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온라인 도박시 확률 조작 등 부정행위 불가능…‘제3자의 힘’도 필요 없어
‘게임의 법칙’ 바꾸는 스마트 콘트랙트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월드컵 경기마다 도박사들의 승률이 예보처럼 보도된다. 결과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 공안은 월드컵 기간 동안 도박 사이트를 단속해 150만 달러의 암호화폐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도박에 참여한 이들이 33만 명에 달했고 그들은 암호화폐를 사용했다고 한다.

많은 국가들은 상업적인 도박을 불법화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는 2018년 5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박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므로 이용자들은 운영 주체를 맹목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하지만 서버의 해킹이나 배분 비율에 대한 운영 주체의 조작은 매우 자주 일어난다.

블록체인 스포츠 도박을 표방하는 비트골스(BitGoals)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관리하기 때문이다. 도박 참여자들은 게임 관리자나 다른 참여자들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 콘트랙트가 온라인 도박을 위해 창안된 개념은 아니지만 온라인 도박만큼 스마트 콘트랙트의 잠재력을 부각해 줄 산업은 드물다.

컴퓨터 코드와 암호화 기술을 이용해 변경 불가능한 계약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리카디안 콘트랙트가 대표적이다. 금융 전문가인 이안 그릭이 1995년 제창했다. 리카디안 콘트랙트는 일반적인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 이를 디지털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거래 당사자 중 한 명이나 제삼자가 마음대로 계약서를 변경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암호화 기술을 활용한다. 스마트 콘트랙트의 활용 범위가 확산될수록 리카디안 콘트랙트와 스마트 콘트랙트의 경계는 흐려질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콘트랙트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두 방식의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암호화된 계약서’ 리카디안 콘트랙트

계약의 객체인 권리물의 소유권 이전이 최종성을 갖는지가 쟁점이다. 리카디안 콘트랙트는 채권이나 부동산의 서류상 소유권(title) 이전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지만 자동으로 채권이나 부동산 소유권의 명의가 변경됐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현실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 리카디안 콘트랙트는 타이틀의 변경이 사전 합의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금융회사나 법원으로부터 소유권 이전을 인정받을 수 있는 증거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스마트 콘트랙트에서의 소유권 이전은 그 자체로 최종적이다.

비트골스는 STP라는 토큰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하는 스마트 콘트랙트다. 경기 결과를 맞혀 STP 토큰을 얻으면 그것으로 계약이 완료된다. 경기 결과의 입력과 동시에 사전에 합의된 배당률에 따라 토큰을 부여받는데 토큰의 가치나 용처를 보장해 줄 제삼자는 필요 없다. 시장가격이 전부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소유권은 법원이나 제삼자의 인정이 필요 없다. 금융회사나 거대 기업이 변제를 거부해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

스마트 콘트랙트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이 변제의 최종성을 갖는 암호화폐로 계약을 한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제삼자나 국가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1달러라는 싱귤래러티(특이점)를 넘어서기 전 인류는 폭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객관화할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개인의 모든 소유권은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국가의 인정 범위 안에 있을 때만 타인에게 존중받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1달러를 넘어서자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소유권 개념이 등장했다. 비트코인 현상을 문명사적인 사건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스마트 콘트랙트의 뚜렷한 특징은 법원이나 신뢰 기관의 도움이나 보장 없이 권리관계가 약속에 따라 변경되고 보호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적이다. 현실은 복잡하다. 이미 스마트 콘트랙트가 주장하는 ‘코드가 곧 법이다’라는 이상은 몇 차례 시험대에 올랐다.

이더리움 론칭을 전후해 스마트 콘트랙트 개념이 널리 확산됐다. 하지만이더리움 생태계는 스마트 콘트랙트의 코드 결함을 활용한 공격으로 두 번이나 큰 상처를 받았다. 2016년의 더다오(The DAO)와 2017년의 패러티(Parity)지갑 해킹이다. 더다오의 해킹 피해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명적이어서 이더리움재단이 나서 ‘없었던 일’로 만들어야만 했다.

스마트 콘트랙트가 최종성을 갖는 권리물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스마트 콘트랙트의 코드가 계약이 의도하는 바와 다르게 구동할 때 생기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삼자의 판단에 의지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프로그램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계약의 의도와 실제의 구동 사이에는 괴리가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구동된 이후에는 코드가 절대적 기준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스마트 콘트랙트의 이상에 가깝다. 코드를 활용해 이익을 취한 해커의 행위는 게임의 일부로서 정당하다. 반면 의도와 실재의 차이를 인정하면 스마트 콘트랙트는 사실상 자동화 기능이 강화된 리카디안 콘트랙트일 뿐이다. 계약의 의도와 코드의 구동 방식 간의 괴리를 판단하고 소유권에 대한 합법성을 최종적으로 인정해 줄 권위체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법원의 도움을 받지 않는 계약의 자동 이행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법원에 도움을 청할 것이다. 법원은 계약 당사자들이 원래 의도에 따라 행동했는지 판단할 것이고 때로는 코드에 의해 변경된 소유권을 되돌리라고 명령할 것이다. 이때 법원은 자신에게 그런 권위와 능력이 있다고 간주하겠지만 그 법원의 능력 범위를 한계 짓는 것은 법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사실을 먼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돋보기] 인터넷과 함께 발전해 온 온라인 도박
인터넷의 부상과 동시에 온라인 도박은 정부들의 골칫거리였다. 도박에 대한 허용 범위는 국가마다 다른데 인터넷은 국경을 쉽게 넘으니 법집행의 사각지대에서 도박 산업이 활개 칠 수 있었다. 해결책은 바로 결제 수단의 통제였다. 금융회사가 도박 사이트에 송금 서비스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산업의 성장을 억제했다. 미국은 이 관행을 명문화해 2006년 불법 인터넷 도박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이 금융회사의 보증이 필요 없는 가치물이 도박의 결제 수단으로 쓰일 수 있으므로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온라인 도박을 제어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도박 자체가 스마트 콘트랙트에 의해 진행되므로 하우스 없는 도박도 가능해졌다. 쉽게 말해 도박판을 벌인 업자(하우스)를 잡아 가둘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블록체인과 스마트 콘트랙트는 도박 상품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높여 비법 지대에서의 불신 문제까지 해결해 준다.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당면 과제는 더 이상 금지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대한 빠른 적응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