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인사이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전 계열사 ‘비상 경영’ 선포}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모든 계열사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6월 21일 서울 중구에 자리한 NH농협금융그룹 본사에서 열린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날 김 회장은 NH농협금융지주의 전 계열사가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충당금 폭탄’에 위기 맞은 NH농협은행
(사진)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한국경제신문

NH농협금융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NH농협금융이 비상 경영 체제 모드로 전환하게 된 것은 최대 자회사인 NH농협은행이 지난해 4분기에 STX조선해양 사태로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2분기에도 대규모 손실을 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NH농협은행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인 조선·해운업 부실로 거액의 충당금을 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조선·해운업에 물린 여신 잔액은 약 7조6000억원(선수금 환급보증 포함)대에 달한다.

NH농협은행은 최근 ‘조선·해운 등 최근 NH농협은행 경영 현황’ 자료를 발표하며 “NH농협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공공성이 강해 시중은행들이 조선·해운업에 대한 여신을 털고 나갈 때 해당 산업이 지역사회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올 2분기에 1조원 규모의 충당금을 더 쌓기로 했다”고 밝혔다.

◆농협, 왜 위기에 봉착했나
‘충당금 폭탄’에 위기 맞은 NH농협은행
사실 NH농협은행이 해운업과 악연을 쌓게 된 것은 200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불어 닥쳤고 시중은행들은 이미 2008년 초부터 조선업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관련 여신 규모를 축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NH농협은행은 달랐다. NH농협은행은 오히려 2008년부터 기업 여신 확대에 나섰고 지금 문제가 된 STX그룹 여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던 시점도 이즈음이다.

NH농협은행이 다른 시중은행들이 조선업 여신을 줄이고 있는데도 조선업 여신을 대폭 늘린 것은 농협중앙회 신경분리(은행 부문인 신용사업과 유통사업인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가 본격화되면서 은행 부문인 신용사업의 몸집 불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NH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하기 직전인 2011년 말까지 NH농협은행의 자산 또한 눈에 띄게 늘어났다.
‘충당금 폭탄’에 위기 맞은 NH농협은행
당시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농협중앙회) 신용 사업을 지휘했던 이가 바로 김태영 신용사업 전 대표다. 2008년 7월 NH농협은행을 떠맡은 김 전 대표는 현재의 NH농협은행 부실을 키운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2013년 219개 농협 지역조합이 STX그룹 회사채에 3700여억원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는데, 이 투자는 김 전 대표가 신용사업 대표로 있었던 2010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STX그룹에 대한 NH농협은행의 무리한 투자의 배경에는 김 전 대표와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와 강 전 회장은 명지대 경영학과(야간) 동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이 여신 회수에 나선 시점이었는데 (농협은행은) 오히려 거꾸로 투자에 나섰다”며 “두 사람(김 전 대표와 강 전 회장)의 관계가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의 실적이다. 업계에서는 “금융 업황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인데다 농협은 하반기에도 쌓아야 할 충당금이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협중앙회에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명칭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부터 실적을 가로막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에도 명칭 사용료로 당기순이익(1763억원)의 1.7배에 달하는 3052억원을 농협중앙회에 지불했다. 올해 NH농협은행이 내야 할 명칭 사용료도 3155억원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NH농협금융지주와 농협중앙회의 힘을 합쳐도 어려운 시기인데 지금 분위기로는 (농협은행의) 실적 부진이 회복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