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인사이드]
‘빅 배스’ 후 실적 회복에 연임 청신호…금융권 “중앙회 판단이 키포인트”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올해를 재도약 원년 삼겠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재도약의 원년’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2017년 한 해 농협금융지주의 방향을 이같이 정했다.

지난 1년간 조선·해운업계의 부실 여신 여파를 해결하느라 전사적 경영을 단행했다면 올해는 위기 극복에서 벗어나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오는 4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둔 김 회장의 연임 여부다. 금융권에선 김 회장이 지난해 비상 경영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 만큼 연임의 청신호를 켰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인선까지 아직 한 달여가 남은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비상 경영으로 위기 돌파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여부를 평가하는데 가장 우선시되는 부분은 실적이다. 김 회장이 이끈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상반기 조선·해운업계의 부실 여신 여파로 2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하반기 5200억원대의 당기순익을 올리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누적 손실을 특정 회계연도에 몰아 한꺼번에 정리하는 회계 기법인 ‘빅 배스(big bath)’ 전략을 쓰면서 비상 경영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누적 당기순이익은 2016년 말 기준으로 3210억원(이하 ‘농협중앙회에 지급하는 농업 지원 사업비 제외’)이다. 이는 전년도 순익과 비교해 20.2%(813억원)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강타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부실 규모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분석이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올해를 재도약 원년 삼겠다”
계열별로 보면 농협금융의 최대 자회사인 농협은행이 조선·해운업 부실에 대한 충당금을 쌓으면서 지난해 상반기 329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비상 경영을 통해 연간 기준으로 111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전년보다 37% 정도 줄어든 규모이지만 흑자를 냈다. 은행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4조3821억원으로 전년보다 3.7% 늘었고 대출 자산 또한 201조9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1.5% 증가했다.

증권과 보험 계열사의 희비는 엇갈렸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9.8% 늘어난 2361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타 금융지주 내 증권사보다 견고한 실적을 달성했다. 반면 보험 계열사인 농협생명과 농협손해보험은 운용 자산 수익률 감소로 하락세를 탔다. 이들의 순익은 각각 7.8% 줄어든 1545억원, 6.4% 감소한 353억원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농협금융지주의 비상 경영 체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은 올 한 해 경제와 유통 부문을 연계한 ‘범농협’의 시너지 강화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목표치는 당기순이익을 6500억원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최근 각 자회사를 직접 방문해 경영 전반을 점검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 한 해 미국의 금리 인상, 트럼프노믹스, 국내 가계 부채 문제 등 대내외 경영 여건이 불확실한 만큼 연초부터 손익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김 회장은 이 회의에서 각 자회사에 ▷지주와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 ▷신상품 개발 및 계열사 간 투자 연계 영업 ▷지주와 계열사 담당자로 이뤄진 실무 협의체 구성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회 의중, 관전포인트"

문제는 오는 4월 28일 임기 만료를 앞둔 김 회장의 연임 여부다. 그가 진두지휘하는 비상 경영 체제의 향방은 3월 중순 이후 열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 회사 정관에 따르면 최고경영자 임기 만료일 40일 전까지 임추위를 열고 경영 승계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임추위는 3명 이상의 사외이사와 2인 이내의 사내이사 또는 비상임이사로 구성되며 이곳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사 중에서 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

금융권에선 김 회장의 연임 여부가 농협중앙회의 의중에 달렸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거 농협금융 수장의 인선에는 정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금융 당국의 의사를 중요시했지만 최근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의 조직 장악력이 높아지면서 중앙회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병원 회장은 지난해 7월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된 이후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친정 체제 구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중앙회에 힘을 싣고 있다. 불투명한 정치 상황에 따라 김 회장 외의 차기 회장 후보군도 안갯속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에서 농협금융 차기 회장에 대한 하마평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금융지주의 향후 중·장기 전략을 차질 없이 이행하려면 후임자 물색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며 “김 회장과 중앙회와의 관계가 연임의 키포인트가 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