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최신 기술 빠르게 흡수…고객 편의성 증대 속도 가팔라

[한경비즈니스 칼럼=김성훈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독자들도 아마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대기 라인이나 계산대가 없는 매장이 있으면 편리할 것이라고 한번쯤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백화점이나 마트도 고객의 편의를 봐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도난이 걱정된다. 세계 16개 국가의 소매상에서 절도로 인한 손실액이 연간 약 120조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만 백화점의 상습절도 피해액은 연간 수십억원 규모, 호주에서는 마트 절도 손해액이 3조원이 넘는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유통 기업들
(사진)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의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 /연합뉴스

◆무인마트, ‘아마존고’의 혁신

고객의 바람과 기업의 걱정을 둘 다 해결한 솔루션이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에 의해 현실화했다. 무인 소형 마트인 ‘아마존고(Amazon go)’ 덕분이다.

지난해 시애틀에 문을 연 뒤 아마존 직원에게만 개방하다가 올 1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미리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매장 진입 때 앱을 활성화한 뒤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매장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매장에 내장된 각종 센서와 딥러닝 기술 등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가 가져간 물품을 전자태그 없이 정확히 파악해 빠르게 결제할 금액을 고객의 계좌로 청구하는 시스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비전 센서가 고객 동선을 따라다니며 구매 목록을 확인한다. 만약 마음이 바뀌었다면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즉시 환불된다. 소비자는 계산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계산은 앱에 미리 등록한 모바일 결제 수단으로 자동 결제된다.

이런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마트가 향후 아마존이 인수한 홀푸드에 도입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기에 활용된 기술이 무인 자율주행차에 적용된 기술이란 점이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들이 향후 쇼핑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 알아보도록 하자.

지금까지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거나 홈쇼핑이나 온라인 매장을 통해 물건을 구매할 때 상품 탐색 및 비교, 상품 체험 및 결제 등에서 여전히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O2O(온라인·오프라인)의 매끄러운 연결이 중요하고 마케팅 방식도 멀티 채널을 넘어 옴니 채널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구매 채널이 연결돼 24시간(온라인·모바일 쇼핑) 쇼핑이 가능해지고 장소의 제한도 없어지는 추세다.

소비자 의사결정의 대가인 이타마르 시몬슨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오늘날의 소비자는 여러 채널을 통해 제품에 대한 정보를 거의 완전하게 얻을 수 있는 ‘완전 정보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부작용으로 스마트하게 사고 싶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 선택 결정 장애를 겪는 소비자도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도와주는 맞춤형 서비스가 부상하는 이유다. 변화하는 쇼핑 환경과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제대로 대응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 소비자에게 균일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도와주는 개인화한 맞춤형 서비스다.

핵심은 4차 산업혁명의 3대 기술인 AI·빅데이터·IoT·가상현실(VR)·증강현실(AR)·자율주행 기술을 얼마나 잘 융합해 고객 경험을 혁신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확산으로 정보가 과잉되면서 제품 정보를 찾고 비교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유통 기업들
(사진) 정맥 인증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의 무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연합뉴스

◆빅데이터로 고객 ‘취향 저격’

월마트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미국의 한 여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난 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무말랭이, 정말 좋아”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월마트의 빅데이터 연구소(월마트랩)는 5분 후 여성의 남자 친구에게 “곧 여자 친구의 생일입니다. 방금 여자 친구가 하루키의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가 좋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하루키의 다른 책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란 문자가 도착한다.

무말랭이가 반찬이 아니라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것을 월마트랩은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그동안 월마트랩이 이 여성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취향을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구매 이력 등 고객 정보와 SNS 등 외부 데이터를 통해 실제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국내 유통 기업들도 빅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서비스로 고객 만족과 매출 향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모바일에서 딥러닝 기술에 기반한 영상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실제 상품을 촬영해 모바일 앱으로 검색하면 해당 상품의 색깔·재질·패턴·모양 등을 딥러닝 알고리즘이 분석해 쇼핑몰의 수많은 상품 중 유사한 상품을 추천해 준다.

100만 개의 상품 이미지 데이터 학습을 통해 구축한 이 알고리즘은 쇼핑몰에 등록된 350만 장의 상품 이미지를 비교해 가장 비슷한 상품을 찾아준다. 이 추천 서비스를 적용한 결과 모바일에서 고객이 상품을 클릭해 보는 비율과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고객이 증가하더라도 직접 매장을 방문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무시하면 안 된다.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정보기술(IT)을 활용해 확 바뀌고 있다는 측면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지난여름 항저우에 무인 마트 ‘타오 카페’를 열었다. 고객은 쇼핑 뒤 ‘결제 문(payment door)’을 통과하면 된다.

기계가 알아서 상품을 스캔해 알리페이(모바일 결제 플랫폼)로 자동 결제한다. 결제는 5초면 완료된다.

알리바바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신선식품 마트 ‘허마셴성’을 13개 넘게 열었다. 이 매장의 고객은 장바구니가 필요 없다. 앱으로 상품 QR코드를 스캔하면 알리페이로 자동 결제된다.

그러면 직원들이 주문 접수 10분 안에 상품을 담아 집으로 배송해 준다. 매장이 일종의 쇼룸이 되는 셈이다. 현재 이 매장의 단위면적당 매출이 일반 마트의 3~5배에 달한다.

이 같은 오프라인 매장의 변신에 대해 포브스는 “가격 경쟁만으로는 온라인 공룡인 아마존의 쇼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자신만의 강점인 매장에서의 경험을 디지털화하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온라인·모바일 쇼핑의 치명적 단점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어떻게 극복해 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언제 어디에서든 쇼핑할 수 있고 편해졌지만 실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실제 착용 혹은 제품 배치를 경험할 수 없어 물건 구입 후 종종 실망하기도 한다.

이케아에 따르면 70% 이상의 고객이 가구가 놓일 장소의 정확한 크기를 모르고 약 14%의 고객이 잘못된 치수의 가구를 구매한 적이 있다고 한다.

AR을 활용하면 미리 매치해 보기 어려운 제품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 이러한 오류를 줄일 수 있다. 홈디포는 모바일 앱을 켜고 자신의 집 구석구석에 관련된 아이템을 미리 배치해 봄으로써 온라인에서의 모호한 고객 경험을 혁신했다. 또한 AI 음성인식 스피이커인 구글홈과 연동해 텍스트 기반이 아닌 음성 기반으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게 했다.

국내도 통신 3사를 포함한 네이버 및 카카오 등이 공격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시장이 있다. 음성인식 기반의 AI 스피커다. 국내는 한국어의 음성 인식률이 떨어져 음악 재생, 배달 음식 등 제한된 서비스만 가능하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콩글리시도 인식할 정도로 음성 인식률이 뛰어나 물건 주문뿐만 아니라 택시도 불러주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예약해 준다. 거의 AI 집사 역할을 해 주고 있고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자신만의 하인을 둔 느낌이다.

알리바바는 VR 쇼핑 서비스 ‘바이플러스’에 이어 VR 결제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VR 안경을 착용한 채 공중에서 터치하거나 한 곳을 응시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제 베이징의 지하철에 앉아서 뉴욕 맨해튼 거리를 돌아다니며 메이시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쇼핑은 기존 고객들이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혁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우리의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에 재빠른 대한민국이 미래 쇼핑 경험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