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역 벼랑 끝 전술’로 맞받아쳐…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4개의 심리 전술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협상에서 심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협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활용하면 의외로 쉽게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 비즈니스 협상이든 외교 관련 협상이든 심리적 기법을 알아 두면 도움이 된다.

협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몇 가지 심리적 전술을 살펴보자.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서 승리한 트럼프
◆한·미 FTA 협상의 미끼 전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처럼 많은 이슈를 다루는 협상에서 잘 먹히는 전략이 바로 미끼 전술이다. 여러 안건이 얽혀 있어 그 속에 진짜 안건이 있고 가짜 안건(미끼)이 혼재하기 마련이다. 2007년 미국과의 한·미 FTA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한국 측 대표였던 김종훈 수석은 미국의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제시한 ‘신약 최저 가격 보장’ 이슈로 난감했다. 미국에서 새로 나온 신약에 대해 최저 가격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신약 가격은 개별 제약업체와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어떻게 정부가 나서 최저 가격을 보장해 줄 수 있겠는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마침 양국 대표가 잠시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김 대표는 별생각 없이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 이야기를 꺼냈다. 한·미 간 FTA 협약을 맺게 된다면 미국의 품목별 반덤핑 규제에서 다른 국가들은 몰라도 한국은 제외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사실 농산물·자동차·지식재산권 등 다른 협상 현안에 비하면 한국 측으로선 큰 관심이 없던 의제였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인 카드였던 셈이다.

그런데 김 수석의 얘기를 들은 커틀러 수석대표가 정색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 정부가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를 꺼내면 FTA 협상은 깨진다는 것이었다. 미국 의회가 승인해 줄 리 없으니 협상을 계속하고 싶으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신이 만약 김 수석이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커틀러 수석대표의 경고대로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 카드를 슬며시 철회했을까. 협상 초보자라면 그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수석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았다. 순간 김 수석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이게 미끼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김 수석은 오히려 세게 나갔다. “나도 한국 정부 대표로서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협상을 때려치우겠다. 한국 수출 업체들이 이 문제 정도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엇 하러 미국과 FTA를 하느냐고 난리다.” 강하게 맞받아친 것이다. 말하자면 미끼의 값을 키우는 것이다.

김 수석은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에 대해 계속 완강한 태도를 보이며 커틀러 수석대표와 팽팽히 맞서다 미끼 값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골치 아픈 신약 최저가 보장 조치와 맞바꿔 버렸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무역 구제비 합산 조치와 맞바꿔 버렸으니 어떤가. 미끼 한번 잘 활용한 협상 아닐까.

◆무리한 제안에 대응하는 권한 위임 전술

협상장에서 상대가 무리한 제안을 할 때가 있다. 당신의 처지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의 요구다. 이때 물론 단호하게 자를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칼같이 자르기에는 모호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노”라고 하면 협상 분위기가 급랭되며 상대와의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 또는 “노”라고 하기도 “예스”라고 하기도 모호한 제안인 것도 있다. 이럴 땐 무 자르듯 딱 자르기가 곤란하다.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다음과 같이 대응을 고려해 보자. “그에 대해서는 상사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특정한 기준 내에서만 협상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리이사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위와 같은 말로 당신의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라. 당신이 가진 권한이 한정돼 권한을 가진 누군가와 상의해야 한다거나 회사의 정책이라고 믿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사실은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무리하게 요구할 때는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권한 위임 전술이라고 한다. 당신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 손발을 묶어 버리는 것이다.

이 전술에는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시간을 벌 수 있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그 자리에서 “예스” 또는 “노”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럽다든지 또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에 해당한다.
둘째는 상대와의 관계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 상대가 보는 자리에서 대놓고 “노”라고 하면 원활하던 협상장 분위기가 갑자기 딱딱해질 수 있다.

셋째는 상대의 또 다른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 상대가 추가 가격 인하를 요구했을 때 당신이 난색을 표명하며 윗사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면 상대는 속으로 ‘내가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다음 며칠 후 상사의 승낙을 어렵사리 받아냈다며 대신 다른 조건, 예를 들어 납품 수량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이런 전술을 자주 쓰는 것이 좋을까, 자주 쓰지 않는 것이 좋을까. 결론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두 번이라면 좋다. 하지만 여러 번에 걸쳐 사용하게 되면 상대는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권한 없는 당신과 협상하고 싶지 않으니 권한 있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시기를 보아 가면서 한두 번 활용하라.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여기에 상대가 협력의 자세로 대응하면 자기도 협력하는 맞받아치기 전술도 있다. 반대로 상대가 배반의 자세로 대응하면 자신도 배반의 자세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좋은 사례다.

2018년 7월 6일 미국은 중국산 산업 제품 340억 달러의 품목에 25% 관세 부과 조치를 발효시켰다. 중국도 즉각 미국산 농산품 등 340억 달러 규모의 품목에 25%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8월 7일 미국은 16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기로 했고 이에 중국도 미국 수입품 160억 달러어치에 대해 동일하게 관세를 매기기로 한다.

중국 상무부는 발표문에서 “정당한 권익과 다자무역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반격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즉각 대응했다.

이 전략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에 편리하기는 해도 별로 단수가 높은 전략은 아니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사실은 꽤 우수한 전략이다. 비즈니스에서의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친구 관계, 애인 관계 심지어 부부 관계나 자녀와의 관계까지 이 전략은 유효하고 적절하게 응용될 수 있다. 이 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매우 단순해 이해하기 쉽고 곧바로 실천할 수 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너무 복잡해 골치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전략대로만 행동하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먼저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되 상대가 자신의 호의에 상응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상대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호의에 상응한 보답을 하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기애애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둘째, 도덕적으로도 괜찮은 전략이라는 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면 뭔가 살벌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쪽에서 먼저 배반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먼저 선의를 갖고 협력의 태도를 보이지만 상대가 배반하면 이쪽도 배반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니 동정을 받을지언정 비난받을 일은 없는 것이다.

셋째, 상대의 배신행위에 대해서는 이쪽도 배반으로 응징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속을 썩이며 끙끙 앓을 필요가 없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즉각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은 개인의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넷째, 상대방이 한때 배반했다가도 만약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협력의 태도로 나온다면 이쪽도 언제든지 협력의 태도로 복귀한다는 관용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이 전략의 매력이다. 한때 상대가 섭섭하게 대했다고 해서 언제까지 꽁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결국 서로의 상처만 깊게 하고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트럼프의 역 벼랑 끝 전술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활용한 역 벼랑 끝 전술도 있다. 북한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을 재고려한다고 발표했다.

최선희 외무부 부상은 “대화 구걸은 안 한다”고 말했다. 김계관 제1부상도 ‘미국이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발표한다. 북한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던 벼랑 끝 전술임 셈이다. 만약 정상회담이 물거품이 되면 핵 위협은 계속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도 물 건너가는 것이라는 신호였다.

이 전술에 트럼프 대통령은 역 벼랑 끝 전술로 대응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었고 정작 화들짝 놀란 것은 북한이었다. 약자의 조그만 자존심을 세워 보려고 했던 관행적인 막말 발언에 설마 이렇게 세게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협상학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편지의 넷째 문장에선 “슬프게도 최근 (김계관·최선희 북한 외무부 부상 등의) 성명서에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으로 봤을 때 지금 회담 개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본론’을 꺼냈다. 이것이 ‘편지의 핵심’이다. 회담 취소로 맞대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당신은 북한 핵 능력을 얘기하지만 우리(미국) 핵이 훨씬 크고 강력해 그것들이 사용될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세계는, 특히 북한은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과 부를 얻을 기회를 놓쳤다”며 정상회담 취소로 손해를 보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협상이 깨졌을 때 상대방이 입을 손해를 상기시키면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다.

마지막엔 “당신이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마음이 바뀐다면 망설이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써 달라”고 했다. 이것은 벼랑 끝에 몰린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계속 쥐어짜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도망갈 곳이 없는 쥐는 돌아서 고양이에게 덤벼들 수 있다. 따라서 쥐에게 도망칠 수 있는 조그만 탈출구를 열어 준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북한은 ‘회담 재고려’라는 말은 슬그머니 내리고 예정대로 싱가포르 회담장에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 벼랑 끝 전술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맞받아치기 전술도 동시에 사용된 셈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6호(2018.10.29 ~ 2018.11.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