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종이 보증서’보다 더 강력한 ‘블록체인 보증서’…불법 암시장 몰아낼 것
블록체인이 다이아몬드를 빛나게 만든다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일찌감치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런 그가 최근 암호화폐의 익명성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마약이나 자금 세탁 같이 부정적인 용도로 쓰이는 데 익명성이 활용된다는 의미다.

2018년은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이 블록체인 산업의 플랫폼 표준화 경쟁에 뛰어든 글로벌 기업들의 오랜 노력이 가시화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 게이츠 창업자가 익명성과 비트코인 공개(ICO)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추구하는 신기술의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실마리다.

암호화폐의 익명성은 이중적이다. 블록체인은 투명성과 가시성을 보장하는 기술이다. 이와 같은 속성으로 게이츠 창업자의 걱정과 반대로 합법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블록체인의 순기능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업계는 바로 다이아몬드다.

순결과 영원성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보석이다. 아프리카 내전 국가의 전쟁 물자 조달, 거짓 분실과 같은 보험 사기, 절도와 사기와 자금 세탁의 온상인 암시장…. 다이아몬드 하나의 보석만 투명하게 유통해도 보험회사들은 1년에 5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색(Color)·투명도(Clarity)·컷(Cut)·캐럿무게(Carat weight)인 유명한 4C 외에도 크기·산지·가공회사와 같이 다이아몬드의 고유성을 확인하는 데이터가 40개나 된다. 다이아몬드는 모두 개별적인 특색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고귀하게 여겨진다. 이런 고유성 때문에 연인들의 보석이 될 수 있었다.

스타트업 에버렛저(Everledger)는 이미 120만 개의 다이아몬드를 블록체인에 올렸다. 블록체인에 등재된 다이아몬드는 고유성을 증명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가공 단계에서부터 에버렛저에 등록된다. 소유주가 바뀌면 새로운 소유주가 등록되고 에버렛저에 참여하는 보험회사도 소유주를 확인한다.

120만 개 다이아몬드 블록체인에 올라

고객이 다이아몬드를 분실하면 보험회사에 알리고 보험금을 수령한다. 보험회사는 문제의 다이아몬드가 분실된 다이아몬드라는 새로운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린다. 다이아몬드를 훔친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처분하기 위해 보석상에 가격을 의뢰한다. 보석상은 다이아몬드의 에버렛저 ID를 요구하지만 훔친 사람은 에버렛저에 등록된 다이아몬드가 아니고 종이 인증서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보석상은 자신이 파악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의 특성을 에버렛저에 입력하거나 해당 다이아몬드의 사진을 찍어 에버렛저에 문의한다. 에버렛저는 IBM의 왓슨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사진과 데이터를 분석해 해당 다이아몬드가 분실한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확인한다. 의뢰한 보석상에게도 정보를 알리면서 동시에 보험사와 경찰에도 통보한다. 다이아몬드 절도범은 잡히고 다이아몬드는 회수된다. 분실하지 않고도 보험금을 타려는 보험 사기도 비슷한 시나리오를 거쳐 덜미가 잡힌다.

에버렛저 같은 스타트업이 다이아몬드 블록체인을 독자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가공의 90% 가까이를 차지했던 드비어스의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다이아몬드 유통 채널이 다변화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비어스가 거의 모든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 나름대로 다이아몬드의 고유성이 확보됐다. 물론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이윤을 높이려는 독점기업의 이익 극대화 전략의 결과이기는 해도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을 그 누구보다 원하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절대 강자의 몰락으로 다이아몬드 시장은 불법적인 세력들이 자금 세탁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높였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를 블록체인에 올려 개별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법 자금의 경로를 차단해야 하는 정부들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직도 시장점유율이 30%인 드비어스 역시 독자적인 다이아몬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중소 유통 업체를 참여시키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위험하면서도 이로운 ‘혁신 기술’

업계 표준 플랫폼이 에버렛저의 블록체인일지,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블록체인일지는 시장 경합의 결과에 달렸지만 경쟁 때문이라도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대부분의 다이아몬드는 수년 내로 블록체인에 등록될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는 합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 다이아몬드는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무자료 다이아몬드를 위한 암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무자료 다이아몬드는 싸구려 가짜 다이아몬드와 구별하기 어려워 암시장은 교란될 것이다.

혁신 기술 그 자체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이츠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같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설립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미의 발언을 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위험하면서도 이로운 혁신 기술을 바라보는 개방적인 주류들의 시각을 대변하기도 하며 주류 기업들이 파괴적인 혁신 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중과 규제 당국자들에게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돋보기]
‘피의 다이아몬드’와 킴벌리 프로세스

다이아몬드 하나하나에 ID를 부여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도는 블록체인 전에 이미 시작됐다.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에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생산국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분쟁 지역에서 무장 단체나 반군들에 의해 생산되는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유통망에서 퇴출시킬 것을 결의했다. 무장 단체들의 자금원이자 다이아몬드 광산을 놓고 폭력적인 분쟁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터져 나와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추락할 위기에 처해서다. 생산 국가들과 기업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유엔도 나서 다이아몬드 광석에 대해 인증서(certification)를 부여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이에 따라 2002년 다이아몬드 인증 시스템인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가 출범했다. 2003년에는 참여 국가들이 킴벌리 프로세스에 따른 다이아몬드만 유통한다는 조항에 합의했다. 다이아몬드 생산의 99.8%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함께 다이아몬드를 유통 소비하는 81개의 주요 국가들이 킴벌리 프로세스에 참여했다. 킴벌리 프로세스로 인해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는 판로를 찾기 어려워졌다. 국제사회의 성공적인 협력 모델이기도 한 킴벌리 프로세스이지만 문제는 인증서가 종이라는 사실이다. 위·변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무인증 다이아몬드를 유통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