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 기간 연장 불가피, “해외 현장은 수주 경쟁력 직격탄”
건설업계 ‘주 52시간’ 폭탄…지체 배상금 어쩌나

(사진)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최대 주 68시간→주 52시간) 시행(7월 1일)이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건설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건설 현장에서 공사 기간(공기)은 곧 ‘돈’인데 이를 맞추기 위해 인력을 더 투입해도, 공기를 늘려도 지출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맞물린 공사 현장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7월부터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보전해 줄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 아직 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현장은 발주처나 정부의 보완책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 인건비보다 배상금이 더 무섭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52시간 근무 제한으로 늘어날 인건비보다 무서운 것은 지체 배상금”이라면서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은 제때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일단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건설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 상승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 현장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61시간, 해외 건설 노동자는 67시간에 이른다.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노동시간이 주당 9~15시간 줄어든다.

산술적으로 공기를 맞추기 위해선 줄어든 시간만큼의 대체 인력을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공정상 여러 참여자와 협업을 통해 시공이 이뤄지는데 한창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의 기술자가 빠지고 다른 기술자가 들어오게 되면 시공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줄어드는 시간외에 플러스알파(+α)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되는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노동시간 축소에 맞춰 몇 명 더 투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며 “플랜트 현장은 기술 인력이 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력이 많게는 2배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런 구조를 사업권을 쥐고 있는 발주처가 달가워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설 현장은 발주처→시공사→하청업체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로 형성돼 있다.

발주처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공사를 선정하고 공기를 정해 사업비를 책정한다. 이를 시공사에서는 각 공사 분야에 따라 여러 하청업체를 밑에 두고 인력을 지원받아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당연히 발주처는 공기를 짧게 잡길 원한다.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사업비용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발주처는 입찰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을 맞춰줄 수 있는 시공사를 찾는다.

건설사로서는 시공사로 낙점받기 위해 발주처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만약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지체 부담금을 대부분 시공사가 떠안아야 한다. 이 때문에 공사 현장에서 공기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에 쫓긴 현장은 야간·주말에도 작업을 강행하는 돌관공사(인력과 장비를 집중 투입해 공기를 앞당기는 것)를 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가장 큰 고민에 휩싸인 업체는 바로 ‘을’인 하청업체다. 이미 계약이 끝난 사업에 대해 공사비용 증가분을 추가할 수 없고 이후 최저 입찰제로 이뤄지는 계약에서 입찰 금액을 마음대로 올리기도 힘들다.

또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직원이나 하청업체가 고용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라는 것도 부담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직접적인 비용은 당분간 하청업체가 부담해야 되는 구조다.

◆ 일본도 건설업은 5년 유예

인테리어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박재욱 대표는 “공사 현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시작되면 당장 피해를 보는 곳은 현장 직원들이 많은 하청업체”라며 “하청업체는 최저 입찰제로 대형 건설사와 계약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나는 비용을 입찰 금액에 집어넣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는 당장 비용을 늘리지 않고 공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효율을 높여 일을 진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건설 현장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몰아서 하기는 쉽지 않다. 현장 상황과 여건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인력을 무한정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용직 노동자들도 걱정 어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루라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처럼 한 현장에서 주말까지 작업하는 것은 ‘위법’이 된다. 결국 수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최 모(40) 씨는 “우리처럼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주5일 근무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며 “인력사무소에 매일 새벽 출근해도 요즘 같은 시기에는 15일 정도만 일할 수 있는데, 이마저 줄어든다면 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건설업에 적용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건설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일본은 2017년 건설업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일 40시간으로 하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건설업에는 사업 기간이 길고 발주자와 시공자가 일하는 방식을 맞춰야 한다며 5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