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기차타고 유럽까지' 철도 르네상스]
-친환경·대량 수송 강점에 세계적 블루오션…‘철도 골리앗’ 중국에 ‘전통 강자’ 서유럽 합종연횡으로 맞서
‘1일 생활권’ 목표로…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 2009년 11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또 한 번 인생 최대의 베팅을 감행했다.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라는 미국 제2위의 철도회사 주식에 440억 달러를 쏟아붓는 일생일대의 투자였다. 당시 월가는 ‘최후의 일격(coup de grace)’이라는 표현으로 버핏 회장의 BNSF 투자를 설명했다.

버핏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바야흐로 철도의 시대가 왔다. BNSF 인수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로부터 9년 후, 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를 맞이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 240조원 규모…연평균 2.4%↑

‘낡은 산업’으로 여겨졌던 철도 산업이 부활하고 있다. 내연기관으로 대표되는 자동차 운송의 환경비용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대체 교통수단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철도운송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독일 철도 통계 전문 기관인 SCI페어케어에 따르면 전 세계 철도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691억 유로(약 214조원)에서 2020년 1900억 유로(약 240조원) 규모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4%의 성장률이다.

철도 산업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일반 철도(CR)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1.9%에 그치지만 고속철도(HSR)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6%, 도시철도(UR) 시장의 성장률은 4.1%에 달한다.

고속철도는 철도차량 유지·보수 등 차량 판매 후 서비스(애프터세일즈 서비스) 분야가 성장하면서 도시 철도는 지속적인 도시화와 광역권 내의 수송 수요 증가로 향후 5년간 이 같은 성장세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도시화에 따라 도시 간 이동과 대도시 내 대규모 승객 수송이 가능한 철도 교통 보급이 확대될 것”이라며 “친환경 저에너지, 대량 수송이 가능한 효율적 교통수단 확대를 추구하는 전 세계적 교통 정책 방향성에 부합하는 교통수단으로 철도 산업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생활권’ 목표로…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이를 입증하듯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철도 인프라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 중이다. SCI페어케어가 국가별 노선 연장 계획 자료를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세계 고속철도 노선 연장은 2014년 3만7726km에서 2020년 6만7835km로 증대될 전망이다. 6년 만에 2배에 가까운 고속철도 노선이 확충되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유럽은 프랑스·영국·독일·스페인을 중심으로 2020년까지 저탄소 철도 산업 혁신 프로젝트(Shift2Rail) 정책 등에 의거해 전철화·고속화 등으로 방대한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프랑스는 장거리 고속철도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고 2021년까지 국가·도시 간 연결을 목적으로 2478km의 고속철도 노선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은 런던과 인근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화 사업 등에 많은 투자가 예상된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는 차량과 도심 철도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과 여러 주에서 경전철 사업을 계획하고 있고 캐나다는 토론토의 핀치 웨스트 프로젝트(Finch West Project), 멕시코는 도심 철도 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철도 산업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과 인도에서의 인프라 확충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중국은 중·장기 철도망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8종8횡의 주간선을 강화하고 4종4횡의 여객 전용 고속철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전국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철도 물류 수송 개수 작업과 고속철도·지하철 건설이 이뤄질 예정이다. 인도는 7개 노선의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지난해 9월 뭄바이와 아메다바드를 최고 시속 300km 이상으로 잇는 인도 첫 고속철이 착공됐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16조원대 규모의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사업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외곽 신도시 반다르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 주롱이스트까지 350km 구간을 잇는 대공사로 올해 말 입찰이 시작된다.

이 밖에 주목할 곳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시장이다. 성장률이 1~3%대에 머무르는 타 지역과 달리 대형 사업을 기반으로 향후 5년간 7%의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이 중 중동 지역에서는 걸프만 연안 국가 중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오만·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을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다.
쿠웨이트의 수도 쿠웨이트시티부터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까지 총 2117km로 이어지는 철도로, 여객용 열차 기준 시속 220km로 운행할 수 있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최장 8년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일 생활권’ 목표로…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중국 vs 유럽’ 고속철 챔피언 배틀

전 세계적 인프라 확충에 철도 산업의 노른자위를 차지하려는 ‘철도 골리앗’들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 철도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플레이어는 중국·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 등 5개국이다. 이 5개국이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이전만 해도 프랑스의 TGV, 독일의 ICE, 일본의 신칸센 등으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던 고속철 산업의 패스트 팔로워에 그쳤지만 자국의 거대한 철도 인프라 시장을 발판 삼아 전통 강자인 서구유럽을 제치고 단숨에 제왕적 지위에 올랐다.

특히 현재 세계 1위인 중국의 국영 고속열차 제조업체인 중국중차(中國中車·CRRC)는 중국 내 철도차량 1, 2위 업체였던 중국남차(CSR)와 중국북차(CNR)가 2015년 합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고속철 제조사로 전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6월 8일 증시에 처음 상장됐을 당시 시가총액이 130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에 이어 세계 2위의 제조업체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뒤를 이어 철도 시장의 ‘전통 3강’으로 불린 캐나다의 봄바디어, 프랑스의 알스톰, 독일의 지멘스 순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2015년 기준).

하지만 이마저도 곧 순위가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독일 등 전통 강자인 서유럽이 최근 손잡으면서 세계 철도차량 시장을 장악한 중국 견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알스톰은 TGV를, 지멘스는 ICE라는 고속철을 생산해 온 업체다.

앞서 알스톰과 지멘스는 지난해 9월 각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인을 거쳐 철도차량생산 부문을 합병하기로 했다. 기업 이름은 ‘지멘스-알스톰’으로 향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2018년 통합 완료를 목표하고 있다. 합병 시에는 중국에 맞설 수 있는 거대 철도 기업이 탄생할 전망이다.

두 회사의 철도 부문 매출은 2016년 기준 151억 유로(약 20조원) 규모다. 294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한 CRRC와 여전히 큰 차이가 나지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중국의 시장 확대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양 사는 통합 4년 후 연간 4억7000만 유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범위를 고속철도(HST) 시장으로 좁히면 중국과 프랑스·독일 간 싸움이 더욱 거셀 전망이다. 여기에 고속철 강자 일본까지 더해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된다. 2015년을 기준으로 고속철 시장의 승자는 이 시장의 65%를 쥐고 있는 CRRC다.

이어 일본 컨소시엄이 12%, 알스톰과 지멘스가 각각 10%, 2%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알스톰과 지멘스 합병 시 12%의 점유율을 확보하지만 기술과 안전성을 무기로 중국 견제에 나설 계획이다.

일본도 지난해 인도의 사상 최초 고속철 사업을 따내면서 세계 고속철 시장 경쟁에서 위상을 당당히 뽐냈다. 향후 인도는 6개 고속철 노선을 추가 건설할 계획인데, 일본은 이들 노선의 수주도 접수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한국 기업인 현대로템도 선전하고 있다. 2003년 경부고속전철(KTX)에 이어 2009년 신형고속전철(KTX~산천)을 제작하는 등 한국 내 공급을 담당한 현대로템의 세계 고속철 시장점유율은 2%로 세계 순위 7위다.

현대로템은 미국·터키·브라질·뉴질랜드 등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함으로써 현지 생산 체제 구축을 통해 해외시장 지배력을 보다 강화할 계획이다.
‘1일 생활권’ 목표로…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파괴적 혁명, 전 세계 1일 생활권 준비

하지만 이러한 주요 플레이어들 역시 철도 산업에 찾아온 혁신적 변화에 따라 송두리째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철도 산업이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하며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또한 전 세계 1일 생활권을 위한 운송수단으로 떠오름에 따라 철도 산업에 파괴적 혁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산업에 파괴적 혁신을 불러온 이는 자동차 산업에서 이미 새로운 바람을 몰며 유명세를 떨친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다. 머스크 CEO는 ‘실리콘밸리의 괴짜’란 별명답게 기존의 철도 회사를 인수하는 대신 새로운 콘셉트의 열차를 고안했다.

“철도는 비행기와 자동차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느리고 비싸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기존 철도의 문제점을 해결한 신개념의 열차 아이디어를 냈다.

그가 발표한 캡슐형 초음속 진공 자기부상열차인 ‘하이퍼루프(hyperloop)’는 철도를 본떴지만 철로 대신 진공 터널 안에서 달린다. 이를테면 날개 없는 비행기(열차)가 진공 튜브 속을 달리는 셈이다.

시속은 현격히 빨라졌다. 1시간에 약 1200km를 주파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도로 교통으로 6시간이 소요되는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구간을 단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이자 서울과 부산을 무려 20분 안에 갈 수 있는 속도다.

자기부상열차의 최대 시속이 600km, 여객용 항공기의 평균 시속이 800~900km인 것과 비교하면 하이퍼루프의 기술은 혁신 그 자체다.

여기에 하이퍼루트 운임이 동일 구간 항공료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 기존 교통수단을 압도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기존에 있는 어떠한 열차보다 건설비와 운용비가 저렴해 가능한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술의 발전과 빠른 도입을 위해 오픈 소스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공개했다.

이관섭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소장은 “하이퍼루프의 기본 원리는 100년 이전부터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이를 기존 기술과 융합해 기본 설계를 한 것이 머스크”라며 “전에 없던 신기술로 그가 아이디어를 낸 2013년 이후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 등 수많은 국가들이 앞다퉈 하이퍼루프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디자인과 콘셉트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던 하이퍼루프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프랑스 등에 의해 실현 가능성을 점차 높여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를 상용화한 기업이나 국가가 없다.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2014년 설립된 미국의 하이퍼루프원이 2017년 네바다 주에서 시속 320km 시범 주행을 선보이며 선진 기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하이퍼루프의 목표인 시속 1200km에 다다르기에는 상당한 기술 개발을 필요로 한다.

이 소장은 “하이퍼루프는 누구도 실현해 보지 못한 신기술의 무대”라며 “아직까지는 리딩 플레이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속1200km 기술을 상용화하는 기업(국가)이 세계 1등이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이내에 승부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도 자신감이 넘친다. 현재 미국·프랑스·중국 등 선진 시장을 중심으로 하이퍼루프 개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5월 24일 이 기술의 핵심 장치인 1000분의 1기압 튜브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앞으로 철도연은 국내에서 개발한 하이퍼루프 기술을 활용해 남북과 유라시아 대륙을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미래 교통 혁명을 한국에서 이끌어 간다는 계획이다.

poof34@hankyung.com

[커버 스토리 기사 인덱스 = '기차타고 유럽까지' 철도 르네상스]
- '부산에서 런던으로' 대륙철도의 꿈
-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을 '만능열쇠'
- 한반도 잇는 남북철도 누가 만들까
- '1일 생활권' 목표로...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 '항만 건설' 가장 먼저 시작될 것...제재 풀리면 '통일 비용' 큰 문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