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요트산업 보고서

- 전국 34개 마리나 운영 중, 선박 수 비해 절대 부족
- 복합 레저 시설로 수익성 높여야
‘유럽의 고급 휴양지에 온 듯’… 서울서 1시간 ‘왕산마리나’를 가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석양으로 붉게 물든 바다에서 돛을 펼치고 낭만을 즐긴다. 에메랄드빛 한강에서 요트를 타며 자유를 만끽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해외 유명 휴양지에서나 봤을 법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상 레저 활동은 그동안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자들만 즐기는 여가 활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레저 선박을 정박할 수 있는 마리나항만이 속속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접근성이 편리해지고 이용료도 저렴해지면서 서민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마리나항만은 스포츠·레크리에이션용 요트, 모터보트, 크루즈선 등이 머무르는 항구를 비롯해 선양장, 수상·육상 보관 시설, 방파제, 주차장, 편의시설 등 모든 시설을 갖춘 넓은 의미의 항만을 뜻한다.

◆ 유럽에서 보던 요트 마리나가 국내에
‘유럽의 고급 휴양지에 온 듯’… 서울서 1시간 ‘왕산마리나’를 가다
8월 22일 오후 마리나항만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인천시 영종도에 있는 왕산마리나를 찾았다. 현재 운영 중인 국내 마리나항만 34개소 중 둘째로 큰 규모인 마리나다.

국내에서 제일 규모가 큰 마리나항만은 부산에 있는 수영만마리나(448척)이지만 서울과 접근성이 좋은 왕산마리나를 방문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300척의 선석이 계류할 수 있는 이곳은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품고 있다. 5000만원짜리 중고 고무보트부터 멋진 돛을 펼칠 수 있는 수억원대 세일링 요트, 60억원에 이르는 초호화 모터보트까지 80여 척의 레저용 선박이 마리나에 계류 중이다.

시설 역시 깔끔하다. 일반적으로 봐왔던 밧줄에 배를 묶은 항구의 모습이 아닌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개별 계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날 방문 목적 중 하나였던 마리나 인근을 운항하는 요트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많은 선주들이 선착장에서 선박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이는 다음 날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 ‘솔릭’에 대비해 자신들의 배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왕산마리나의 선적 주출입구 앞에 있는 계류장에도 인근 어선들의 계류가 계속 이어졌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태풍 피해를 대비해 주변 어민들에게 임시로 마리나를 개방하면서 어민들이 왕산마리나를 찾은 것이다. 왕산마리나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어 해일이나 파도로 부터 선적을 보호하기 수월하다.

이 밖에 왕산마리나에는 수상·육상 계류장, 선양장, 배를 들어 올리는 크레인, 선박 주유소 등 입항·출항·보관을 위한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왕산마리나는 한진그룹이 1700억원을 투입한 곳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당시 국내에 마땅한 요트장이 없어 대회 개최에 어려움을 겪자 한진그룹이 나선 것이다. 목적은 성공적인 아시안게임 개최와 국내 요트·마리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한진그룹은 왕산마리나를 운영할 자회사 왕산개발을 설립하고 시설을 보완해 지난해 6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 ‘레저 선주·어민’ 모두가 웃는다
‘유럽의 고급 휴양지에 온 듯’… 서울서 1시간 ‘왕산마리나’를 가다
왕산마리나는 개방 직후 곧바로 60여 척의 레저용 선박이 계류를 신청했다. 인근에 이렇다 할 마리나항만이 없어 레저 선박 소유주들은 그동안 배를 정박하거나 보관할 장소 마련에 애를 태웠던 터였다.

더욱이 배를 띄우기 위해 마을의 항구를 사용하다가 어민과의 마찰도 빈번히 발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왕산마리나가 해결했다. 물론 보관료가 든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1년에 7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배를 안전하게 보관·관리할 수 있고 기타 부대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주들의 만족도가 높다.

인근 어부들도 왕산마리나의 개장이 반갑다. 앞서 소개한 대로 기상이 좋지 않을 때 이용할 수 있고 레저 선주들과 마찰이 생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왕산마리나는 이제 개장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현재 80여 척의 레저 선박이 계류하고 있다. 외부 선박의 선양장 이용 횟수도 월 100건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 적자에 빠진 마리나, 문제는

하지만 왕산마리나 같은 시설은 국내에 턱없이 부족하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레저 선박(모터보트·고무보트·수상오토바이·세일링요트) 수는 2만4971척이다.

이에 반해 마리나항만 수는 전국에 34개소, 계류 가능 선석은 2355선석에 불과하다. 단순 수치로 10대 중 9대는 마리나에 선박을 댈 수 없다. 이마저도 기존 어항을 개·보수해 활용하는 데다 소규모 형태로 개발하다 보니 좁고 부대시설은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34개소의 마리나항만은 모두 적자에 허덕인다. 부도로 사업자가 바뀐 곳도 여럿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정부에 내야 하는 바다 사용 세금, 막대한 투자비용, 관리 유지비용 등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결국 선주들에게 받는 계류비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선주들은 마리나에 계류하기를 꺼린다. 마리나에 계류하지 않고 인근 해안가나 공터에 무단으로 내려놓는다.

하지만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적발한다고 하더라도 소정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전부다.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은 왕산마리나도 마찬가지다. 왕산마리나는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이익이 나는 구조는 아니다. 이 때문에 자생적으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마리나항만에 복합 레저 문화 공간을 만들고 선주들과 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해 준비 중이다.

현재 왕산마리나 선착장 주변에는 대형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식음료 코너를 만들고 요트 교육과 문화 사업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금력이 없는 대부분의 민간 마리나항만 사업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최근 서울마리나는 운영 주체가 바뀌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마리나항만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해수부도 고민이 많다. 마리나항만을 늘려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마땅한 수익 모델을 찾기 어렵다.

이에 따라 해수부에서는 안산 방아머리, 당진 왜목, 여수 웅천, 창원 명동, 부산 운촌, 울진 후포 등 전국 6개 지역을 거점 마리나로 선정하고 직접 개발에 나서고 있다. 거점형 마리나항만에는 레저 선박이 300척 이상 머무를 수 있는 계류장과 다양한 관광·레저 시설이 들어선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기업이 투자해 사업을 시행하고 국가는 최대 300억원을 지원해 방파제 등 기반 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거점형 마리나항만을 세관·출입국관리·검역(CIQ) 처리 기능을 갖춘 해양 관광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고용 창출 8730명, 부가가치 창출 6303억원, 생산 유발 효과 1조2383억원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성기 해양수산부 항만지역발전과장은 “국내 마리나 개발이 사업성 불투명, 리스크 부담 등으로 민간 참여가 저조해 정부 주도의 선도적 투자가 필요하다”며 “마리나를 요트·보트 계류뿐만 아니라 복합 휴양 시설로 개발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해수부, 마리나항만 활성화 나선다
‘유럽의 고급 휴양지에 온 듯’… 서울서 1시간 ‘왕산마리나’를 가다
이와 함께 해수부는 연안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들로부터 마리나항만 개발 계획 신청을 받고 사업자의 역량 평가, 개발에 따른 기대 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해 11개소 마리나항만에 대해 개발 허가를 내줬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내수면 마리나항만 개발이다. 내수면 마리나항만은 바다가 아닌 강이나 호수·저수지 등에서 요트·보트 등을 탈 수 있는 기반 시설을 말한다. 현재 국내 레저 선박 중 3분의 1은 강·호수 같은 내수면에 등록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내수면 마리나항만 시설은 거의 없다. 서울 여의도의 서울마리나와 경기도 김포의 아라마리나 두 곳 정도에 불과하다. 내수면 마리나에선 요트·보트뿐만 아니라 카약이나 수상스키 같은 다양한 해양 레저 활동을 할 수 있다.

파도와 바람 등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해수면 마리나와 달리 강·호수의 마리나는 규모는 작지만 해수면 마리나에 비해 안전하고 건설비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해수부는 그동안 외국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국내 강·호수 마리나 개발 유형을 도심 강변 친수 공간과 스포츠 체험 기능을 살린 도시 레저형, 호수 주변 호텔을 포함한 전원 리조트형, 거주 개념 마을 계류형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도시 레저형 마리나항만은 도심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 시민을 위한 친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리조트형 마리나항만은 호텔·콘도·펜션·자연체험 관광 등 단체와 가족 단위 이용 시설로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해수부는 마리나항만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국 마리나항만 현황과 기초 통계 자료에 근거한 마리나항만 중·장기 수요를 추정하고 마리나항만 예정 구역을 지정할 계획도 밝혔다.

또 마리나항만 산업 육성 방안, 해양 레저 문화 저변 확대 방안, 마리나항만 경쟁력 및 정책 기반(관계 법령 정비·통계 기반 구축)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해 추진할 전략을 세웠다.

해수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착수 보고회를 지난 7월 개최했고 앞으로 정책 연구 결과와 관련 업계·학계·지자체 등의 의견 수렴 및 관계 기관 협의 등을 바탕으로 2019년 하반기까지 중·장기 마리나항만 정책 비전과 목표를 담은 기본 계획(안)을 마련하고 2020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임지현 해수부 해양레저관광과장은 “제2차 마리나항만 기본 계획 수립으로 21세기 동북아 마리나허브 구축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마리나항만 산업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 일자리 창출, 해양레저·친수문화를 확산해 해양 관광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