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인사이드]
삼성·교보·한화생명 “지급해야 하나” 장고…금감원은 강경 제재 입장
‘자살보험금’ 놓고 묘수 찾는 ‘생보 빅3’
삼성생명을 비롯한 교보생명, 한화생명의 '자살보험금 논란'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삼성생명 본사가 위치한 서초동 삼성타운.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를 두고 생명보험업계 ‘빅3’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월 28일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4개 생보사(삼성·교보·한화·알리안츠생명)에 대해 업계의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영업 일부 정지는 물론 보험업 인허가 등록 취소, 대표이사 해임 권고 등이 포함됐다.

이에 알리안츠생명은 지난 12월 5일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약 122억원 추산)을 결정하며 백기를 들었다. 삼성·교보·한화 생명은 현재까지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금감원은 당초 12월 8일까지 이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해당 업체들의 요청으로 소명 자료 제출 기한이 12월 16일까지 미뤄졌다. 유례없이 강경한 금감원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생보업계 빅3의 ‘버티기’가 길어지면서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약관과 다른 보험금 지급’

자살보험금 논란은 생보업계에서 10년 이상 지지부진하게 끌어 온 이슈다. 2000년대 초반 동아생명(현 KDB생명)과 ING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이 재해 사망 특약이 담긴 보험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재해로 사망할 시 보험금을 2~3배 더 주는 특약 상품을 내놓으면서 약관에 ‘가입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뒤 자살할 경우 재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당시 업계에 고질적으로 퍼져 있던 ‘약관 베끼기’였다. 당시 보험업계엔 일본 상품을 그대로 베끼면서 약관도 짜깁기하는 곳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국내 보험사는 일반 사망을 보장하는 주 계약 약관에 들어있던 ‘자살 관련 문구’를 재해 사망 특약 약관에 그대로 따서 썼다. 이후 2010년까지 경쟁사들이 같은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기 시작했고 약관 또한 아무런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다 썼다.

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자살의 경우 일반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약관을 개정했고 금감원도 2010년 표준 약관을 고쳤다. 하지만 약관을 개정하기 전까지 보험업계 전체에서 판매된 관련 상품은 무려 280만 건이었다.

해당 상품에 가입했던 자살 사망자 유가족들은 대부분이 이런 특약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고 보험사들 역시 슬그머니 이를 숨긴 채 ‘일반 사망보험금’만 지급했다. 2013년 금감원이 ING생명에 대한 종합 검사를 착수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ING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사들 역시 유사하게 대응해 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문제는 소비자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됐다.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의 법정 소송이 이어졌다. 지난 5월 대법원은 관련 소송에서 2010년 4월 약관 개정 이전에 판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기존 약관에 따라 ‘재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보험 가입자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또다시 복잡해졌다. 지난 9월 소멸시효 경과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이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보험사들은 자살 사망자 유가족들이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인 2년간 청구하지 않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을 얻은 셈이다.


◆ 교보는 일부지급, 삼성·한화는 검토

금감원은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약관을 지키지 않은’ 보험사들에 대해 제재 압박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빅3는 대법원 판결에 반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 경영진의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삼성생명의 재해 사망보험금 미지급금은 1585억원, 교보생명은 1134억원이다. 한화생명은 7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지연이자 포함)도 삼성생명 431억원, 교보생명 213억원, 한화생명 83억원이다.

금감원과 생보 빅3의 기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정작 생보사로서는 딱히 ‘묘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금감원은 앞서 자살보험금을 늦게라도 지급한 보험사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 경징계로 조치했다. 보험금을 지급하든지 징계를 받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는 계산기를 두드리기가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우선 빅3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약관과 다른 보험금 지급’에서 발단이 된 논란인 만큼 보험사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라이프·KDB 등 빅3를 제외한 생보사들이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선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렇다고 ‘백기 투항’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지급해야 할 자살보험금의 액수가 만만치 않은 데다 악재까지 줄줄이 겹친 상황이다. 2021년 도입을 앞두고 있는 신보험 회계기준(IFRS17)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 변액보증금(변액보험을 판매한 시점의 예정 이율보다 현재 투자수익률이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매년 준비금으로 적립하는 것)의 규모가 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빅3는 소명 자료 제출을 연기하며 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사안이 워낙 크다 보니 다양한 방안을 열어두고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12월16일 제출한 소명 자료에 '자사 보험금 일부 지급' 입장을 밝혔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지급을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확실한 입장표명은 내놓고 있지 않다.

금감원은 빅3가 제출한 소명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내년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최악의 경우 금감원의 제재 수위가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보험사들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보험사가 금융 당국과의 갈등이 장기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 갈 것이란 전망이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