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금융 금맥’ 동남아 금융벨트를 가다⑥ ]
-IBK기업은행, 베트남 진출 한국 중소기업에 ‘집중’…서비스 확대 위해 법인 전환 추진 중

[호찌민(베트남)= 공인호 머니 기자]
ball@hankyung.com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5000여 개… ‘동반자 금융’ 꽃피운다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인 호찌민시. 호찌민에서도 1군 지역은 대통령궁을 비롯해 대형 쇼핑몰과 주요 금융회사들이 밀집해 들어선 곳이다.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호찌민 지점은 1군 지역의 핵심 상권인 다이아몬드백화점 6층에 자리해 있다.

호찌민 지점에 들어서자 국내 영업점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님을 반기는 현지 직원들의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말도 독특했다. 베트남 시장에 함께 둥지를 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조직과 인력은 물론 브랜드 정체성에 현지 색깔을 덧칠하는데 공을 들이는 모습과는 사뭇 차이를 보였다.

이는 기업은행이 아직 현지법인 인가를 획득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중소기업 전문 은행이라는 정체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곽인식 기업은행 호찌민 지점장은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고객들이 많다 보니 모든 직원들이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완벽하게 배웠다”며 “많은 고객들이 신기해하면서도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현재 기업은행 베트남 지점의 최대 숙원 사업은 현지법인 전환이다. 2005년 12월 호찌민 사무소 설립 이후 2008년 지점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법인으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법인 전환이 늦어지는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기업은행 본점 차원의 정책 일관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됐다. 특히 중·장기 전략이 필수적인 해외 사업은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은행장 교체가 빈번한 은행들은 사업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연임 사례가 많고 경영권이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한은행(신한베트남은행)과 KEB하나은행(인도네시아KEB하나은행)이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5000여 개… ‘동반자 금융’ 꽃피운다
◆법인 전환 적극 추진하는 김도진 행장

반면 기업은행은 은행장의 연임 사례가 극히 드문데다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정치권 등 외풍(外風)에 자주 노출되는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장기 성패를 가늠하기 힘든 해외 진출은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각각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지속적인 투자와 본점 차원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말 기준 기업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는 11개국 27개다. 최대 300여 개(우리은행)에 이르는 경쟁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만 기업은행 역시 김도진 은행장 취임 이후 해외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김 행장은 지난해 7월 베트남 금융 당국에 법인 전환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뒤 올 초에 직접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를 만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업은행의 베트남 공략 행보는 비단 수익성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론도 갈수록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은 호찌민(1000여 개)을 포함해 5000여 개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이슈가 불거진 지난해부터 중소기업들의 유입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곽 지점장은 “지난 한 해 동안 유입된 신규 기업이 100여 개에 육박한다”며 “우리 영업점 고객만 1000곳 이상인데 특히 작년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유입된 기업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크게 늘고 있는데 하노이와 호찌민 2개 지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체크카드·마이너스대출 등 금융 서비스 예정

이처럼 베트남 영업점의 법인 전환 문제는 이미 ‘발등의 불’인 상황이지만 당국 승인 시점은 물론 인가 여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현재 베트남 금융 당국은 은행 산업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베트남에는 비엣콤·비에틴·BIDV 등 7개 국영은행을 비롯해 ACB·테크콤 등 현지 상업은행만 34개에 달한다. 여기에 베트남에 들어온 외국계 은행 96개를 포함하면 무려 138개의 은행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베트남 금융 당국은 외국계 은행의 법인 전환 조건으로 현지 중소형 은행 인수를 내걸고 있지만 국제 기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BB’ 등급 이하의 부실 은행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인수·합병(M&A)도 쉽지 않다.

곽 지점장은 “사실 베트남 중앙은행에서 우리에게 이미 현지 은행 한두 곳을 인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정부에서도 정확한 부실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회계와 자산 건전성도 불투명해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마냥 금융 당국의 입만 쳐다보고 있기에도 어려운 노릇이다. 법인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은행의 영업점은 하노이와 호찌민 등 현재의 2곳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단 기업은행은 통상적인 인가 검토 기간인 2년을 마지노선(내년 7월)으로 M&A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또한 법인 전환을 앞두고 현지 기업 종업원 체크카드나 마이너스 대출 등을 포함해 다양한 서비스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는 기업과 개인 고객을 아우를 수 있는 스마트 뱅킹 시스템 구축도 예고하고 있다.

한편 기업은행은 베트남·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3곳을 중심으로 한 ‘IBK 동아시아 벨트’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2025년까지 글로벌 네트워크를 20개국 165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은행 전체 순이익의 20% 정도를 해외에서 거두겠다는 복안이다. 올해에는 기업은행 설립 이후 최초로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2곳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현지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5000여 개… ‘동반자 금융’ 꽃피운다
[인터뷰 곽인식 IBK기업은행 호찌민 지점장]
“신속한 지원이 IBK의 강점…고객 급증해 법인 전환 시급”

“호찌민 파견 근무만 8년이 넘었네요. 이제는 제2의 고향처럼 편안합니다.”
지난해 7월 IBK기업은행 호찌민 지점장에 부임한 곽인식 지점장은 현지 파견 생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사실 곽 지점장은 이번이 두 번째 호찌민 파견 근무다. 2007년 첫 파견 이후 2013년에 현지에서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4년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뒤 지난해 다시 호찌민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베트남 현지법인 전환을 위한 바람도 그 누구보다 절실하다. 본국 직원 6명을 포함해 총 36명의 현지 인력을 이끌고 있는 곽 지점장을 만나 현지 분위기를 직접 들어봤다.

-현지법인 전환과 관련해 진행 상황이 궁금합니다.
“법인 인가 신청부터 승인까지 통상 2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에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관련 절차는 하노이지점에서 진행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지만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인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지 은행 인수는 힘든가요. 베트남 당국의 지연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던데.
“법인 전환의 지름길이기는 하지만 현지 소형 은행은 잠재 부실이 많아 적당한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중앙은행 쪽에서 이미 한두 개 정도 추천해 줬는데 그들마저 부실 규모를 예단하지 못하는 분위기죠. 내부적으로도 인수보다 신설 쪽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라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인 전환이 지연되는 점은 아쉽지만 내부 시스템이나 조직 문화를 감안하면 일단 지금 방향이 맞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냥 기다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겠죠. 내년까지 승인이 나지 않으면 인수·합병(M&A)을 포함해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객 수는 늘어나는데 호찌민과 하노이 두 개 영업점으로는 버티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법인 전환 이후의 네트워크 확장 계획은 갖고 있나요.
“베트남 현지 대형 은행은 700~800개의 영업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신한은행이 30여 개의 영업점을 갖고 있지만 현지 대형 은행과는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죠. 기업은행은 소매금융보다 기업금융에 집중하고 있어 굳이 네트워크 경쟁을 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2개 영업점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일단 법인 전환에 성공하면 한국계 기업과 교민들이 많은 지역에 우선적으로 점포를 열 계획입니다.”

-베트남 시장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블루오션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던데요.
“현재 기업은행과 거래 중인 기업만 1000곳이 넘는데 특히 작년에 고객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비롯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이슈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넘어온 기업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유입된 기업들이 많아 걱정될 정도였죠. 작년 한 해 동안 늘어난 신규 기업만 100곳 가까이 됩니다. 하지만 베트남 시장도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력난으로 봉제·섬유·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남부 내륙 쪽으로 옮겨 가는 상황이죠. 개인적으로 이제 베트남 시장도 노동집약적 산업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 시장에서 기업은행만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요.
“기업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 11개국에서 베트남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23% 정도 됩니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높은 수준이죠. 특히 하노이지점은 자산이 매년 40% 정도 늘고 있고 호찌민 역시 지난해 50% 정도 불어났습니다. 올해는 30% 정도로 추산하고 있죠.
이곳에 들어온 중소기업들이 기업은행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본국에서의 평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면서 ‘어려울 때 우산 빼앗지 않은 은행’으로 인식된 거죠. 그만큼 충성도 높은 고객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기업은행의 가장 큰 강점은 신속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본국에서의 기업 정보가 그대로 넘어오니 신속한 지원이 가능한 거죠. 굳이 영업점을 찾지 않아도 비대면으로 계좌 개설 등 대부분의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또 한국에 모기업이 있는 사업체는 환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원화 수출입 거래도 지원하고 있어요, 특히 우량 기업들은 자체 펀드를 조성해 저리로 대출을 제공해 주고 있죠.”

-현지에서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라고 들었는데요.
“베트남 현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사랑의 밥퍼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일도 목사의 다일공동체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도 매달 참여하고 있죠.
또한 호찌민 인근의 동탑성에 있는 중학교에 장학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 돈 5000원(10만동)이면 학생들의 한 달 학비와 학용품 지원이 가능하죠. 500달러만 지원해도 1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이 밖에 이업종 협업으로 매년 집 한 채씩 지어 주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곽인식 지점장은…
1992년 IBK기업은행 입행. 남동공단지점·영업2부·경영관리부·여신심사부·프로젝트금융부. 2007년 호찌민지점. 2013년 호찌민지점장. 2014년 송내동지점장. 2017년 IBK기업은행 호찌민지점장(현).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