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I 한세그룹]
한세그룹 2세들의 새로운 도전
한세실업, 엠케이트렌드 인수해 자체 패션 브랜드 확장 나서
글로벌 패션 리더 ‘나야 나’
(사진) 김동녕 한세그룹 회장. 1982년 한세실업을 설립해 국내 OEM·ODM 사업을 이끌어 왔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나이키·ZARA·H&M·갭(GAP)·무인양품…. 글로벌 패션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의 옷을 만드는 회사는 따로 있다. 국내 의류 수출 전문 기업인 한세실업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인 3명 중 1명은 한세실업의 옷을 입는다”는 광고 슬로건에 걸맞게 현재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와 월마트 등 세계적인 대형마트의 자체 상표(PB) 의류를 만들어 연간 3억 장 이상을 생산, 수출하고 있다.

한세실업의 2분기 실적은 예상치에 부합했다는 평가다. 한세실업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4010억원, 영업이익은 13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1.2% 감소했다.

부문별로는 달러 기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부문 매출액이 전년 대비 1% 증가하며 4개 분기 만에 역성장에서 탈피했다.

사실 현재 OEM 산업에 대한 업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 의류 소비 시장이 위축되고 브랜드의 재고 조정 또한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OEM 산업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의류 산업도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 미국 바이어들의 상황 역시 점차 개선되고 있다. 증권가는 35년간 적자 한 번 나지 않은 한세실업이 점진적인 회복 시그널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정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 유통시장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가속화되면서 제조업체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를 맞출 수 있는 역량과 설비가 갖춰져 있는 소수 업체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한세실업은 그 조건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 유통 확대로 짧은 기간 내에 새로운 제품을 납품하라는 ‘단납기 오더’가 OEM 업체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세실업은 단순한 하청 제조를 넘어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나서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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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M과 해외 법인이 핵심 경쟁력

1982년 11월 창립 이후 한세실업이 가장 주력하는 부문은 바로 ODM을 위한 연구·개발(R&D) 분야다. 초기에는 단순히 주문 내용에 맞춰 생산하는 OEM 방식이었다면 2001년 이후 디자인과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ODM 방식으로 전환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트렌드를 분석해 디자인을 제시하고 효율적인 원부자재의 수급을 가능하게 해 제품 생산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한세실업 R&D본부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창의적인 인재다. 한세실업의 R&D본부에는 본사 인원의 10%에 이르는 70여 명의 디자이너와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미국 파슨스, 이탈리아 마랑고니 등 해외 명문 디자인 학교 출신이다. 2008년 3월엔 미국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미국 현지인들로만 구성된 디자인사무소를 차렸다.

70여 명의 R&D 인력은 해외 유명 브랜드 수주를 위해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를 빠르게 분석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한세실업 본사에서 제작하는 샘플 의류만 매년 40만 장이고 제작된 샘플은 글로벌 의류 업체 의류로 생산된다. 한세가 디자인하고 생산한 제품 중 해외 유명 브랜드의 ‘올해 히트 상품’으로 선정된 사례도 있다.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래 시장에 대비해 시장 흐름과 바이어의 요구를 먼저 읽기 위해서다. 나이키·갭과 같은 세계 유수의 바이어들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경쟁력 때문이다.

한세실업의 또 다른 성장 배경에는 해외 법인이 있다. 한세실업은 해외 생산 기지로 생산과 수출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별 역할을 특화해 운영하고 있다.

한세실업 해외 법인은 현재 6개국 12개다. 베트남·인도네시아·과테말라·니콰라과·미얀마·아이티 등 높은 기술력과 저렴한 인건비를 갖춘 동남아뿐만 아니라 최대 수출국인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남미에도 공장이 있다.

특히 중미 니콰라과·과테말라 법인은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따라 대미 수출 무관세 혜택이 있어 대규모 물량을 발주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한세실업은 1988년 사이판에 첫 해외 법인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세계화의 길을 걸었다. 국내 제조원가가 상승하던 시기에 과감하게 해외 생산 기지로 눈을 돌린 전략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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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세실업 베트남 법인에는 1만95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세홀딩스 제공


그중에서도 2001년 진출한 베트남 법인은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업체 중 최대의 생산 시설로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불릴 정도다. 한세베트남은 한세실업 전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고 지난해 매출 1조3143억원 중 절반가량을 베트남에서 올렸다.

한세실업은 중·장기적으로 베트남 생산 법인의 매출 비율을 50%로 줄이고 인도네시아와 중남미 비율을 각각 25% 수준으로 끌어올려 ‘생산 거점 다각화를 통한 지속 성장’을 통해 2023년 3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2017년 10월게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소나피 공단에 자리한 2개 라인 규모의 공장을 인수해 한세실업의 차세대 생산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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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세실업 베트남 공장 직원들./ 한세홀딩스 제공

◆ M&A로 브랜드 파워 키우는 중

1982년 한세실업을 세운 김동녕 한세그룹 회장은 베트남·중국·인도네시아·캄보디아·니콰라과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생산 거점을 확장하고 2003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인수·합병(M&A)을 단행했다.

인수 대상은 인터넷 서점 예스24. 전자 상거래 분야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던 김 회장은 인수 후 2년 만에 예스24를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김 회장은 성장 중심으로 규모만 키워 오던 예스24를 인수한 이후 상품기획(MD) 체계를 도입해 매출부터 수익까지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또 도서뿐만 아니라 문화 포털 사업 구조 모습을 갖춘 지금의 예스24의 초석을 다졌다.

2008년 한세실업은 사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사업부문을 전담하는 한세예스24홀딩스(존속)와 의류사업부문을 전담하는 한세실업(신설)으로 인적 분할했다.

한세실업은 2009년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했고 현물출자 방식으로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로 편입되고 한세예스24홀딩스는 지주사로 전환됐다.

한세예스24홀딩스 이익의 대부분은 한세실업에서 나온다. 한세예스24홀딩스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한세실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69%, 95%로 이익의 대부분이 의류 수출 사업에 좌우되는 구조다.

한세실업은 단순 제조뿐만 아니라 염색·원단부터 유통까지 수직 계열화를 꾀하기 위해 섬유 전방산업 인수를 단행했다. 2013년 초 베트남 염색 공장 C&T비나를 인수해 면 원단에서 합섬 원단까지 생산 범위를 확장했다.

이에 따라 현재 원단 하루 생산량이 6만kg에 이르며 향후 20만kg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한 2014년 3월에는 원단 중개업을 하는 칼라앤터치를 설립해 C&T비나에서 생산한 원단을 타 OEM·ODM 회사에도 판매하고 있다.

작년에는 ODM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체 브랜드 강화를 통한 패션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내 토종 패션회사인 엠케이트렌드(현 한세엠케이)를 인수했다.

엠케이트렌드 인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한세엠케이의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2%나 껑충 뛰며 한세실업 매출의 견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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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 경영 본격화, 젊은 경영 기대

올해는 한세의 2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김 회장은 지난 3월과 7월 장남과 차남을 각각 대표 자리에 선임함으로써 경영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도서 유통 사업은 장남인 김석환(43) 예스24 대표가, 의류 제조 및 수출 분야는 차남인 김익환(41) 한세실업 대표가 맡게 됐다.

김석환 대표는 조지워싱턴대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7년 예스24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며 회사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후 상무이사에 올랐다.

회사 일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올해 대표직에 오른 그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매년 20% 이상씩 성장을 이끈 점, 업계 첫 모바일 커머스 애플리케이션 출시, 디지털 콘텐츠 개발 등에서 성과를 낸 점을 높게 평가 받았다.

김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종이책을 넘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콘텐츠 발굴에 앞장설 계획이다.

차남인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는 7월 각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아직 41세인 그의 젊은 감각으로 한세의 패션 브랜드 사업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김 대표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의류회사 아베크롬비에서 일하다가 2004년 한세실업에 입사했다. 패션연구개발(R&D)과 영업본부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쳐 누구보다 의류 유통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직원 교육을 중시하고 인재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세실업 자회사인 한세엠케이에 상무로 있는 막내 딸 김지원(36) 씨는 지난 8월 한세엠케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김 상무는 이화여대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2008년 예스24에 입사해 10년간 예스24의 도서와 기프트 상품, 패션 사업, 고객만족팀, 고객관계관리(CRM) 등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김 상무가 그룹 전체 사업군을 통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상무는 경영지원본부장으로서 한세엠케이의 마케팅과 경영지원 전반을 총괄하게 됐다. 한세의 세대교체에 대해 업계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유정현 애널리스트는 “모든 산업혁명이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젊은 조직이 된다는 것은 패러다임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그룹을 이끌게 된 2세들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