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대부분의 ICO는 ‘증권법’ 적용 대상으로 간주…“신산업 발전 위해 ‘적절한’규제 필요”
미국 SEC는 ICO를 어떻게 보는가
(사진) 센트라테크를 홍보했던 복싱 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멍' 저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4월 2일 센트라테크의 공동 창업자들을 수사 기관에 고발해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토큰을 공개해 자금을 모으는 암호화폐 공개(ICO)를 통해 수천 명의 투자자들로부터 32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한 스타트업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모금한 돈을 마케팅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회사 계좌에는 남은 돈이 없다고 한다. SEC의 책임자는 “회사는 정교한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합법적인 비즈니스와 제휴한 것처럼 거짓말을 유포해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사기’로 판명 난 센트라테크

센트라테크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현금처럼 사용하는 직불카드센트라테크를 출시하고 센트라코인을 발행하면서 비자나 마스터카드와도 제휴했다고 홍보했다. 암호화폐 대중화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무패의 복싱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까지 앞세워 유명세를 얻었던 터라 ICO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회사의 임원진이라고 내세운 인물들은 더할 나위 없는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가상의 존재들이었다. 물론 비자나 마스터카드와는 어떤 제휴도 없었다.

지난 수년간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ICO는 은행이나 투자 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금융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센트라테크와 같은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열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정부들이 불법화를 선언했고 미국의 규제 당국들이 잇따라 경고음을 울려가며 이상 열기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이런 맥락에서 센트라테크에 대한 SEC의 수사 결과 공개는 ICO 전체에 대한 데스블로(death blow : 치명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널리 알려진 ICO 중 하나가 사기꾼들의 농간이었다는 사실은 ICO에 결부된 젊음과 혁신이라는 이미지를 한 방에 지워버릴 만큼 충격적이다.

3일 뒤인 4월 5일, 프린스턴대에서 강연한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모든 ICO를 사기로 보느냐는 질문에 명백하게 ‘아니다(absolutely not)’라고 답했다. 오히려 그는 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SEC의 최근 행보를 정당화했다. 센트라테크 같은 사기를 규제 당국이 적절하게 솎아내지 않으면 언젠가 규제 당국은 산업 전체를 마비시키는 식으로 가혹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ICO 프로젝트에 대한 SEC의 강경한 대응을 놓고 SEC가 블록체인 산업에 적대적이라고 해석하는 미디어의 보도와는 명백하게 차이가 나는 발언이었다. 2018년 2월 초, 비트코인 거품론이 비등했을 당시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이 증인으로 불려 나왔던 미 상원 청문회에서 CFTC 의장이 강조한 ‘혁신에 해롭지 않은 규제(do no harm)’ 정책에 부응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클레이튼 의장은 프린스턴대 강연에서 세탁기 토큰을 비유로 ICO를 분류했다. 세탁을 하기 위해서 세탁기에 투입하는 토큰은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이다. 하지만 그런 토큰 10개를 묶은 세트가 있고 미래에 설치되는 새롭고 혁신적인 빨래방 체인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음 학기에는 구입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 동료들에게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이는 유가증권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SEC는 2017년 ICO로 발행하는 토큰을 무엇이라고 부르건 대부분이 유가증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ICO를 규제하기 위해 SEC가 사용한 유가증권의 개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탈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유틸리티 토큰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들에 따르면 블록체인에서 사용하는 토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SEC가 말하는 유가증권 토큰(equity tokens)이다. 이 토큰은 회사의 지분이나 자산에 대한 소유 권한을 내용으로 이뤄진 투자 계약이 핵심이다. 블록체인에서 디지털 코드로 발행되고 전송될 뿐 주식이나 채권 혹은 상품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하나가 바로 유틸리티 토큰이다. 유틸리티 토큰의 활용처는 규정하기 나름이다. 마음에 드는 글에 지지를 보내거나 공익 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고 광고나 스팸메일을 받는 데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미래에 있을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지만 유틸리티 토큰의 사용처에 대한 규정은 대체로 모호하다. 유틸리티 토큰이 지향하는 바가 특정한 생태계 내부나 혹은 외부에서까지 통용되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유가증권 토큰을 가진 사람이 요청하면 발행자나 발행자가 지정한 제삼자가 사전에 약정된 대응물로 바꿔 줄 의무가 있는데 반해 유틸리티 토큰은 그런 의무를 가진 주체가 없다. 채무자가 없으므로 유틸리리 토큰을 유가증권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미래(future)라는 어휘와 되팔아 얻는 이익을 기대하며 구입한다는 개념이 빨래방 예시의 핵심이다. 클레이튼 의장에 따르면 매우 제한적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ICO가 유가증권에 해당하는 토큰을 발행하는 셈이며 이는 미국 연방법 위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SEC의 방침이 규제 일변도로 치달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클레이튼 의장은 “그 무엇이 오늘 유가증권으로 판명됐다고 해서 반드시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신기술 때문에 유가증권 자체와 유가증권의 정의도 유연하게 바뀔 수밖에 없는 모호한 현실도 규제 당국의 수장으로서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열정적이고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 추진됐고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유틸리티 토큰 ICO에 대한 SEC의 규제 사례가 나올 때까지는 ICO에 대한 미국 규제 당국의 방침이 명확하게 정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돋보기] SEC가 정의하는 유가증권의 기준 ‘호위 테스트’

1946년 미국 대법원이 SEC와 호위(Howey) 간에 벌어진 소송에서 규정한 ‘투자 계약(inv`estment contract)’의 판별 기준이다. 이 사건은 사업자가 과일 농장을 분할해 매각하면서 관리 회사에 농장 관리 운영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계약을 함께 체결하도록 권유해 투자자들이 토지 소유권(나무 포함)을 취득한 것 외엔 분양받은 토지에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관리 회사가 농장을 운영한 결과 창출된 순수익을 분배받을 기대하에 금전을 투자한 사안이다. 미국 대법원은 이러한 거래 구조를 ‘투자 계약’으로 보고 증권신고서 제출이 없는 계약 체결이 증권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호위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투자 행위와 공동 사업(common enterprise), 다른 사람의 노력에 따른 이익 실현의 기대가 존재해야 한다. 유틸리티 토큰을 사전에 판매하는 ICO는 호위 테스트가 요구하는 세 가지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투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혹은 노동이나 어떤 형태의 자산도 상관없다. 미래 이익을 기대하면서 가치 있는 재화를 사전에 투입하는 것으로 족하다.

사업 자금을 모으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건 공동의 사업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고 토큰 발행자들의 경영적 노력에 따라 토큰의 미래 가치가 좌우되는 것도 상식이다. SEC 의장은 발행한 토큰의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을 조성하겠다는 약속 자체가 호위 테스트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의 노력에 따른 이익 실현의 기대’에 해당한다고 부연한 바도 있다.

ICO를 통해 자금을 모을 때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유통되지 않을 토큰을 만들어야 하는데 미래에 유통되지도 않을 토큰을 팔아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