 KT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 회장도 KT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향후 혁신과 변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을 예고한 것이었다.

◆ 업계가 놀란 초스피드 구조조정

황 회장의 좌우명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다. 즉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길을 찾는다면 죽을 것이란 뜻이다. 황 회장은 2005년 4월 미국 전자산업협회 기술 혁신 리더상을 수상하면서도 “필사즉생 필생즉사로 전장에 나선 충무공처럼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황 회장은 이 같은 좌우명에 따라 취임과 동시에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발휘한다. 취임 당일 오후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를 단행해 전체 임원의 27%, 지원 부서 임원급 직책 50%를 축소했다.

또 취임 전 예고했던 것처럼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적 악화 등 KT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황 회장은 “그동안 KT는 경쟁사에 비해 지나치게 직원이 많아 인건비 부담이 컸다”며 노조의 반발에도 8000여 명의 직원을 명예퇴직시켰다.

이런 추진력에 통신 업계는 모두 놀랐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았지만 이처럼 빠르고 단호하게 진행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통한 내부 동요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황 회장의 추진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황 회장은 통신과 관련 없는 KT렌탈 등 17개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해 사업 구조조정과 실적 약화 요인을 없앴다. 이런 노력은 2012년부터 3년간 적자를 면하지 못했던 KT를 연간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복귀시키는 결과물로 돌아왔다.

KT는 연결 기준 2015년 매출 22조2812억원, 영업이익 1조2929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서비스 매출은 유선 사업을 제외한 전 분야의 성장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특히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무선 사업 부문은 7조370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선 서비스 매출은 롱텀에볼루션(LTE) 보급률 증가, 데이터 사용량 증가 ‘데이터 충전’과 같은 데이터 부가 상품 판매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3.4% 성장했다. 이는 가입비 폐지와 상호 접속료율 인하 등 기타 수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체 무선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황 회장은 취임 1년 8개월이 지나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금석위개(金石爲開)’에 빗대 KT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황 회장은 “절박한 마음으로 화살을 쏘니 단단한 바위를 뚫었던 것처럼 회사를 살리겠다는 KT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무선 사업에서 순증 1위(2015년 상반기 기준)를 기록하고 최근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유·무선 통신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선정됐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취임 이후 방만한 경영으로 지적받았던 KT의 조직 체계에 ‘삼성 DNA’를 이식하는 데 공을 들여 왔다. 특히 조직과 인사부터 ‘삼성식’으로 진행했다.

회장 비서실은 삼성 미래전략실과 유사하게 1, 2, 3팀으로 개편했고 삼성전자처럼 사내 방송을 강화해 의무적으로 방송을 듣게 했다. 기업의 방향과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황 회장은 취임 직후 요직에 삼성 출신도 적절히 배치해 ‘삼성 정신’을 전파했다. 김인회 삼성전자 전 상무(KT비서실장, 부사장), 최일성 삼성물산 전 상무(KT에스테이트 대표이사), 서준희 에스원 전 사장(비씨카드 대표)을 본사와 계열사로 불러들였다.

황창규(앞줄 가운데) KT 회장이 지난해 4월 25일 강원도 원주 KT리더십아카데미에서 열린 ‘그룹간 소통 강화와 성과 확대를 위한 워크숍’에서 그룹 임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해 9월 미래 전략 발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