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격전지는 ‘포스트 차이나’ 베트남…‘탈중국 러시’ 이어지며 ‘새 개척지’ 찾아라
세계지도에 깃발 꽂는 K-은행
[한경비즈니스 = 정채희 기자] ‘40개국, 178개.’ 세계지도에 꽂힌 국내 은행의 깃발 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11개 국내 은행은 아시아·유럽·북미 지역 등 40개 국가에 사무소·지점·법인의 형태로 해외 점포 178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2011년 131개에서 5년 새 47개 증가한 것이다. 전년(2015년)보다 1년 새 8개 더 늘었다.

은행들의 해외 진출은 새로운 성장 엔진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저성장·저금리로 예대마진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 주요 은행들은 해외 진출을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화두로 꺼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2017년 저성장·저금리 시대의 파고를 넘기 위한 최고경영자(CEO)들의 첫째 키워드 역시 ‘해외’다.

차이점은 있다.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1번지로 통했던 중국을 대신해 동남아시아가 주역으로 떠올랐다. 최근엔 서남아시아와 중남미 등 제3세계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자산 전문가와 은행이 군침을 흘리는 금싸라기 땅은 어디일까.

①중국
부진한 실적에 ‘탈중국’ 가속

“지금 은행들이 골머리예요. 장사도 안 되고 어떻게 나올지 고민 중이죠.” 한때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1번지로 여겨졌던 중국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에 중국 법인의 부진한 실적이 더해지면서 국내 은행의 탈(脫)중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표도 이러한 현상을 보여준다. 2016년 말 중국 내 국내 은행 11곳의 해외 점포는 총 15개다. 2008년 23개에서 2010년 18개, 2014년 15개로 줄어든 이후 3년째 신설 점포가 없다.

중국이 은행의 관심사에서 제외된 이유는 부진한 수익성이 가장 크다. 2000년대 중·후반 성장 기대감에 시중은행을 비롯해 특수은행·지방은행 등이 앞다퉈 중국에 진출했지만 시장에서의 주류 진입은커녕 당기순익이 급감하며 저조한 경영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 한국계 은행의 2016년 말 기준 총자산 규모는 235억5000만 달러(약 27조원)로 지난해 말보다 14.2% 늘었다. 이 기간 당기순익은 2200만7000달러(약 250억원)로 전년(2000만 달러)보다 8.2% 늘었다.

이 지표만 놓고 보면 ‘탈중국화’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2년 전 중국에서의 실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4년 중국에서의 당기순익은 1억500만7000달러(약 1191억원)로 2년 새 무려 78.5% 급감한 수준이다.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 등을 감안하면 중국에서의 철수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 대부분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해 철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세계지도에 깃발 꽂는 K-은행
②베트남
‘포스트 차이나’ 국내 점포 수 1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에 왕좌를 빼앗긴 지도 오래다. 베트남 내 국내 점포는 2008년 10개에서 꾸준히 세를 불리며 2014년 중국(15개)보다 3개 점포 앞선 18개로 1위에 올랐다. 2016년 말 현재 베트남의 국내 점포는 19개로 전체의 10.7%를 차지한다. 이어 중국(15개)·홍콩(11개)·인도(11개)·일본(8개) 순이다.

성적표도 중국보다 우수하다. 자산 규모는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당기순익은 2배다. 2016년 중국에서의 당기순익이 2200만7000달러(250억원)인 반면 베트남에서는 4700만3000달러(533억원)다.

이들 은행은 삼성·LG 등 국내 기업 3000여 개가 베트남 시장의 성장성에 기대 연이어 진출하자 국내 기업의 금융 수요를 잡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20~40대 젊은 소비층이 두터운 인구구조, 경제 발전과 함께 증가하는 소득수준 등으로 향후 가파른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베트남 시장에서 ‘K-금융’으로 늘어나는 현지 금융 수요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국내 주요 은행은 베트남 대도시인 하노이와 호찌민에 법인·지점·사무소를 열며 네트워킹 구축에 열을 올렸다. 특히 이 나라 남부 경제·교통의 중심지인 호찌민에만 신한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KEB하나은행·IBK기업은행·부산은행 등 9개의 국내 주요 은행(2016년 말 기준)이 몰려 있다.

③동남아
인도네시아·미얀마 경쟁도 본격

동남아시아에선 단연 베트남이 으뜸이지만 인도네시아·미얀마·캄보디아 등 기타 동남아 지역도 국내 은행의 주요 진출 무대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기반으로 동남아 시장에 ‘아시아 벨트’를 구축하고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다.

먼저 제2의 베트남으로 여겨지는 인도네시아는 2016년 기준 세계 26위 금융시장이다. 총 금융 자산액이 5058억 달러, 대출액 3347억 달러, 수신액 3607억 달러에 이른다. 이 시장에 진출한 국내 은행은 2016년 말 기준으로 신한은행·KEB하나은행·우리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5개 은행이며 총 8개 점포(현지 점포 6개, 사무소 2개)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국내 은행 해외 진출 점유율의 4.5% 수준이다.

이 중 KEB하나은행은 1990년 인도네시아에 첫 진출하며 현재 이용객 중 90% 이상이 현지인으로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평이다.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 중 가장 많은 지점 수를 보유하고 있고 신한은행은 현지 은행의 지분 인수 및 합병으로 현지화에 열심이다.

후발 주자인 IBK기업은행은 2018년 말까지 현지 은행 2곳과 인수·합병(M&A)을 완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NH농협금융 또한 올 3월 인도네시아 최대 은행인 만디리은행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미얀마 또한 국내 은행들이 군침을 흘리는 주요 무대다. 미국 경제 제재 조치가 풀리기 전까지 은행권 동남아 진출의 사각지대였지만 이후 연 8% 안팎의 고속 성장에 힘입어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은행·KEB하나은행·신한은행 등 8개사가 현지법인·지점·사무소의 형태로 총 12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④제3세계
중동·중남미 등 ‘금싸라기’ 개척

이 밖에 향후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는 이란 등 중동과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도 국내 은행들이 진출을 고민 중이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 시장도 이미 경쟁이 포화 상태여서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는 제3세계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포석이다. 사무소를 우선 설립해 지역 전문가들을 통한 시장조사를 한 후 선점 효과가 기대되면 지점 또는 현지법인을 세우는 식이다.

먼저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이란 테헤란에 사무소를 신설했다. 이 회사는 이란 진출을 통해 24개국 209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두바이·바레인지점과 함께 ‘중동 지역 금융 벨트’를 구축해 현지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에 원활한 금융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란 시장 개방 초기의 정치적인 리스크를 고려해 사무소 형태로 진출한 뒤 지점이나 현지법인 형태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에도 신한은행·KEB하나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4개사가 총 4곳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미국 등 북미 시장의 전진기지로 통하는 멕시코는 한국 기업의 집중 투자가 예상되는 곳이다. 특히 한·멕시코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금융 당국 간 우호적인 협력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국내 은행의 진출을 도왔다.

반면 기회의 땅에 투자했다가 U턴하는 곳도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2014년 당시 국내 은행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엔 리스크 관리의 어려움으로 투자를 망설이는 분위기다. 당시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고서를 내고 ‘아프리카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은행 상품 이용률 증가에 따라 현지 진출한 SC은행의 아프리카 지역 수익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16%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국내 대형 은행들의 진출을 적극 권장한 바 있다. 실제 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 코리아데스크를 설치하고 진출을 시도했지만 현지 사정상 수익, 리스크 관리 등의 어려움으로 최근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은행의 해외 투자처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저금리 시대는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 간 진입 장벽이 무너지고 정보기술(IT) 업체들의 도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발전 가능성이 남아 있는 ‘글로벌’에 대한 투자는 은행들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poof34@hanky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