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전경련 '존폐 기로' : 허창수 회장의 깊어지는 고민 ]
재계 “후임자 찾기 위해서라도 구체적 쇄신안 서둘러야” 적극 행보 주문
허창수 전경련 회장, 해체 여론에 ‘임기’ 맞물려 ‘속앓이’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이끄는 허창수 회장(GS 회장)의 고민이 깊어만 가고 있다. 전경련의 주요 회원사인 삼성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경련 소속 그룹사들의 탈퇴 러시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12월 6일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한 9명의 총수 중 6명이 해체에 반대하면서 쇄신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는 모양새다. 전경련 해체 질문을 받은 허창수 회장은 “어떤 의견이 있나 들어보고 각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경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판단하겠다”고 말한 것 역시 성급한 해체보다 신중한 선택을 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을 2011년부터 이끌어 오고 있다. 2년 임기인 전경련 회장을 이번 임기까지 3연임하고 있다. 물론 3연임이 허 회장의 의지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회장 임기 불과 3개월 남아

허 회장의 별명은 ‘재계의 신사’다. 별명답게 허 회장에 대한 재계 내·외부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치밀하고 격식보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맡기는 성격의 소유자다. 중요한 사안만 큰 흐름과 방향을 제시할 뿐 나머지는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넘기는 스타일이다. 전경련 운영 역시 허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실무를 맡아 움직여 왔다.

GS그룹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고 오너 일가의 공동 경영 체제도 잡음 없이 순항하고 있어 정치권에 특별히 기댈 일이 많지 않은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GS그룹은 미르재단에 26억원, K스포츠재단에 16억5000만원을 냈지만 대가성을 기대하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전경련이 나서면서 동참했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 때문에 허 회장은 다른 총수들과 달리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연임한 것은 본인이 욕심을 부렸다기보다 재계의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허 회장은 전임자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하면서 2011년 2월 전경련 회장에 올랐다.

당시 전경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했지만 이 회장이 고사하고 나머지 후보들 모두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회장 모시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허 회장도 애초엔 고사했지만 전경련 원로들이 뜻을 모아 추대하면서 결국 떠맡게 됐다.

허 회장은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의 연임은 불가하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하지만 차기 회장 선출에 또다시 그룹 총수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허 회장 주도로 전경련의 조직 쇄신안이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전경련은 이미 지난 11월 정기 회장단 회의를 한차례 건너뛰었다. 전경련 정기 회장단 회의가 2개월마다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 회의 일정은 1월이다. 현실적으로 1월 회의에서 차기 회장은 물론 구체적 쇄신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허 회장이 어쩔 수 없이 또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 회장이 후임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며 그냥 물러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이다.

◆재계 “최소한의 ‘액션’이라도 보여달라”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허 회장이 새 회장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경련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허 회장이 이대로 물러나면 전경련 개혁은 온전히 후임 회장의 과제가 된다.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부담이다. 이제까지 후임자를 찾지 못한 허 회장의 후계자 찾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전경련의 수장 공백이 드문 일은 아니다. 허 회장 역시 2011년 조석래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난 뒤 7개월의 공백을 깨고 회장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재계의 위상이 탄탄했다.

하지만 지금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비리 수사 등이 이어지며 재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이 수장 공백을 맞는다면 주요 경제 현안을 놓고 재계는 주도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

보다 ‘적극적 역할론’은 최근 허 회장과 전경련의 행보에 대한 불만도 일부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기업들이 ‘피해자’인지 ‘공범’인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

그래서 600여 회원사를 가진 전경련이 기업들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고 최소한의 ‘바람막이’가 돼 주길 기대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참에 ‘양심선언’과 함께 ‘클린 경영’을 선포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데 기업이 앞장서겠다는 선언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그간 기업의 유·불리를 떠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는데도 경제 단체 ‘맏형’으로서 단 한 번도 공식 입장 발표가 없었다. “수사 중인 사항이라 먼저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이 같은 허 회장과 전경련의 ‘침묵 행보’는 지금까지 전경련을 이끌었던 고(故)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 조석래 회장 등이 “할 말은 한다”며 제 목소리를 냈던 것과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허 회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정조사와 특검 등에서 정경유착을 놓고 강도 높은 메스를 들이댈 것으로 보여 전경련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며 “결국 허창수 회장이 변화의 단초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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