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099호 (2016년 12월 21일)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기사입력 2016.12.19 오후 05:37

[커버스토리 = 전경련 '존폐 기로']
‘최순실 사태’에 난타당한 전경련…“변해야 산다”는데 회원 의견 수렴도 어려워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사진)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격랑에 휩싸였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 모금을 주도했다는 의혹과 일부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경련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야권과 시민 단체 일부에서 들고 나온 전경련 해체론에 여권과 회원사들까지 동조하는 분위기다.

지난 12월 6일 ‘최순실 국정 농단 국회 국정감사 청문회’에 출석했던 주요 대기업들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공식화한 데 이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마저 탈퇴를 결정했다.

전경련은 앞으로 해체 혹은 해체에 준하는 수준의 축소·쇄신 작업이 불가피하게 됐다.

◆ 도화선 된 청문회 ‘전경련 잔혹사’

전경련은 재계 총수들이 불려나간 국회 청문회 직후 비상이 걸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비 납부 중단과 탈퇴 방침을 밝혔고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총수는 손들라는 요구에 최태원 SK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손을 들지 않으면서 전경련은 순식간에 주요 회원사들의 이탈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강하게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힌 것이 직격탄으로 다가왔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수차례에 걸쳐 “전경련을 탈퇴하고 기부금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전경련 해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그는 “전경련 해체는 삼성이 독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탈퇴는 하겠다”고 못 박았다.

삼성전자의 탈퇴는 전경련에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전경련 회원사 중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회비도 가장 많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탈퇴하면 전경련 위상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전경련 연간 운영 예산은 400억원 수준인데, 삼성을 포함한 5대 그룹이 내는 회비가 약 200억원에 달한다. 만약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모두 빠진다면 전경련의 존폐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기업 총수들은 탈퇴보다 개선의 의지가 강했다.

최태원 회장은 “전경련이 변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역시 “전경련의 변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이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되 재계 친목 단체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총수들이 이처럼 전경련에 대해 탈퇴 또는 개선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정치권과 시민 단체 등에서 전경련 해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 3당은 “청와대를 등에 업은 심부름꾼에 불과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번에 열린 청문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총수들에게 전경련 해체와 탈퇴를 반복적으로 질타했다.

◆전경련 회원사 의견 수렴 난항

전경련은 부랴부랴 주요 회원사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쇄신안 마련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다.

실제로 전경련은 12월 15일 오전 7시 30분께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30대 그룹 회원사들을 상대로 쇄신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당초 계획은 10대 그룹과 회장단사를 중심으로 한 의견 청취였지만 주요 그룹들이 최근 불거진 전경련 해체론에게 부담을 느껴 참석을 고사하자 비공개 모임으로 전환하고 30대 그룹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물론 취재진에게 간담회 시간과 장소도 공개하지 않았다.

10대 그룹 중 허창수 GS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GS그룹을 제외하고 참석을 공개한 곳은 LG밖에 없을 만큼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이 상당한 분위기다. 삼성·현대차·SK·롯데·포스코·한화·현대중공업·한진 등 8개 그룹은 불참했고 LG는 부사장급 간부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을 제외한 회장단 중에서도 금호아시아나와 코오롱 등 2곳만이 사장급 임원을 회의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대림산업·삼양사·이건산업·풍산·동부·두산·동국제강·종근당 등은 불참 또는 참석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참석률로 볼 때 사실상 이번 간담회는 참석률이 너무 낮아 관련 의견 취합이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불참한 한 회장단 관계자는 “최근 해체 여론에 직면한 전경련 관련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경영진이 당분간 분위기를 살피기로 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사진) 전경련 전경. /한국경제신문

◆ 떨어진 위상…총수들 발길도 뜸해져

하지만 이번 전경련 회장단사의 간담회 불참이 꼭 현재의 불편한 시선 때문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미 전경련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그룹 오너들도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거나 거리를 두고 있다.

이번 간담회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전경련 회장단 회의엔 30대 그룹 오너 경영인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 회장을 맡겠다는 이가 없어 총수 구인난마저 겪는 실정이다.

2010년 7월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32대 전경련 회장에서 사퇴한 이후 7개월간 회장이 공석인 적도 있었다. 이후 회장직에 오른 허창수 회장은 2011년부터 3대째 계속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단 회의가 총수 대신 기업 임원들로 채워지면서 ‘전경련 사무국의 관료화’ 비판도 제기된다. 전경련이 회장단이 아니라 상근부회장 중심의 사무국 주도 체제로 바뀌면서 모금 창구 역할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의 현 상황은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같은 곳의 기금 모금이나 하는 역할에 매몰돼 있다”며 “전경련 본연의 취지를 살린 사업 목적을 바탕으로 한 인적 구성과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내부 결속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 ‘쇄신이냐 해체냐’, 내년 2월 결론

일단 전경련은 내년 2월 정기총회 이전에 향후 진로에 대한 결론을 낼 방침이다.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변신에 대한 주문 수위가 높은 만큼 조직 목적과 구조, 인적 요소까지 다 바꿔야 할 분위기다. 한국경제연구원과 통합을 통한 싱크탱크로의 변신하는 것도 쇄신안의 범위에 포함돼 있다.

다만 전경련 쇄신이나 변신이 해체로 귀결될지는 불투명하다. 전경련 정관에는 해산과 관련한 근거 규정이 아예 없다. 정관은 1961년 만들어진 뒤 몇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각종 조항이 미흡하고 모호한 표현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해산하려면 사단법인을 규제하는 민법 규정을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

민법 78조에 따라 전경련은 회원사의 75%가 찬성해 자발적으로 해산하든지 아니면 민법 38조에 근거해 사단법인 설립 허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설립 허가를 취소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것도 예단할 수 없다.

우선 회원사 75%의 찬성을 얻어 자진 해산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SK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현대차·LG·롯데 등 다른 대기업들은 전경련 해체에 반대한다는 뜻을 보였다. 싱크탱크로의 변신도 꼭 해산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다. 조직 성격과 구성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또 산업부 명령에 의한 해산도 ‘공익적 목적에 비춰 도저히 존속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상황에서만 발동될 수 있는 강제 조항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산업부가 전경련 해체 요건에 대한 법리 검토에 착수한 것도 실제 명령 발동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전경련의 변화를 압박하는 카드로 이해하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전경련의 존속 여부는 해체 압박을 물리칠 정도의 고강도 쇄신안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cwy@hankyung.com

['위기의 전경련'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 '존폐 기로'에 선 전경련
-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 삼성·SK·LG 이어 은행까지 '탈퇴'
- 허창수 전경련 회장, 해체 여론에 '임기' 맞물려 '속앓이'
- 경제 초석 다지고 경제성장 발판 마련
- '회장단 20인'엔 재계 총수들 대거 포진
- 600여 개 회원사 둔 순수 민간단체
- 9대 정권과 함께한 전경련 55년史
-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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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12-20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