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국과 중국, ‘절충점’ 곧 찾아야 할 것…환율도 달러당 1100원이 새 기준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가 바꾼 세계 질서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가 재현되는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와 비교해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른다.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베네수엘라·이란·터키·필리핀 등에서 겪는 바와 같이 마찰을 빚으면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실물경기는 침체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출범 이후 달러 약세, 고관세 부과, 첨단 기술 개발 통제 순으로 숨 가쁘게 전개돼 왔던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중국은 정면으로 대응해 왔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중국몽)’ 시대를 꿈꿔 왔던 시진핑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밀리면 중국몽은 한동안 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 역시 심상치 않은 상황에 접어들었다.


◆미·중 무역 갈등은 양국에 부담

중국은 올 들어 상하이지수가 20% 이상 급락했다. 지난 2월 초 달러당 6.2위안 선까지 올라갔던 위안화 가치가 이달 들어 6.8~6.9위안대까지 떨어졌다. 상반기 성장률 목표(6.5~7%)를 지켰던 실물 경기는 올해 4분기에 6.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다시 나왔다. 지난 6월 이후 중단 기간이 두 달 이상 길어져 ‘루비콘 강’을 건넌 것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서 ‘차관’급으로 떨어진 데다 실무 회의가 이틀만 열려 커다란 성과는 없었다. 이후 협상 과정이 더 중요해졌다.

미·중 간 무역 협상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전자는 이번 협상 재개가 ‘트럼프 압력에 시진핑 굴욕’이라는 시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 번 승기를 잡으면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을 감안하면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과 무역 협상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후자는 현 상황에서 크게 변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세계경제 주도권 싸움은 그 자체가 ‘타결’ 혹은 ‘합의’와 거리가 먼 이분법(dichotomy) 문제인데다 양국 간 경제발전 단계 차이가 워낙 커 어떤 방식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가 줄어들기 어렵다는 근거에서다.

양 극단론 속에 절충점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내에서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피로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1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과의 무역 갈등 부담이 커지면서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모두 절충점 마련이 절실하다.

현재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스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미중 간 무역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조약’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등으로 위안화 가치가 대폭 절하될 때마다 ‘상하이 밀약설(달러화 약세와 위안화 절상을 유도하는 묵시적 합의)’이 단골 메뉴처럼 반복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밀약설이 합의가 될 때에는 ‘협정’으로 변한다(플라자 밀약→플라자 협정). 한동안 잠복했던 ‘제2 플라자 합의’ 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라자 합의는 1980년대 초 국제수지 불균형의 주범인 미국과 일본 간에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한 합의를 말한다.


◆미국, 달러화 약세는 ‘득’보다 ‘실’

10년 동안 지속됐던 플라자 체제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240엔대에서 79엔대로 폭락했다. 충분한 이유도 있다. 위안화 평가절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학수고대해 오던 관심사이자 과제였다.

대선 기간부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약속해 온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해 부담을 느껴 왔다. 대중국 무역 적자가 줄어들지 않는 한 11월 중간선거와 2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전 통화로서 위안화 기능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중국도 미국 재무부의 하반기 환율 보고서 발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트럼프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줄이는 노력이 효과가 작았던 만큼 이번 보고서에서는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높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발동되는 슈퍼 301조에 의해 최대 100% 보복관세를 부과 받을 수 있다. 중국 경제로서는 최대 부담이다.

관건은 트럼프와 시진핑 정부가 달러화 약세와 위안화 절상 폭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대폭적인 달러화 약세는 ‘득’보다 ‘실’이 크다.

무역 적자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 달러 자산 평가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국도 성장률이 목표 하단선인 6.5%에 근접한 상황에서는 대폭적인 위안화 강세를 수용하기는 힘들다.

수출 채산성과 경상수지 균형 모델, 환율 구조 모형 등으로 위안화 가치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위안 내외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잘 반영하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으로 이 선을 겨냥해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스위트 스폿은 골프공의 가장 핵심적인 곳을 때리면 가장 멀리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6월 이후 상관계수가 0.9를 웃돌 만큼 위안화와 동조화 현상이 심한 상황에서 위안·달러 환율이 6.8위안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면 앞으로 원·달러 환율 흐름에 위안화 환율은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은 결제통화 방식으로 달러당 1107원, 수출 비율 방식으로는 1095원으로 추정된다. 원·달러 환율은 일시적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있지만 두 방식에 의해 추정된 적정 수준인 달러당 1100원을 중심으로 상하 50원 범위에서 주 거래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