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윤리·환경·건강’ 3박자 모두 갖출 수 있어…‘최초의 1마일 문제’ 해소가 관건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참치는 가짜가 많은 생선이다. 국제 해양 자원보호 단체인 오세아나(Oceana)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2010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유통되는 흰 참치(알바코어)의 84%가 참치가 아닌 에스콜라(escolar)다. 2009년 뉴욕의 고급 스시 레스토랑에서 수집된 흰 참치 9개 중 다섯 개가 에스콜라였다. 일본 정부는 1977년부터 에스콜라의 유통을 금지했는데 인체에 해로운 독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스콜라의 흰 지방질은 맛이 좋지만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왁스 에스터(wax ester) 함량이 높다. 이 성분은 세제와 왁스의 원료로 쓰이기도 하는데,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복통이나 설사·구토·탈장을 유발할 수도 있어 여러 나라의 식품 위생 당국이 경고음을 울리는 생선이다.

참치를 소비하는 이들은 주로 선진국이지만 생산자들은 인도네시아·필리핀·아프리카의 어부들이다. 생산지에서부터 표지가 엄격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가짜 생선들이 고급 생선으로 둔갑해 고급 레스토랑으로 팔려 나간다. 참치는 멸종 위기 동물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참치 어종의 41%가 생물학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으로 남획되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버넌스(Provenance)라는 영국 회사가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법을 실험 중이다. 인도네시아 어부들이 참치를 잡는 시점에서부터 소비자가 레스토랑이나 마트에서 구입할 때까지의 경로가 블록체인에 올라 소비자가 참치의 역사를 알고 소비할 수 있다.

‘신뢰’는 먹거리에 매우 중요

블록체인은 지속 가능한 어획량을 유지하면서 저개발 국가의 저소득 어부들의 일자리까지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또 유통의 종착지에서는 소비자들도 보호한다. 참치가 노동 윤리와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소비자의 건강에도 좋다면 그러한 제품에는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블록체인 플랫폼을 유지하는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다.

참치를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참치 통조림마저 개별 참치와 연결해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이런 비용을 감수하려는 프리미엄 소비 시장이 있어야만 한다. 프로버넌스에 따르면 영국 소비자의 30% 정도가 친환경적이며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생산된 제품을 사려고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참치의 전 유통 과정을 관리하는 블록체인 사업이 가능하다.

좋은 참치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탐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의 발자국을 남긴 참치는 엉터리가 아니다. 가공 공장에서 참치를 가공한 이후 가공할 참치의 무게에 따라 부위별 포장으로 블록체인에 오른다. 참치 캔이 족보를 갖는다는 것은 참치를 섞어 가공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위의 출처가 되는 그 한 마리의 참치가 없는 캔은 있을 수 없다. 해당 부위에서 생산된 캔은 한도가 있어 캔들의 총중량이 출처가 된 참치보다 무거울 수 없다. 이런 계산은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통조림이나 진공포장의 태그에 스마트폰의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가져다 대면 어부와 포획된 위치와 일자 그리고 가공 공장과 유통 과정의 중요한 사건들도 알 수 있다.

프로버넌스는 지역의 비정부기구(NGO)를 참여시켜 참치 블록체인의 ‘최초의 1마일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멸종 위기 동물로서의 참치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 NGO들에 블록체인에 올릴 수 있는 스티커를 발부한다. 스티커는 쿼터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된다. NGO는 그물이 아니라 낚시로 참치를 잡는 어민들에게만 이 스티커를 배부하며 참치를 잡으면 바로 해당 종의 스티커를 부착해 블록체인에 올릴 수 있도록 한다.

어부가 스마트폰으로 스티커의 QR코드를 읽으면 블록체인 업로드의 전 단계가 시작된다. 어부의 고유 ID와 참치 잡은 시간(스마트폰 시계 활용), 장소(스마트폰 위치 정보 활용)가 정보에 포함된다. 블록체인에 업로드하는 순간 여러 가지 정보가 혼합돼 참치 고유의 ID가 생성된다. 스티커가 없으면 참치를 잡아도 블록체인에 올릴 수 없으므로 어렵게 잡은 참치를 제값에 팔 수 없다. 따라서 어획량은 발부 스티커의 한도로 조절할 수 있다.

스티커의 발부를 놓고 어부와 NGO 사이에 부정한 거래가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의 선의로 이뤄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허점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잡은 참치보다 상품 가치가 더 높은 종의 스티커를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스티커 자체가 어부들 사이에서 거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통 다음 과정에서도 블록체인의 기록과 스티커가 부착된 참치와의 비교·대조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어부나 NGO가 정직하게 행동해야 할 유인도 크다. 참치가 개별 ID로 관리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ID에 어부와 스티커 발부 NGO의 정보가 실리며 어부별 통계가 자동으로 집계되고 투명하게 오픈되는 블록체인의 속성상 지속적인 부정행위는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블록체인 전체를 관장하는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부정을 일삼지 않는 한 정보들 간의 불일치는 쉽게 적발되며 신뢰를 지키지 않은 이들은 네트워크에서 퇴출될 것이다.

참치는 최초의 1마일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치는 고가의 생선이고 낚시를 이용해 한 마리씩 포획하고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제품에 프리미엄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에 올려 디지털 자산화하는 작업은 제품이 개별로 처리되며 고가이며 신뢰가 중요한 제품들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최초의 1마일 문제’란
블록체인에는 ‘최초의 1마일 문제(the first 1 mile)’라고 하는 장애가 있다. 자료의 입력에서 생기는 오류, 신뢰의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는 블록체인이 사람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참치와 같이 불특정 다수의 어부가 생산한 제품을 블록체인에 처음 올릴 때도 불특정 다수가 개입한다.

이들의 정직성을 어떻게 관리할까. 블록체인의 속성상 한 번 기록되면 되돌리기 어려운데 영세한 어부들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블록체인에 기록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실수나 아니면 의도적인 오기가 블록체인에 올라가면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아무리 변조할 수 없는 블록체인이라고 하지만 최초의 1마일에서 기록이 잘못되면 오히려 더 해롭다. 잘못된 기록을 변조 불가능한 진실로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중개 기관이 이를 모아 대신 올려주면 기존의 디지털 장부와 마찬가지의 치명적인 약점에 노출된다. 그 중개 기관이 사실을 기록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셈이므로 부정한 거래나 해킹의 타깃이 된다.

블록체인은 공격 목표(SPF : Single Point of Failure)가 없는 분산 시스템을 지향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최초의 1마일 문제와 같은 신뢰의 문제 때문에 기업이나 기관 친화적인 성격을 갖기도 한다. 블록체인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의하고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신뢰와 어쩌다 한 번씩 블록체인에 정보를 올리는 분산된 개인들에 대한 신뢰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