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자사 물량만 취급하도록 한 ‘해운법 개정안’ 발의
해운업계가 ‘일감 몰아주기’ 반기는 이유
(사진) 지난 2월 3일 부산항신항 한진해운 컨테이너터미널의 모습.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해운업계가 대기업 물류 자회사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업계는 최근 발의된 해운법 개정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개정안이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독’이 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을 대표로 16명의 의원들이 서명한 해운법 개정안이 2월 9일 입법 발의됐다.

이 개정안은 대기업의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속하는 회사로 통지된 화물운송사업자(국제물류주선업자 포함)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 이외의 사업자와 해운법에서 정하는 해운중개업, 물류정책기본법에서 정하는 국제물류주선업 등의 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전체 수송 물량에서 자사 물량의 비율을 30% 이하로 낮춰야 한다. 남은 자리를 외부 물량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횡포’를 부려 중소 물류사와 국적 선사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주장이다.

선주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 7대 물류 자회사가 처리한 수출 컨테이너는 611만 개로, 총 수출 물동량 컨테이너 732만 개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또 같은해 7대 물류 자회사가 취급한 764만 개의 수출입 물량 중 자사 물량은 287만 개로, 37.6%에 그치고 나머지 62.4%는 제삼자 물량으로 나타났다.

해운업계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일감 몰아주기로 확보한 물량을 기반으로 체력을 키워 제삼자 물량을 저가에 빼앗는 횡포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입찰 참여 선사들 간 무한 경쟁 유도, 할증료 전체를 운임에 포함하는 총비용 입찰 강요, 수송 계약 체결 후 빈번한 재협상을 통해 운임 인하를 강압하는 악습을 시행하고 있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들은 자사의 물량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소 물류사들보다 유리한 자리에 서 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수송할 수 있는 계열사 관련 물량을 30%로 제한했지만 외부 물량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갑질’이 행해진다고 해운업계는 주장한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중소 물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가 해운업계엔 독이 됐다”고 지적했다. 향후 선주협회는 정치권과의 연대를 통해 개정안 통과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예정이다.
해운업계가 ‘일감 몰아주기’ 반기는 이유
◆시장가격 무시한 운임 제시로 ‘골머리’

국내 대기업들은 제조 계열사와 물류 계열사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선사와 물류 회사들에 화물을 맡기는 화주 ‘삼성전자’와 함께 물류 전문 계열사인 ‘삼성SDS’도 운영한다.

LG의 범한판토스, 롯데그룹의 롯데로지스틱스 등이 대표적 물류 전문 계열사다. 넓은 범위에서 볼 때 이들은 ‘화주’인 동시에 ‘수송인’인 셈이다. 선사와 중소 물류 기업들이 대기업에 쩔쩔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단 물류업계만 아니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많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 물류 계열사들도 내부 거래 비율을 차차 줄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수송 전문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의 내부 거래 비율은 2012년 60%에 육박했지만 2015년에는 43%로 감소했다.

이와 함께 물류사의 지분도 정리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4년부터 오너가의 지분이 30%가 넘는 상장 계열회사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올리고 있다.

이러한 기조 때문에 대기업 물류 계열사들은 외부 물량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선사와 중소 물류 업체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선주협회가 밝힌 대기업 물류 계열사들의 ‘갑질’ 수법에는 원하는 운임을 선사가 제시할 때까지 수차례 비딩 진행하기,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운임을 주지 않고 강요해 선사에서 운임 조건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임 조건 제시로 물량 입찰 경쟁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사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시장가격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이러한 기준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물류 시장의 형태로는 세계적 물류 기업을 키우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물량을 확보해야 물류사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물류사가 모그룹 계열사의 물량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구조로 세계 물류사와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국내 해운 물류 시장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며 비판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