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동남아 금융벨트를 가다, 은행들의 신남방 전략]
-우리은행, M&A 통한 현지화 전략 성과…평균 연령 26세 ‘젊은 국가’

[한경비즈니스=프놈펜(캄보디아) : 정채희 기자] 최근 국내 은행들이 캄보디아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인구수는 1600만 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300달러로 매우 작은 시장이지만 한국계 금융사만 무려 16개에 달한다. 국내 은행이 한국 경제 규모의 20분의 1(GDP 기준)에 불과한 캄보디아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첫 진출 후 2018년 현지 금융사를 추가 인수하며 캄보디아에서 금융 영토를 확장하는 우리은행을 8월 15일 찾았다.
우리은행, 캄보디아 전역 126개 점포망 구축…소액 대출 시장 강자로
캄보디아 프놈펜의 ‘강남’으로 불리는 벙켕콩. 이곳 대로변에 우리은행이 지난 6월 현지 금융사인 비전펀드캄보디아(이하 비전펀드)를 인수해 세운 ‘WB파이낸스’가 있다. 인수 후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때문인지 아직 건물 외관에는 비전펀드의 색이 남아 있다.

“외관 공사가 한창이에요. 비전펀드 고유의 색인 빨간색을 지우고 우리은행의 상징인 푸른색으로 도색 작업을 하고 있죠.” 현지 주재원은 수일 내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캄보디아의 중심에 둘째 깃발을 꽂았다. 2014년 소액 대출 회사(MFI)인 말리스(현 WFC)를 인수한 이후 4년 만의 둘째 인수·합병(M&A)이다.

비전펀드를 인수한 것은 캄보디아에서 전국 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은 4년 전 말리스를 인수하면서 프놈펜 시내에 거점을 마련했지만 프놈펜을 넘어 캄보디아 전역으로 확대할 네트워크는 없었다.

반면 비전펀드는 캄보디아 전역에 106개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예금 수신이 가능한 소액 대출 기관(MDI)의 라이선스를 보유해 여신 13만6000명, 수신 8만3000명 등 약 22만 명의 거래 고객이 강점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인수로 해외 영업망(점포 수)을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 301개에서 410개로 늘어나 세계 20위권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숫자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152개, 캄보디아 126개, 미얀마 37개, 필리핀 22개 등 우리은행이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의 상위 4개국이 모두 동남아 국가다. 특히 캄보디아는 이번 인수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잇는 우리은행의 글로벌 전략 국가로 거듭났다. 우리은행은 왜 캄보디아를 성장의 교두보로 삼았을까.
우리은행, 캄보디아 전역 126개 점포망 구축…소액 대출 시장 강자로

◆경제성장률 7%, 대출 증가율 23%


“메콩강을 중심으로 리버사이드 개발이 한창이에요. 대부분이 중국계 자금이지만 매년 고층 건물이 올라서고 있어요.” KOTRA 프놈펜 무역관 관계자는 캄보디아가 인도차이나반도 서남부에 자리해 있어 해외 바이어들의 인기가 높은 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웃 국가인 미얀마는 군사독재 때문에 오랜 기간 막혀 있었고 라오스는 내륙 국가로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캄보디아가 전략적 요충지로 선택받았다는 것이다. 무역관 관계자는 “3~4년 전에는 건설 붐이 일 정도로 매일 건물들이 올라갔다”며 “지금은 그래도 많이 주춤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캄보디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다. 이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젊음’에 기인한다. 대한민국의 1.8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고 있지만 인구수는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한 1600만 명이다. 적은 인구수는 ‘킬링필드’로 불리는 슬픈 역사에서 비롯됐다. 1970년 당시 크메르루주 정권이 민간인을 대규모 학살하면서 인구수가 급격히 줄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로 인해 캄보디아의 평균나이는 27세, 인구의 90% 이상이 54세 미만으로 ‘젊은 국가’가 돼버렸다. 다른 아세안 국가의 평균연령인 베트남 31세, 태국 36세보다 많게는 열 살 정도나 젊다.

캄보디아의 젊음은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이끌 중요한 견인차로 통한다. 저출산·고령화로 비상등이 켜진 한국과 비교하면 캄보디아의 생동감이 부러울 정도다.

국내 은행들이 캄보디아를 탐내는 이유는 또 있다. 이 나라의 현금 결제 비율은 98%에 달한다. 인프라가 부족해 호텔이나 대형 쇼핑몰을 제외하면 신용카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쓰더라도 2~5%의 카드 수수료가 나간다. 일부에서는 중복 결제의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캄보디아에서 주로 통용되는 지폐는 ‘미국 달러’다. 현지화인 ‘리엘’이 있지만 1달러 이하의 거스름돈으로 주로 쓰일 뿐이다. 이 점 역시 캄보디아 금융 산업의 성장 가능성으로 꼽힌다. 달러 사용으로 외환 규제가 유연해 환율 리스크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성장 잠재력에 더해 금융 산업의 기대 수익률도 높다. 예대금리차만 약 7%다. 5년 평균 대출 증가율은 23%, 5년 평균 예금 증가율도 21%에 달한다.

업체별로 다르지만 WB파이낸스의 연체율은 1% 내외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연체율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캄보디아의 국교인 불교의 영향도 있다”고 말한다. 윤회사상의 영향으로 부채를 갚지 않아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국민적 인식이 있어 금융회사의 수익성 확보에 플러스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장 잠재력이 높다 보니 캄보디아에서 영업하는 금융회사만 무려 130개다. 캄보디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7년 9월 말 기준으로 상업은행 수는 39개, 특수은행 15개, MDI 7개를 비롯한 MFI 76개가 영업 중이다.

금융사 수에 비하면 시장 규모는 작은 편이다.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130개 금융사의 자산 합계가 337억 달러, 약 37조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1개 은행과 비교해도 적은 수준이다.

자산 규모 기준으로 상업은행 1위는 아클레다뱅크다. 소액 금융 시장은 프라삭·아메트(AMRET)·하타카켁카르 등 7개의 MDI가 전체 시장의 85.6%를 점유하고 있고 나머지 70여 개의 MFI가 시장의 14.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이번에 인수한 비전펀드는 자산 기준으로 7개의 MDI 중 7위였다.

국적별로는 호주·프랑스·일본·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 외국계 금융사가 상당수 진출해 있는 가운데 그중 두각을 나타내는 게 한국 은행이다.

신한·KB국민·IBK기업·전북은행 등이 현지법인 또는 사무소 형태로 진출해 있다. 여기에 76개 금융사가 경쟁을 펼치는 소액 대출 부문 시장까지 더하면 한국계 은행은 총 15개에 달한다.

여기에 8월 22일에는 NH농협은행이 현지법인 인수로 ‘농협파이낸스캄보디아’를 출범하며 소액 대출 부문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즉 ‘태극마크’를 단 16개 은행이 캄보디아 프놈펜 안에서 크고 작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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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2개 법인 합병

우리은행 역시 캄보디아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129개 회사와 경쟁해 살아남는 전략으로 택한 방법은 밑바닥부터 출발하는 ‘철저한 현지화’다.

소액 대출 회사(MFI)에서 출발해 2단계로 예금 수취가 가능한 소액 대출 기관(MDI)으로 전환하고 마지막 3단계로 상업은행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캄보디아의 1위 은행인 아클레다뱅크 역시 시작은 소액 대출에서 출발한 MFI였다. 김창연 WB파이낸스 부법인장은 “캄보디아에는 큰 기업이 없어 상업은행보다 리테일 쪽에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MDI를 인수했다”며 “현지화에 유리하고 수익도 훨씬 더 빨리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A를 통한 현지화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WB파이낸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비전펀드의 현지 직원 1300여 명을 100% 흡수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확보와 우리은행의 시스템이 만나면서 실적 성장도 나타났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WB파이낸스는 인수 전인 2017년 말 기준 대출 잔액이 1억6700만 달러였는데 2018년 6월 우리은행이 인수한 후에는 1억7774만 달러로 잔액이 늘었다. 김 부법인장은 “상반기에만 해도 대출 잔액 증가가 800만 달러에 불과했다”면서 “우리은행 인수 후에는 한 달 만에 500만~600만 달러씩 대출 규모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내년 상반기 캄보디아 시장에서 기존 WFC와 WB파이낸스를 합병할 예정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초 9월 6일로 예정돼 있던 WB파이낸스의 개점식도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WB파이낸스 인수로 현지 1등 금융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며 “중·장기적으로 WB파이낸스를 은행으로 전환해 캄보디아 1등 은행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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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通’ 손태승 우리은행장, ‘해외 최다 네트워크’ 타이틀의 주역으로


“‘한국 1등 은행’을 넘어 ‘아시아 톱 10, 글로벌 톱 50’을 달성하자.”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중·장기적인 목표다. 손 행장이 적극적인 글로벌 진출을 통해 시중은행 중 최다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등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5년 국내 은행 최초로 글로벌 네트워크 200개를 달성한 이후 최근 비전펀드캄보디아 인수로 약 3년 만에 410개를 확보해 국내 은행 중 최초로 글로벌 20위권(해외 네트워크 기준)에 진입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는 ‘글로벌 전략통’ 손 행장이 지속 추진해 온 과제다. 손 행장은 1987년 한일은행에 입행한 이후 우리은행에서 LA지점장, 자금시장사업단 상무, 글로벌사업본부 집행부행장, 글로벌그룹 그룹장, 글로벌부문 부문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글로벌 사업을 주관했다.

그가 글로벌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5년부터 가시적인 성과도 나왔다. 당시 우리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18개국에 73개였지만 현재 25개국 410개국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다.

2014년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우리파이낸스 캄보디아 인수, 2015년 미얀마 여신전문금융사 신설, 2016년 필리핀 저축은행 웰스뱅크 인수, 베트남 현지법인과 인도지역본부 신설, 2018년 WB파이낸스 인수까지 글로벌 네트워크는 지속 확장 중이다.
우리은행, 캄보디아 전역 126개 점포망 구축…소액 대출 시장 강자로
손 행장은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를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에 집중할 전망이다. 먼저 단기 목표로 올해에는 해외 자산과 영업수익을 각각 249억 달러(약 27조3900억원)와 5억800만 달러(약 5588억원)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캄보디아를 비롯한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장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우리은행이 지주사 전환을 완료하면 ‘글로벌통’ 손 행장의 진두지휘하에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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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