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인사이드]
-소액 투자자 “기관·외국인만 유리한 제도”…공매도 세력 조사 요구도
청와대 폐지 청원 20만명, 소액투자자가 바라본 '공매도 논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공매도 제도가 있는 줄 알았으면 증권시장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을 겁니다. 개인은 안 되고 기관·외인만 가능한 공매도는 너무 불합리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공매도 폐지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안 그래도 뜨거운 공매도 논란을 더욱 뜨겁게 달군 것은 지난 4월6일 삼성증권의 배당사고 사태다.

삼성증권이 직원들에게 주식 배당금 1000원 대신 주식 1000주를 배당했고, 일부 직원들이 이를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발행되지 않은 유령주식을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가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같은 날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게시된 이 글은 4월10일 찬성자 20만 명을 넘어섰다. 한 달 내 20만 명을 돌파한 안건에 대해서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 또는 관계 부처 장관이 공식 답변을 내놓게 된다.

국내에서 공매도는 개인 투자자 대 기관·외국인 투자자 간의 대립 양상이 유독 강하다. 기관·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하나의 이유다. 여기에 지난 6년간 ‘공매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셀트리온을 비롯해 지난해 한미약품과 엔씨소프트의 사례처럼 공매도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반대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개인 투자자들의 의견을 가볍게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개인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공매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셀트리온의 오랜 소액 투자자로 최근 ‘23번가의 기적’이라는 책을 출간한 정의정 씨에게 소액주주들을 대표해 공매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정 씨와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은 최근 ‘희망나눔 주주연대’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활동 중이기도 하다.

◆공매도는 ‘기울어진 운동장’

셀트리온은 지난 6년간 ‘공매도와의 전쟁’을 벌여온 대표적인 기업이다. 서정진 회장이 2011년 11월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후 올해 2월 소액주주들의 요구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했지만 공매도 비율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 포털에 따르며 4월 2일 기준 셀트리온의 공매도 잔액은 3조3300억원을 넘어선다. 유가증권시장 종목 중 가장 많다. 둘째로 공매도 잔액이 많은 넷마블게임즈(5100억원)와 비교해도 그 차이가 크다.

정 씨는 “주주들이 뭉치지 않았다면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에 의해 역사 밖으로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와 소액주주들이 공매도에 대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내용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지나치게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는 외국인·기관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증권사 대주 거래를 통해 주식을 빌려 공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종목과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며 이자비용 부담이 크다. 또 개인의 대주 기간은 최장 90일로 제한돼 있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대부분의 종목을 대량으로 1년간 싸게 빌릴 수 있어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다. 기간 연장을 통해 공매도 기간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실질적으로 개인 투자자는 공매도 이용이 지극히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주장이다.

정 씨는 “한국의 공매도 제도는 외국과 달리 지나치게 기관과 외국인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어 개인들은 백전백패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참여 비율이 해외 주식시장보다 높다.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대해 반감이 큰 것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는 국내 증시의 특징 중 하나다.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비율은 약 50%에 달한다. 코스닥은 이보다 높은 87% 수준이다. 하지만 공매도 거래에서 개인 투자자의 비율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외국인 투자자가 70%, 기관투자가가 25% 정도다. 공매도 거래에서 소액주주들이 소외받고 있고 나아가 이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해외의 주식시장은 대부분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 중심이고 개인 투자자의 비율은 극히 낮다. 개인 투자자들 대부분이 직접 투자보다 기관투자가를 통한 ‘간접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와 관련해서도 애초에 개인 투자자 대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대결 구도가 성립되지 않는 환경이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외국은 기관투자가가 자연스럽게 개인 투자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의 공매도는 기관투자가가 개인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식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외국인 투자자들과 동등한 지위로 투자 활동을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공매도 관련 법률은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폐지 청원 20만명, 소액투자자가 바라본 '공매도 논란'
◆소액주주 “공매도, 평등권 침해”

그렇다면 소액주주들의 주장처럼 공매도는 실제로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것일까.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사안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했을 때 위헌 선고를 받을 확률은 낮아 보인다”고 답했다.

실제로 공매도는 매우 위험성이 큰 거래 기법 중 하나다. 개인이든 기관이든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가 기관·외국인 투자자만큼 정보력을 갖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공매도 거래의 제한을 두는 것만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방 변호사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인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방 변호사는 “정보의 편재성이 두드러지는 의료 소송 등에서도 최근에는 병원과 환자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며 “이 자체만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치면 ‘공매도 세력’을 견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공매도에 관해 개인 투자자에게 불합리한 부분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면 청원법상 입법 청원을 통해 자본시장법 개정을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주주들은 ‘상법상 이사회 의사록 열람 등사 청구’를 통해 내부자 거래에 따른 기관의 불법 공매도 정황을 감시할 수 있다.

정씨는 특히 소액주주들의 입장에서도 삼성증권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무려 100조원 넘는 큰 규모로 발행되고 유통이 됐다"며 "적어도 국내 증권사들의 주식거래 시스템에 '큰 구멍'이 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며 삼성증권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까지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삼성증권 배당 착오와 관련해 관계기관과 발생경과 및 원인 등을 점검하고, 향후 삼성증권에 대해 특별점검을 진행키로 했다. 다만 이번 삼성증권 사태에 대해서는 '무차입 공매도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날 "이번 사건으로 무차입 공매도가 실질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 같은 사례가 있었는지 확실히 점검해 분명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매도 폐지'와 관련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악용 사례 적발·처벌 강화” 한목소리

정 씨는 “소액주주들이 무조건 공매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문제의 핵심은 ‘악성 공매도를 금지하고 필요하다면 조사해 달라’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셀트리온의 소액주주들은 셀트리온 공매도 세력이 단순히 시세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가 아니라 회사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허리가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중견기업들이 강해져야 하는데 공매도 세력은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고 말했다. 특히 코스닥시장에서 공매도와 관련한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정 씨와 소액주주들은 셀트리온의 공매도에 ‘특정 세력’이 개입돼 있다는 근거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서정진 회장의 사망설, 임상 환자 사망설 등 허위 정보를 지속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회사의 실적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좋아지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는 상황에서 공매도가 감소하는 대신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2016년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 권고를 획득한 후 이틀 만에 주가가 16.8% 하락한 것은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왜곡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의 순기능은 크게 ‘가격 발견 기능’과 ‘주식시장의 효율성 제고’”라고 설명했다. 주가는 결국 그 기업의 가치에 대한 평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업의 호재가 있을 때 ‘주가가 올라가는 속도(매수 속도)’는 매우 빠른 반면 악재가 불거졌을 때 ‘주가가 내려가는 속도(매도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때 공매도가 그 속도를 맞춰 줄 수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만 2008년과 2011년과 같은 금융 위기 때 글로벌 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를 일시적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갑자기 시장에 위기가 닥쳤을 때 공매도가 ‘주가 폭락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고 결국 시장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연구위원은 “학계에서는 위기 상황을 제외한 ‘일반적인 시장 상황’이라면 공매도의 긍정적인 기능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소액 투자자들이 보기에 특정 기업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어도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일부 종목들에서 공매도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매도 전반을 문제 삼기보다 특정 ‘악용 세력’에 대한 모니터를 강화하고 적발됐을 때 강력한 페널티를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서 2017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제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종목을 찾아낼 수 있는 ‘신호등’으로 기능할 수 있다.

강 연구위원은 “기관·외국인 투자자들도 공매도하기 위해 주식을 빌리는 데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늘고 그 절차 또한 일반 주식에 비해 쉬운 거래가 아니다”며 “공매도를 악용한 것으로 적발되면 실질적으로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면 이와 같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공매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short selling)란
‘없는 걸 판다’란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없는 주식이나 채권을 판 후 결제일이 돌아오는 3일 안에 주식이나 채권을 구해 매입자에게 돌려주면 된다. 약세장이 예상될 때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활용하는 방식이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주식을 빌려 파는 것을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라고 한다. 실물 주식 없이 미리 파는 것을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금지돼 있다. 공매도한 주식을 되사서 갚는 것을 '쇼트 커버링(short covering)'이라고 한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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