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시설에 새로운 가치 부여해 매력적인 서비스 제공
‘체감형 VR방’으로 여는 2017년
(사진) 서울 강남역에 있는 VR 기반의 복합 문화 공간 ‘VR 플러스 쇼 룸(PLUS Show Room). /한국경제신문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테크놀로지와 관련해 올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미디어를 꼽자면 단연코 가상현실(VR)일 것이다.

가상현실은 2017년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현재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사례를 통해 2017년 한국의 가상현실 산업을 예측해 본다.

먼저 아케이드 게임장, 즉 오락실의 변모다. 약 20년 전만 하더라도 동네 곳곳에 있었던 오락실은 PC방의 인기와 함께 쇠퇴의 길을 걸었다. 콘솔 게임과 모바일 게임 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이제는 오락실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가상현실에 대한 인기는 다시 아케이드 게임장의 부활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이미 ‘VR방’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게임물 등급 문제 때문에 확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법적 문제 해소로 2017년부터는 많은 곳에서 VR 게임을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VR방 원조 ‘제로 레이턴시’

세계 최초의 VR방은 2015년 8월 호주 멜버른에서 개장된 ‘제로 레이턴시(Zero Latency)’의 VR방이다. 동시에 6명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이 VR방은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방과 다르다.

백팩 형식으로 제작된 컴퓨터와 연결된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팀 동료들과 함께 직접 이동하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멜버른을 시작으로 일본의 도쿄,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플로리다에 설치됐다. 내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등 전 세계 곳곳에 확대 설치될 예정이다.

제로 레이턴시의 VR방이 사용자가 마음껏 움직이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살렸다면 상하이에 있는 ‘스타 코어(Star Core)’는 전통적인 오락실의 모습을 한 VR방이다. 고정된 장소에서 특정 VR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타 코어는 앞으로 도시 곳곳에 설치될 VR방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제공되는 가상현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360도로 회전 가능한 의자에 앉아 360도 환경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 행동 인식 센서를 통한 사용자 움직임 기반의 가상현실, 조이스틱을 활용한 슈팅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이 세 종류의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는 대규모 VR방에서 한꺼번에 제공하거나 아니면 각각의 가상현실을 소규모 VR방에서 제공하는 식으로 동네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초기 대규모 투자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위의 세 종류 중 하나만 제공하는 식으로 범용 VR룸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 개인 구매 어려워 VR방 더욱 인기

VR방이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가상현실 기기가 개인이 구매하기에 고가라는 점에 있다. 가상현실을 제대로 즐기려면 PC 기반의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가 66만원(599달러), HTC 바이브가 88만원(799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콘텐츠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카드(GPU)를 장착한 컴퓨터도 필요하다. 즉, HMD와 함께 컴퓨터도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 사양의 컴퓨터 가격이 최소 200만원 정도 들기 때문에 가정에서 가상현실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가상현실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기기가 단지 HMD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VR방이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다. 컨트롤러라고 불리는 액세서리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고성능화될 것이기 때문에 비용의 문제가 생긴다.

또한 버추(Virtuix)에서 만든 버추 옴니(Virtuix Omni)나 사이버리스(Cyberith)에서 만든 버추얼라이저(Virtualizer)처럼 바닥에 러닝머신(treadmill)과 같은 달리기 장치를 설치할 경우 몰입감이 높아지지만 가격 부담도 심해진다. 기기의 가격도 비싸지만 이를 사용하기 위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VR방이 요구되는 이유다.

다음은 테마파크다. 테마파크에서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방법과 새롭게 가상현실 전문 테마파크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새롭게 가상현실 전문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은 초기 비용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기존 시설을 활용해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테마파크에서 활용할 수 있는 VR 경험 중 가장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가상현실이 적용된 롤러코스터다. 가상현실을 롤러코스터에 적용한다는 의미는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에 따라 HMD에서 보는 가상현실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롤러코스터가 위에서 아래로 하강할 때 HMD에서도 마찬가지로 떨어지는 환경이 제공돼야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경사지며 올라가면 영상에서도 동일한 환경의 영상이 제공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롤러코스터의 전체 경로를 정확하게 가상현실에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단순히 영상을 제공하는 것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 영상을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결국 사용자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상을 제공할 때 어떻게 스토리텔링할 것인지가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에 있는 유로파 파크(Europa Park)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롤러코스터로, 2015년 9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주목 받지 못했다. 전체 경로를 가상현실에 적용해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까지는 성공적이었지만 롤러코스터의 즐거움을 영상에서 구현하지 못했다. 결국 콘텐츠가 탑승객을 유혹할 만큼 정교하지 못해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이다.
‘체감형 VR방’으로 여는 2017년
(사진) ‘코리아 VR 페스티벌 2016’에서 관람객들이 영상 제작 전문 업체 상화기획이 개발한 ‘로봇VR’을 이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 곳곳에 가상현실 롤러코스터

가상현실 롤러코스터로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의 유명 테마파크인 식스 플래그스(Six Flags)다. 이곳은 특히 다양한 롤러코스터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올해 삼성의 기어VR을 롤러코스터에 부착해 ‘더 뉴 레볼루션(The New Revolution)’이라는 이름의 가상현실 롤러코스터를 만들어 큰 관심을 끌었다.

100m가 넘는 트랙 길이에서 회전과 뒤틀기 등 다양한 방식의 레이싱을 통해 가상현실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상현실의 내용은 미래의 도시에서 외계인이 도시를 침략하는 이야기로 설정돼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 동안 마치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과 싸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는 애틀랜타·텍사스·로스앤젤레스 등 9개 도시에 설치를 완료했고 내년에는 멕시코에 있는 식스플래그스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영국의 알톤 타워(Alton Towers)도 갤럭티카(Galactica)라는 우주여행 롤러코스터를 운용하고 있다. 우주여행을 하며 행성을 탐험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경험하는 움직임이 가상현실 환경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치하게끔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삼성의 기어VR을 활용하고 있다.

VR방과 달리 롤러코스터에 삼성 기어VR을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삼성 기어VR이 모바일 기반 HMD라는 점 때문이다. 소니 PS VR처럼 콘솔 시스템이나 오큘러스 리프트처럼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다.

모바일 기반 VR의 한계가 고성능의 가상현실 환경 재현이 힘들다는 점인데, 롤러코스터에 적용함으로써 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 기어VR은 기기에서 자체적으로 가속센서·자이로센서·나침반센서·근접센서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성능 면에서도 뛰어나고 머리를 움직일 때 영상이 늦게 따라와 발생하는 문제(head tracking latency)도 해결할 수 있어 더욱 적절한 기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례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결과는 전통적인 놀이기구가 기어VR이라는 새로운 기기와 만나 스토리텔링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새로운 기술만 제공된 것이 아니라 기존 시설도 기술과 스토리텔링 적용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설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와 콘텐츠는 2017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소개될 것이다. 소비자로서는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만큼 더욱 즐거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소비자 친화적인 미디어 환경, 적절한 가격과 서비스로 가상현실 경험을 제공한다면 2017년은 국내에서 가상현실 콘텐츠를 수익화할 수 있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