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왕초보자의 비트코인 이야기 : 비트코인 채굴]
강릉 암호화폐 채굴장 TRC 가보니…이더리움 가격 급등에 GPU 대란도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올 6월부터 PC 시장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RX580’, ‘GTX1060’ 등 일부 그래픽카드(GPU)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격 비교 사이트인 다나와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당시 라데온의 ‘RX580’ 판매량은 전 주 대비 280%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업계에서는 조용하던 PC 시장이 모처럼 들썩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많던 GPU는 다 어디로 갔을까.
광부로 변신한 엔지니어, '비트코인 채굴장'을 가다
(사진)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에 위치한 암호화폐 채굴장 TRC. TRC의 엔지니어들이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서범세 기자

◆이더리움의 폭등, GPU 대란

10월 10일,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에 있는 암호화폐 채굴장 TRC. 1층과 2층에 걸쳐 약 1000대의 암호화폐 채굴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상주하는 직원은 1~2명. 이마저도 없을 때가 있지만 기계는 TRC가 문을 연 2015년 이후 365일 24시간, 정전을 제외하면 멈춘 순간이 없었다.

“GPU 대란이 일었을 때는 정말 기계가 없어 못 샀죠. 그땐 우리도 꼬박 두 달을 기다렸어요.” 신명복 TRC 공동대표는 “지금은 가격이 많이 안정화됐지만 그때는 PC방에 들어가야 할 GPU까지 모조리 채굴에 끌어다 썼다”며 당시 GPU 품귀 현상을 설명했다.

“GPU를 보유한 PC방 점주들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암호화폐 채굴장으로 업장을 바꿨어요. 어떤 이들은 유휴시간에 채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용해 PC방과 채굴장을 겸업했죠.”

누군가는 200대를 갈아엎고 채굴장으로 전환했는데 'PC방 호황일 때보다 더 벌었다더라', 'PC방을 운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앉아서 6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영웅담처럼 들릴 때였다.

시장을 뒤흔든 범인은 바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다. 한 달 새 5배가 오른 비트코인 외에도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 암호화폐를 채굴할 수 있는 기계인 GPU가 불티나게 팔렸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이더리움은 올 초 10달러 선에 머물렀으나 4월부터 급등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6월 392달러까지 치솟았다. GPU의 품귀 현상 시기와도 일치한다.

GPU는 암호화폐 블록체인의 알고리즘을 푸는 실질적인 일꾼이다. 채굴에는 이 밖에 부품이 연결되는 기판인 메인보드와 전력을 공급하는 파워 서플라이 등이 쓰이지만 ‘수익’과 직결되는 것은 해시를 도출해 내는 GPU다.

◆IDC보다 7배 센 열기

TRC도 고성능 GPU를 이용해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생산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신 대표의 제안에 솔깃해 시작했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비트코인으로 전기요금이라도 건졌지만 다른 코인들은 무용지물이었죠. 그런데 비트코인의 채굴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채산성이 좋은 코인들을 찾다보니 이더리움을 선택했고 기회가 찾아 왔죠.”

이 회사의 경영을 총괄하는 문종혁 TRC 공동대표는 암호화폐의 회의론자에 가까웠지만 신 대표와 손잡은 이후 암호화폐의 예찬론자로 돌아섰다. 그는 “이더리움 가격이 안정기에 다다른 요즘에도 웬만한 금융 상품의 배 이상의 수익이 나온다”고 말했다.
광부로 변신한 엔지니어, '비트코인 채굴장'을 가다
신 대표와 문 대표는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현장을 채굴 환경에 최적화했다.

1000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낮추지 못하면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기기의 오류나 고장도 빈번해져 오히려 수익에 ‘마이너스’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산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선 냉방 전력의 효율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채굴 현장은 ‘전기 먹는 하마’로 잘 알려진 인터넷데이터센터(IDC)보다 7배 정도 열기가 세요. 채굴장 GPU의 열기는 섭씨 영상 60도를 넘나들죠. 이곳은 한여름에도 섭씨 영상 60도를 넘지 않도록 설계됐어요. 환풍 시설을 갖춰 차가운 바깥 공기를 내부로 끌어오고 방출된 열을 담아두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도록 공랭식 구조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실제 TRC에서는 미팅 룸 외에 에어컨 등 별도의 냉방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문 대표는 “채굴 작업이 상당한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열을 식히려고 냉방 시설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의 전기요금이 또 들어가 수익성이 맞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광부로 변신한 엔지니어, '비트코인 채굴장'을 가다
(사진) 문종혁(왼쪽), TRC 공동대표, 신명복 TRC 공동대표. /서범세 기자

◆“마이닝, 점점 더 대형화될 것”

중국 등 비트코인 채굴이 활발한 해외 국가 역시 산간 지역에 자리한 수력발전소 근처에 채굴장을 설립한다. 차가운 바깥 공기를 내부로 끌어와 전력 소모 없이 장비의 열을 식혀 주는 외기 냉방을 이용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채굴 업체들이 국가 소유의 수력발전소 옆에서 전기를 절도하는 황당무계한 사건도 벌어진다.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 소장의 책 ‘비트코인은 강했다’에 따르면 중국의 한 전력발전소에서는 2016년 5월 이후 생산된 전기의 97%를 잃어버렸다. 알고 보니 근처에서 몰래 채굴장을 운영하는 업체가 50개의 서버로 채굴하고 있었다. 지난 한 해에만 중국 정부가 신고한 ‘전기 절도’ 비트코인 채굴자만 77명이다.

국내에서도 전기요금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채굴 사업자들은 ‘서버 임대’, ‘서버 제조’로 사업을 등록한다. 신사업인 만큼 법적 규제가 따로 없어 산업용이나 농업용 전기가 아닌 일반 전기를 쓰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 채굴에 산업용 전기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채굴 현장에서 3년. 두 공동대표는 앞으로 암호화폐의 채굴 시장이 보다 더 대형화돼 개인 채굴자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 대표는 “채굴 기기가 많을수록 시너지 효과가 나는 구조”라며 “수천~수만 대를 운영하는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대형 업체에 개인은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도 이러한 길을 걸었다.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졌고 현재는 채산성이 낮아지면서 대형 채굴 업체(마이닝 풀)를 중심으로 채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채굴 방식의 변화도 소규모 채굴자에게는 좋지 못한 소식이다.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방식은 현재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작업 증명(Proof of Work) 방식에서 코인을 많이 오래 보유하도록 하는 지분 증명(Proof of Stake)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문 대표는 “6~7월은 황금기였다. 호황기가 다시 온다면 또 모를까. 규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 채굴 방식의 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인이 뛰어들기는 점점 더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그럼에도 개발 진행 상황과 POS 전환 시의 리스크 등을 계산했을 때 앞으로 몇 년 이상은 POS로의 급격한 100% 전향은 어려울 것”이라며 “채굴자(마이너)들은 단순히 ‘채산성’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보며 POW와 POS 방식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TRC는 보다 더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센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론 내년 ‘마이닝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마이닝 전문 인력을 양성해 마이닝 사업의 기업화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마이너들뿐 아니라 코인을 개발하는 개발자들과 거래소, 송금업체 등을 한데 모은 ‘마이닝 단지’를 만드는거죠. 해시의 집중화로 많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업화로 위탁과 투자 사업까지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TRC는 개인 마이너들을 위한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개인들이 다수의 컴퓨터를 메인PC에 연결해 관리하기 쉽게 만드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것이다. 이른바 ‘원클릭 원격제어 시스템’으로 채굴 과정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작업시간과 이에 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해 고정지출비용을 줄이는 솔루션이다.

신 대표는 “몇 시간 간격으로 채산성이 바뀌는데 기계마다 일일이 적용한다면 채산성은 나날이 악화될 것”이라며 “대규모 마이너뿐 아니라 특히 소규모 마이너 입장에서 채산성을 향상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트레이딩 마켓 예상 지표를 반영할 수 있어 지금처럼 (작업방식의 변화로)혼란스러운 시기에 마이너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 “왜 채굴이란 용어를 쓰나요?”

‘채굴(mining)’ 작업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처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 즉 암호화폐 시스템의 핵심이다. 설계자가 짜놓은 알고리즘에 따라 기존 거래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연산 작업을 해 비트코인을 취득하는 과정이다.

이는 비트코인의 개발자(혹은 단체)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이 코인의 전체 매장량을 2100만 BTC로 설정해 마치 유한한 금광을 캐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채굴이란 단어가 쓰였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람 혹은 단체를 채굴자(마이너)라고 일컫는다. 10월 10일 현재 1661만6013BTC가 채굴됐고 2140년 2100만 BTC가 모두 채굴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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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그래픽카드(GPU)나 전용 채굴기(ASIC)를 통해 복잡한 수학적 암호를 풀어 그 대가만큼 비트코인을 받는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연산 문제의 해결이지만 논리적인 수학 문제는 아니다. 0과 256비트 수 가운데 일부 숫자를 조합해 반복적으로 끼워 맞추다 보면 우연히 들어맞는 숫자를 찾는 방식이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