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099호 (2016년 12월 21일)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

기사입력 2016.12.19 오후 02:55

[커버스토리 = 전경련 '존폐 기로' : 출구전략은]
정책 대안 제시에 주력…‘헤리티지재단’은 美 공화당의 대표 연구소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

(사진) 헤리티지재단 전경.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삼성 등 주요 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재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들은 전경련이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개편하여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12월 6일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로 운영하고 재계 친목 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연구 기관이다. 미 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민주당 계열의 브루킹스연구소와 함께 미국의 양대 연구소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으로 영향력 커질 듯

이 재단은 1973년 2월 공공정책 연구 기관으로 조지프 쿠어스 쿠어스맥주 사장의 재정 지원을 받아 미국 의회 보좌관이었던 에드윈 퓰너 설립자와 폴 와이릭 등 젊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설립됐다.

40여 년간 지속된 민주당의 정계 주도와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대(對)민주당 타협 노선에 반발한 이들은 자유기업, 제한된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강한 국방 등 ‘진정한 보수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헤리티지를 출범시켰다.

헤리티지재단은 정치·경제·안보·외교·복지 등을 포괄하는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2005년부터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온 토마스 선더스 회장(선더스카프&메그루 창립자)이 이끌고 있고 200여 명의 연구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재단은 주로 국방 강화, 미국 이익 방어, 복지 축소, 기업 활동 보장 등 보수적 정책 연구는 물론 유엔과 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회원국들에 관한 연구에 주력한다. 특히 아시아연구센터에서 한반도 문제를 주로 취급하는데, 북핵 문제와 관련해 무력 제재 방안을 제기하는 등 강경 노선을 견지해 왔다.

헤리티지재단이 부상한 시기는 1980년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당시 이 재단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1주일 만에 1000여 쪽에 달하는 ‘리더십을 위한 위임령(Mandate for Leadership)’을 제안했다. 이 보고서에는 총 3000건에 달하는 개혁안이 담겨 있는데, 이 가운데 60% 정도가 레이건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됐다.

이 밖에 레이건 시대의 대표적 방위 구상인 이른바 ‘스타워즈(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 계획을 추진한 전략 방위 구상도 헤리티지재단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서구 동맹 체제의 공고화 이론 등도 모두 헤리티지재단을 중심으로 고안된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레이건 이후에도 미국 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공화당 정부 때 영향력이 컸다. 2001년 출범한 조지 W. 부시 정부도 이 재단의 연구 결과를 정책에 많이 반영해 왔다.

실제로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중에는 학자보다 공화당의 정치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2007년 부시 당시 대통령이 마이클 뮤케이지 법무장관 후보를 지지하는 헤리티지재단을 방문했는데, 며칠 뒤 그가 법무장관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는 헤리티지재단에 대해 진정한 연구 단체라기보다 정책 홍보 단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반면 민주당 시기에는 영향력이 약화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오바마 케어, 최저임금 인상 등 주요 정책에 대해 정부와 반대편에 서며 다소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4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내놓은 ‘글로벌 싱크탱크 보고서’에서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내 9위의 싱크탱크로 평가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이 다시 미국 정부의 핵심 싱크탱크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에드윈 퓰너 설립자가 트럼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해 다수의 인사가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다.

퓰너 설립자는 최근 화제가 된 트럼프 당선인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통화를 막후에서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한 것은 대만과 단교한 지 37년 만에 처음이다.

대표적인 연구물은 매년 월스트리트저널과 공동으로 정부 규제로부터의 자유 및 자산 가치의 관점에서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IEF)다.

이 지수는 정부의 부패지수, 무역 장벽, 소득세율 및 법인세율, 정부 지출, 법률과 규제의 정도, 계약 이행률, 은행 규제, 노동 법규, 지하 시장 자료와 연계해 발표된다. 이 재단은 또 연 4회 발행하는 ‘인사이더(The Insider)’를 통해 공공 정책에 대해서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


◆‘싱크탱크 전환’은 재정 투명성 있어야

하지만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기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재정의 투명성과 독립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헤리티지재단은 예산의 대부분을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매년 지출액보다 많은 기부금이 들어와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지난해 후원금은 모두 8912만 달러로 전경련 1년 수입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경련의 수입은 기업들이 내는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부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 그만한 규모의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운영할 만한 자체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돈을 내는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설령 싱크탱크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55년간 전경련이 맡아 온 핵심 기능 중 하나인 ‘정부 등을 상대로 한 재계 입장 대변’ 기능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다른 경제 단체와 통합해 ‘새 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경련의 역할에 한계가 온 만큼 아예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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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12-20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