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싱가포르항공 전자지갑 개발 나서, 단기 손실보다 고객 충성도 주목
‘소멸 없는 마일리지’…블록체인 활용하면 자투리 교환도 가능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쌓인 항공 마일리지가 2019년부터 소멸된다. 2008년 만들어진 법에 따라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는 10년이 되면 자동 소멸된다. 국토교통부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1조8683억원, 아시아나항공이 5335억원으로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적립 규모는 2조4000억원이 넘는다. 마일리지 중 대략 30%가 사용되지 않으므로 항공사들은 7200억원 정도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를 자동 소멸시키는 것은 언뜻 보면 항공사에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마일리지 제도는 법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의 산물이다. 항공사 스스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정책이다. 즉 마일리지 혜택을 고객에게 돌려준다고 홍보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를 없애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마케팅 효과와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객은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항공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소지가 있다.

항공사는 마일리지로 공짜 티켓이나 좌석 승급, 수하물 비용, 공항버스나 렌터카 이용, 공항 VIP용 휴게실 같은 공항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항공사 마일리지는 사용하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세계적으로도 9조7000억 마일에 해당하는 항공사 마일리지가 사용되지 않고 쌓여 있다. 이유는 비슷하다. 마일리지 가능 좌석을 따로 할당해 놓기 때문에 매번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수기에는 추가 마일리지나 추가 요금을 내야만 사용할 수 있다. 비행기 탑승 이외에 다른 용도로 전용해 사용할 수 있지만 마일리지를 헐값에 처분하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계산이 박하다.

무엇보다 가족 이외의 타인에게 자유롭게 양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일리지를 포기하는 경향이 크다. 외국 항공사는 훨씬 개방적으로 양도를 허가하는 곳도 있어 국내 항공사 이용 고객들은 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마일리지를 소멸시킨다는 항공사의 답변에 수긍하지 않을 수 있다. 주고도 욕먹는다는 바로 이런 경우다.

커피 스탬프는 ‘탈중앙화’의 대표적 사례

커피를 마시면 스탬프를 찍어 주는 노상 카페가 많다. 스탬프를 10개 모으면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조금 걸어서라도 이용한다. 스탬프가 찍힌 카드를 남에게 줄 수도 있다. 종이 스탬프 카드가 항공사 마일리지와 다른 점이다.

종이 스탬프 카드는 중앙 서버에 등록되지 않은 분산화된 익명 장부인 셈이어서 사용 고객을 제한할 수 없다. 스탬프가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할인된 가격에 유통될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다른 카페의 커피와 교환할 수 없을까.

마일리지 제도가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타사의 마일리지를 보상해 주는 일은 밑지는 장사로만 보인다. 하지만 마일리지의 유동성이 높아질수록 고객에게는 더 유리하다. 현금처럼 쓰이는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유동성이 떨어지는 마일리지를 주고 기간 내에 쓰지 못했다고 소멸시키는 경우에 비해 낮을 리 없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블록체인의 토큰으로 만들면 종이 스탬프 카드처럼 양도와 거래가 자유로워진다. 블록체인은 분산 시스템이므로 중앙 서버로부터 거래 승인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멸시킬 수도 없다. 게다가 종이 카드와 달리 전자화돼 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는 데 운송비용이 들지 않아 고객은 어중간하게 남은 마일리지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블록체인 토큰, 항공사 마일리지는 항공사가 가치를 보장하는 상품권이기 때문에 강력한 화폐로 유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가 없기 때문에 항공사는 마일리지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린다. 거래나 양도 금지, 사용 기한 정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고객들은 자투리 마일리지를 서로 교환해 비행기 티켓이 필요한 이에게 몰아주기 때문에 마일리지 사용 비율도 높다. 항공사는 여러모로 손해다.

하지만 ‘고객에게 이득은 기업에 손해’라는 도식은 독점 기업일 때나 타당한 명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반대 명제가 참인 것이 더 많다. 만약 항공사 마일리지 토큰이 나온다면 무정부적인 암호화폐 세계에서 기축통화 노릇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규제 당국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반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정부와 그 나라의 항공사가 범용적인 토큰을 만든다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업태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사 브랜드가 주는 신뢰성과 토큰의 유통력을 활용하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블록체인 ‘21세기 연금술’ 될까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사의 마일리지만이 아니라 타사의 마일리지, 더 나아가 항공 산업과 무관한 소매 업체들의 캐시백 포인트까지도 결제 수단으로 받아주는 정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자사의 브랜드로 불리는 마일리지 토큰이 온라인에서 화폐처럼 유통될 때 얻을 수 있는 브랜드 인지도 상승과 사업 확장에 대한 비전은 쓰다 남은 마일리지를 소멸시켜 얻는 눈앞의 이익을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거대한 도약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올해 2월 블록체인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KPMG·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블록체인 전자지갑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고객들이 쓰다 남는 마일리지가 없도록 하기 위해 항공사가 투자까지 해가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항공기 마일리지가 공짜 티켓만을 의미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는 의미다.
즉 모든 자산을 화폐로 만들어 버리는 블록체인이라는 21세기 연금술의 본질을 경쟁사들보다 한 발 앞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21세기 금융 산업의 변화에서도 싱가포르가 몇 걸음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돋보기] 포인트·마일리지를 블록체인화한 ‘비트리워드’
고객의 충성을 얻기 위해 제공하는 마일리지 포인트들 간의 유통시장이 활성화되면 온라인 소액 결제가 획기적으로 확대된다. 온라인 소액 결제의 확대는 공짜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닌 인터넷 문화를 근본적으로 정비한다. 회원 가입이나 신용카드 사용은 정보 노출의 위험과 불편을 동반하기 때문에 소액 결제의 걸림돌이다. 이런 과정 없이 동영상이나 신문 기사, 웹툰이나 음원을 다운로드하면서 소액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소액 결제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들에 파괴적인 반면 뉴스 미디어나 콘텐츠 창작자들의 지위를 크게 신장시켜 준다.

비트리워드는 중소 소매 업체들의 포인트나 마일리지를 토큰화해 유통해 주는 플랫폼이다. 자체적으로 토큰을 제공할 수 없는 소매상들도 범용성 높은 캐시백 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다. 노상 카페의 종이 스탬프 카드가 블록체인 토큰으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여러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 OK캐시백이나 해피포인트처럼 자체적으로 가맹점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이점도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이 주류 암호화폐와 일정한 교환 비율만 가지면 어떤 암호 자산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폐처럼 쓰일 수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에 올라오는 순간 이미 화폐적인 속성을 갖는 셈이다. 비트리워드는 2018년 1~2월에 걸쳐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암호화폐 공개(ICO)에서 650만 달러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