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과 낸드플래시 장점만 모두 갖춰…인텔, ‘옵테인’ 앞세워 반전 노린다
정점 향해 가는 반도체 업황…다음 타자는 ‘차세대 메모리’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D램과 낸드플래시가 메모리 반도체의 양 날개가 된 것은 속도와 저장 능력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장점만 흡수한 반도체도 존재한다. 이른바 ‘차세대 메모리’다.

차세대 메모리와 관련된 기술 연구는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인텔의 ‘옵테인 메모리’를 제외하고는 본격적 양산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안정적 수요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발생할 공급과잉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차세대 메모리의 양산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점 향해 가는 반도체 업황…다음 타자는 ‘차세대 메모리’
◆옵테인 메모리’에 사활 건 인텔

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이 삼성전자에 왕좌 자리를 내준 것은 업계의 큰 이슈였다. 2분기에도 삼성전자의 1위 행진이 계속 이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분기 반도체 시장점유율(매출 기준) 1위는 삼성전자로 15.9%를 차지했다.

2위인 인텔은 13.9%다. 인텔은 1위와 2위 간 점유율 차이를 2%포인트로 줄였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1968년 설립된 반도체 기업 인텔은 1992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25년 연속 반도체 기업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선전했지만 PC 보급률이 둔화하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텔이 사활을 거는 것은 차세대 반도체로 분류되는 ‘옵테인 메모리’다. 옵테인 메모리는 2015년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합작을 통해 개발한 ‘3D 크로스포인트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이 기술은 전원 공급이 없어도 저장 내용이 보존되며 기존 낸드플래시보다 속도가 1000배 빠르다는 게 인텔 측의 설명이다. 인텔은 이 제품이 “기존 메모리반도체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동시에 보유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D램은 속도는 빠르지만 메모리를 휘발성으로 저장해 데이터를 임시 보관한다. 반면 낸드플래시는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데이터를 계속 저장할 수 있다.

즉 옵테인 메모리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만 가진 ‘차세대 메모리’의 성격을 띤다. 인텔은 옵테인 메모리를 양산하기 위해 2016년 중국 다롄 지역에 6조3000억원을 들여 낸드플래시 공장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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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시작된 인텔의 계획은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 7월 28일 삼성전자가 인텔의 옵테인 메모리를 장착한 노트북을 출시한다고 발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삼성노트북 5’는 옵테인 메모리를 탑재해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의 속도를 개선했다.

HDD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DD) 대비 가격이 저렴하지만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옵테인 메모리를 사용하면 HDD의 작업 속도가 평균 2배, 부팅 속도는 최대 5배까지 향상된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설명이다.

옵테인 메모리가 자주 쓰이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캐시 메모리 기능을 사용해 HDD의 읽기 속도를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레노버도 인텔 옵테인 메모리를 장착한 노트북 ‘아이디어패드 330S-141KB’를 출시한 바 있다.

이처럼 인텔은 자사 CPU와 결합해 노트북용의 라인업을 늘려 옵테인 메모리의 시장점유율을 늘린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이 공동으로 개발한 옵테인 메모리는 P램(상변화메모리 : Phase-Change Random Access Memory)의 일종이다. P램은 결정과 비결정 사이의 상(Phase) 변화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비결정에서 결정으로 변할 때 데이터가 저장되는 방식이다. 속도는 D램보다 느리고 낸드플래시보다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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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반도체 호황은 버블”


P램 외에도 차세대 메모리에는 STT-M램(스핀주입자화반전메모리 : Spin Transfer Torque-Magnetic Random Access Memory), Re램(저항변화메모리)이 있다.

STT-M램은 전자의 회전 방향에 따라 전자가 통과할 수 있는 자화층을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D램과 제조 공정도 유사해 D램의 대체용 메모리로 꼽히고 있다.

Re램은 저항이 큰 부도체에 높은 압력을 가하면 전류가 흐르는 통로가 형성되고 저항이 작은 도체 상태로 바뀌는 특성을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른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사상 최대의 호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업계에서는 고점 상황에 이른 업황이 조만간 하향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세계 D램 시장은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해 960억 달러(약 104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76% 급성장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슈퍼 사이클’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공급과잉이 지속되면 업황이 하향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공급과잉 양상이 D램보다 훨씬 심하다.

시장조사 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낸드 플래시 투자 규모는 280억 달러다. 비트 크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40%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 투자액 220억 달러를 이미 27%나 초과했다.

지금의 호황이 ‘버블’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8월 20일 ‘혁신 성장을 위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반도체 수출이 57.4% 증가했지만 실수요를 반영한 수량 기준 D램 수출이 1.4% 감소했고 메모리 용량 기준 전체 성장률 역시 호황과는 거리가 멀다”며 “지금의 호황은 공급 부족에 따른 것이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여기에 올 하반기 완공될 중국 기업들의 메모리 생산 시설의 양산이 본격화된다면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더해졌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의 시설 투자가 완료될 2025년에는 중국의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18%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차세대 반도체가 향후 공급과잉을 이겨낼 수 있는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칭화유니그룹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아직 중국 기업의 기술력은 삼성전자에 비해 2~3년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전에 차세대 반도체에서 성과를 내 D램이나 낸드플래시에서 발생할 공급과잉을 이겨내자는 것이다.

정부도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시사했다. 10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전 장관은 7월 30일 삼성전자 평택 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방문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10년간 1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방점은 ‘시스템 반도체’와 ‘차세대 메모리’다.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지닌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은 3%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D램과 낸드플래시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도 독려한다.

미세 공정 한계에 도달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DB산업은행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개발 동향과 시장 환경 변화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기업들의 차세대 메모리 개발 시도를 “미세공정 개발이 한계점에 접근함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제품 성능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기존의 D램 경쟁력 우위 결정 요소인 공정 미세화 경쟁으로는 향후 한계에 부닥칠 수 있고 원가 개선 속도도 둔화되기 때문이다.
정점 향해 가는 반도체 업황…다음 타자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시장성은 ‘과제’

‘반도체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반도체의 기술력을 차근차근 확보해 왔다.

삼성전자는 2004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P램을 개발했다. 2010년에는 P램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에 공급하기도 했다.

D램과 공정 방법이 유사해 차세대 반도체 중 가장 각광받고 있는 STT-M램도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1년 미국의 M램 기술 벤처업체인 ‘그란디스’를 인수해 STT-M램의 양산화를 시도했다. 지난해에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에 M램을 접목했다.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할 때 M램을 덧붙여 판매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분석한다.

SK하이닉스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제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몰두해 왔다. SK하이닉스는 2011년 도시바와 함께 STT-M램에 대한 공동 개발과 합작사 설립을 통한 공동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또 2012년에는 IBM과 P램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차세대 반도체 시장은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는 인텔이 부닥친 장애물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은 지난 7월 18일 내년에 3D 크로스포인트 2세대 개발을 완료한 후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IT 전문 매체 더레지스터에 따르면 옵테인 메모리의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마이크론은 심지어 제품을 내놓지 못한 점이 양 사의 제휴를 중단하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유타에 자리한 인텔과 마이크론의 공동 소유인 플래시 테크놀로지(IMFT) 공장에서 엑스포인트칩이 생산되고 있다.

당초 인텔은 옵테인 SSD의 구동 속도가 일반 SSD보다 1000배 빠르다고 밝혔지만 실제 속도는 일반 SSD와 큰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적자’도 난관으로 작용했다.

시장조사 업체 테크인사이트는 3D 크로스포인트가 제품 하나당 10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어 향후 2년간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D램과 3D낸드플래시에서 단기간에 기술 발전을 이룬 것도 수요 증가에 걸림돌이 됐다.

인텔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D램과 낸드플래시의 기술 속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차세대 반도체의 본격적 시장 데뷔를 늦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에서 연내 1Ynm(10나노미터 중반) 공정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생산성이 향상돼 수익성에 큰 도움을 준다. 낸드플래시에서도 지난해 삼성전자는 64단 3D낸드의 양산을 시작했고 90단 이상의 공정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안에 72단 3D 낸드플래시 생산 비율을 5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평면 낸드플래시 회로를 수직으로 세운 ‘3D 낸드플래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용어 설명 : 차세대 메모리

속도가 빠르지만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과 다소 속도는 느리지만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의 특성을 극복한 메모리 반도체를 말한다. 인텔이 2016년 5월 공개한 ‘옵테인 메모리’가 차세대 반도체의 일종이다. STT-M램·P램·R램 등이 차세대 메모리로 분류된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