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사이드]
저금리 대출 유혹 ‘비트코인’ 요구…비트코인거래소 ‘허술한 본인 확인 절차’ 노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를 악용한 ‘신종 사기 수법’이 등장했다. 핵심은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자 금융 사기에 주로 이용되는 대포통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대포통장 대신 비트코인을 거쳐 돈을 빼내가는 수법이다.

피해 사례가 급증하면서 금융 당국도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이 4월 1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1월부터 3월까지 접수된 비트코인 관련 사기 피해 사례는 20여 건, 피해 금액은 1억1600만원에 달한다.

◆대포통장 막으니 ‘비트코인’ 으로

“OO은행입니다. 저금리 대출 필요하신가요.”

‘경찰청인데요’로 시작되는 기관 사칭형 보이스 피싱이 최근 ‘대출 권유형’으로 둔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신고된 보이스 피싱의 69.8%가 바로 이와 같은 유형이었다.

수법은 간단하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서민 금융 상품’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겠다며 대출 수요가 있는 소비자들의 급박한 상황을 악용하는 것이다.

대출을 미끼로 소비자들을 꾀어내는 데 성공한 이들은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저금리로 전환대출을 받게 해줬으니 수수료를 지불하라’, ‘모바일로 대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전산 작업비용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보이스 피싱 사기범들은 이 과정에서 그간 대포통장을 사용해 소비자들로부터 돈을 갈취해 왔다. 금융 당국은 2012년 ‘대포통장 근절 대책’을 발표했고 통장을 빌린 사람뿐만 아니라 빌려준 사람에게도 처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부터 통장 매매 광고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아예 쓸 수 없도록 이용 중지 제도를 시행함에 따라 대포통장을 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300만원 이상의 금액이 송금·이체돼 현금으로 입금되면 현급자동입출금기에서 10분간 인출이 지연되는 ‘인출지연제도’도 대포통장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보이스피싱을 '비트코인'으로?
이에 따라 사기범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비트코인’이다. 최종천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수석조사역은 “대출을 빙자한 사기 유형이 많지만 비트코인을 이용한 것은 신종 수법”이라며 “특히 올 들어 이와 같은 피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실태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동전이나 현금처럼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실제 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화폐로서 사용 가치가 올라가면서 비트코인 가격 역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종합비트코인가격지수(KOBIC)에 따르면 4월 20일 기준 1비트코인의 가격은 142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서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비트코인은 간편하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데다 최근 시세가 치솟으면서 이를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이와 같은 사기범들은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구매 후 영수증 ‘핀번호’ 표적

피해자 A 씨는 햇살론과 같은 정부 정책 상품으로 대환대출(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뒤 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을 안내해 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A 씨가 이를 수락하자 상대방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과거 연체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해 보낼 것을 요구했다.

상대방은 A 씨를 편의점으로 먼저 유인했다. 이곳에서 24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 선불카드를 구매한 뒤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선불카드를 구매하고 받은 ‘영수증’을 찍어 사기범에게 전송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기범은 A 씨에게 “비트코인은 온라인상에만 기록돼 있는 코드이기 때문에 금전적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이후 사기범은 A 씨가 보내준 영수증을 통해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취득한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금융감독원의 불법금융대응단에서 파악한 실제 피해 사례다. 최 수석조사역은 “이렇게 갈취한 비트코인은 대부분이 해외 송금 서비스를 통해 중국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을 '비트코인'으로?
현재 국내 편의점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탑이다. 두 회사는 비트코인 거래소 코인플러그와 제휴하고 있다.

편의점 점원에게 비트코인 선불카드를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면 판매 정보 관리 시스템(POS)을 통해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충전해 준다. 구매 완료 후 영수증을 건네받게 되는데, 이 영수증이 곧 비트코인이나 마찬가지다. 영수증에 적혀 있는 ‘핀번호’가 바로 비트코인을 교환할 때 사용하는 비밀번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기범들은 핀번호만 있으면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교환할 수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코인플러그 관계자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 본인 확인 인증 절차를 강화했다”며 “현재는 이동통신사를 통해 실명 인증을 거쳐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트코인 거래 후 인출 가능한 현금액도 하루 10만원으로 제한했다.

최 수석조사역은 “비트코인 거래소들이 장기적으로 건전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 같은 피해 사례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비트코인’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