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198호 (2018년 11월 14일)



‘스타트업 요람 된 대기업’ …단순 지원 넘어 ‘파트너’로

기사입력 2018.11.12 오후 03:03

[커버스토리='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 스타트업 키우는 대기업들]
-‘오픈 이노베이션’이 글로벌 R&D 대세…벤처캐피털 자회사 설립 규제 완화 필요

‘스타트업 요람 된 대기업’ …단순 지원 넘어 ‘파트너’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물밑에서 이뤄지던 대기업의 스타트업 육성 사업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최근 대기업의 스타트업 지원을 살펴보면 단순한 외부 공모전이나 사내벤처 독려를 넘어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속적인 투자와 일부 지분 확보를 통해 ‘피를 섞는 수준’의 결속력 있는 협력을 시작했다. 

과거엔 정보기술(IT) 대기업들 위주로 시행됐지만 이제는 제조·중공업·유통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스타트업 발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지원을 사회공헌 사업의 일부로만 생각하지 않고 기업 내부에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수혈하는 통로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트업은 빠른 산업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 규모가 커진 대기업은 아무래도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리고 불확실한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게 쉽지 않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기업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아 사내벤처로 분사하거나 외부의 스타트업을 지원해 사업 파트너로 키우고 더 나아가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요람 된 대기업’ …단순 지원 넘어 ‘파트너’로

◆기존 사업의 경계 무너지며 더 각광 받는 ‘협업’ 

물론 한국 대기업이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나섰던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10년대 들어 달라진 점은 전담 조직을 설립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활발히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의 문을 스타트업에도 활짝 열었다. 향후 5년간 C랩을 통해 육성할 과제 500개 중 300개를 사외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내부의 연구·개발(R&D)에 몰입하던 자동차업계도 외부와의 협력을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개방형 혁신센터 ‘제로원’을 통해 스타트업 7곳에 전격 투자를 결정했다. 또 미국·중국·유럽·이스라엘에서도 이와 유사한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IT 기업이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롯데는 2016년 창업한 보육 전문 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현재 엘캠프 1~4기의 61개와 사내벤처 기업을 포함해 약 70개사를 육성 지원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드림플러스’를 운영 중이다. 한화생명이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게 된 것은 ‘핀테크 열풍’을 겪고 나서다. 다양한 핀테크 활용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과의 협력이 절실했다. 

철강 기업 포스코는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었던 2011년부터 청년창업·벤처기업 프로그램 ‘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IMP)’를 운영해 왔다. 포스코의 IMP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엔젤 투자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규제’가 가로막는 대기업의 CVC

구글은 지주회사인 알파벳 산하의 벤처캐피털 자회사 ‘구글 벤처스’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글 벤처스는 구글의 ‘미래 성장 엔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글 벤처스가 바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려면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구글 벤처스와 같은 벤처캐피털 계열사를 설립할 수 없다. 지주회사 내 CVC 설립이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CVC는 금융회사로 분류된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비금융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현재 삼성과 현대차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상태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관계자들은 그동안 지주회사 내 CVC 설립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스타트업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업계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 내 CVC 설립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의 CVC 허용 요구에 대해 공감하지만 금산분리 완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여전히 CVC 허용을 불허하겠다고 못 박았다. 

그 대신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존 벤처 지주회사 제도를 수정했다. 일반 지주회사와 똑같았던 자산 총액 요건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또 대기업 일반 지주회사가 벤처 지주회사를 손자회사로 설립할 때 증손회사 지분 의무 보유 비율을 100%에서 50%로 낮췄다. R&D 비율이 5% 이상인 중소기업도 벤처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금융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벤처 지주회사가 CVC와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스타트업 M&A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제도의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성과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8월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윤태식 스케치온 이사는 “대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스케치온’은 원하는 그림을 피부에 문신처럼 새기는 스킨 프린터 ‘프링커’를 통해 유럽 최대 스타트업 콘퍼런스 ‘슬러시 2016’에서 4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최근 눈에 띄게 바뀐 것은 대기업이 ‘시혜자’의 역할을 넘어 동등한 ‘파트너’로 스타트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서 스타트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과 제품의 수명이 점차 짧아지는 상황에서 스타트업은 신기술을 활용해 기존 산업을 파괴할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대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지금처럼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활발한 시기에는 내부 인재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언제든지 창업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제아무리 규모가 큰 대기업이라도 혁신적 스타트업의 등장으로 인력 유출이나 해체 위험까지 겪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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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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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11-13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