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위원회 ‘한 자리’ 두고 여야 팽팽한 줄다리기…‘지역 예산’에 물불 안 가리는 국회의원들
예산 칼자루 쥔 ‘예결소위’ 뭐길래?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지역 예산 챙겼다고 세게 비판하셔도 됩니다.”

12월 예산안 심사가 끝나면 이를 평가하는 언론 기사가 쏟아진다. 내년도 전체 예산안의 세세한 증감액 못지않게 특정 지역구 예산을 챙긴 의원들에 대한 비판성 기사도 단골 메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회에선 당혹스러운 상황이 적지 않게 벌어진다. 수년 전 당시 여당 예산결산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A의원이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도로 건설을 위해 수백억원 규모의 예산을 막판에 끼워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주요 언론에서 비판성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해당 의원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는 보좌관을 통해 1면까지 할애해 자신을 비판한 특정 신문을 대거 주문했다. 자신의 지역구로 보내려는 용도였다. 한마디로 “제가 서울에서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 지역구 예산을 챙겼습니다”라고 홍보하겠다는 의도였다. A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해당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본격적인 예산 정국을 앞두고 여야의 기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종합 질의를 마치고 11월 15일부터 예산결산조정소위원회의 ‘진짜’ 예산심의가 시작됐지만 여야가 소위 규모를 두고 샅바싸움을 벌이면서 심의가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15명이냐 16명이냐 그것이 문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야 의원은 총 50명이다. 정당별 의석수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22명, 자유한국당 20명(위원장 포함), 바른미래당 19명, 민주평화당·정의당 등 비교섭단체 몫으로 3명이 할당돼 있다. 하지만 예결위의 진짜 핵심은 예산조정소위원회다. 470조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에 진짜 ‘칼질’을 가하고 특정 예산을 늘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50명의 예결위 위원들이 모두 심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소위를 만들어 심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쪽지 예산’을 밀어 넣는 곳도 예결소위다. 여야는 지역과 선수(選數)를 고려해 의원들을 배치한다. 전체 50명인 예결위에 들어가는 데도 나름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만 진짜 핵심은 예산조정소위 진입 여부라고 할 정도다.

올해는 예결소위 규모를 두고 여야가 초반부터 맞붙었다. 통상 예결소위는 15명이었으나 올해는 비교섭단체 몫으로 한 명을 더 배정해 16명으로 늘리자는 민주당·바른미래당의 주장과 기존의 15명을 고수해야 한다는 한국당이 격돌했다. 의석수에 따라 민주당 7명, 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1명, 비교섭단체 1명을 제안한 민주당에 바른미래당 예결위 간사인 이혜훈 의원이 “교섭단체인 바른미래당과 비교섭단체 정당이 같은 비율의 자리를 갖는 것은 부당하다”며 “바른미래당과 비교섭단체(민주평화당·정의당) 차이가 2 대 1이거나 1 대 0이 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조정식 민주당 예결위 간사가 “국회 의석수에 따라 비교섭단체가 한 명 참여해야 한다”며 ‘7(민주) 6(한국) 2(바른) 1(비교섭)’ 등 인원을 16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소위 인원을 늘리는 데 한국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관례대로 15명으로 구성하면 되는데 여당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위 위원 한 명 늘리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이면에는 여야의 치열한 수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 예결소위가 15명으로 구성되면 민주당은 심의 과정에서 한국당·바른미래당 등 8명의 보수 야당에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이미 공공 부문 일자리 예산을 포함해 각각 8조원, 3조원의 감액을 예고한 상황이다.

예결위 소위의 수적 구성에서 밀리면 야당의 감액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속내다. 16명으로 구성해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 소속 의원 등 비교섭단체 의원을 잠재적 우군으로 확보하면 소위 구성은 8 대 8로 최소한 균형을 맞춘다. 민주당 예결위 소속 한 의원은 “그동안 예결위에서 관례적으로 비교섭단체 몫으로 한 명을 배정해 왔다”면서 “소위 규모가 논란이 된 이면에는 여야가 서로 수적 우위를 지키려는 속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회법은 예산결산위원회는 11월 30일까지 심의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산안 심의가 끝나지 않으면 12월 1일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법정 시간이 없을 때는 예산안 싸움이 ‘야당의 시간’이었지만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도입된 이후에는 오히려 여당이 더 느긋한 상황이 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안 심의에 응하지 않으면 야당이 지역 예산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 시한이 있는 예산안 싸움은 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 홀대론’으로 명분 쌓아 예산 확보

‘지역 홀대론’은 예산 정국에서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과거에는 야당이던 호남을 지역구로 둔 호남 의원들이 주로 홀대론을 거론했지만 요즘에는 대구·경북 의원들까지 홀대론 대열에 가세한 게 달라진 풍경이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는 같은 날 호남 지역구를 둔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TK 지역구를 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예산 지역 홀대론을 주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가 처음 예산을 편성한 지난해 연말 ‘호남 홀대론’을 거론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올해는 KTX 호남선이 오송역을 우회하면서 호남 사람들이 비용과 편익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세종역 신설을 통한 직선화를 주장했다.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세종 경유 호남선 KTX 직선화 추진 의원모임’까지 만들어 이번 예산국회에서 이를 관철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낙연 총리는 11월 14일 이들 의원들을 만나 지역 현안을 경청한 뒤 “세종역 신설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세종역을 신설하면 청주·대전 등 주변 지역의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TK 지역 한국당 의원들도 대구·경북 발전협의회를 갖고 예산 챙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구·경북 발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의원은 “국가 예산은 9.7% 늘었는데 대구·경북은 사실상 줄었다. 경북은 0.1% 늘었다”며 “이건 홀대가 아니라 무시에 가까운 처사”라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TK 지역 의원들은 경북도 예산 신청액의 58%밖에 반영되지 않을 점 등을 문제로 꼽으며 예산 국회에서 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야 지역 의원들이 예산철마다 지역 홀대론을 들고나오는 데는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이 통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지난해 호남 홀대론을 놓고 민주당과 각을 세웠던 민주평화당은 예산 정국에서 모처럼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잠깐 욕을 먹더라고 예산을 따내는 게 지역구에서는 통한다”는 속설이 있다. 예산 심사가 끝난 후 지역마다 ‘이런 예산을 제가 따냈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게 의정 활동을 세세하게 알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예산을 따냈다고 내건 플래카드 액수를 다 합치면 전체 국가 예산의 2배가 넘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개별 의원이 확보해야 할 대규모 인프라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덜한 대도시보다 농촌이나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예산철에 더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 관계자는 “예산 국회 성과가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사실상 1년 치 성적표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예산 확보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평소 합리적인 의원도 예산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전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9호(2018.11.19 ~ 2018.11.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