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인간이 만든 최첨단 기술 정점…앞으로도 ‘윤리적 논란’ 이어질 것


[한경비즈니스=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세상에는 다양한 로봇들이 많다. 당분간은 기존의 기계나 도구를 로봇화하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미래에는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한 형태나 용도를 가진 로봇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중에는 대중의 이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은 로봇들도 있다.

실용적 목적과 윤리적 금기의 경계선상에 놓인 ‘킬러 로봇’과 ‘성인용 로봇’이 그 주인공들이다. 2018년 11월은 유엔에서 킬러 로봇의 금지 여부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지 딱 1년이 되는 시점이다.
‘킬러 로봇·성인용 로봇’의 은밀한 세계
자율성을 갖춘 로봇으로 발전

여느 상품들처럼 로봇도 연구실 수준을 넘어 상품화되려면 구매자들이 돈을 낼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산업용 로봇은 생산성 향상을, 서비스 로봇들은 안내와 청소 같은 각종 서비스를 인간 대신 해낸다. 이처럼 지금까지 로봇이 제공해 온 가치들은 생산성이나 효율 향상에 관련된 것이었다. 또 기술적 한계 때문에 로봇의 역할도 인간이 하기 어렵거나 지루하고 위험한 3D 업무에 국한돼 왔다. 그래서 로봇의 투입은 별다른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로봇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노동을 대행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전통적인 용도를 넘어 두려움 회피, 쾌락 추구 등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도 로봇이 발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킬러 로봇이다. 킬러 로봇은 운반·수송·정찰용 로봇들과 달리 살상용 무기 체계를 탑재하는 로봇을 지칭한다.

킬러 로봇의 수준은 무력 사용 대상 여부를 판단하거나 무기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통제를 얼마나 많이 받느냐에 따라 다양해진다. 그래서 유엔이나 각국 정부 등에서는 킬러 로봇을 지칭할 때 쟁점의 핵심인 ‘자율성(Autonomy)’이란 특징을 부각한 LAWs(Lethal Autonomous Weapons)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킬러 로봇의 사용 목적은 아군의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 투입 자체를 최소화함으로써 전쟁 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전장에 투입된 각각의 로봇을 일일이 인간이 조종해야 한다면 로봇 사용의 근원적 목적 중 하나인 인력 절감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킬러 로봇이 제공하는 원초적 가치는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승부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인간 전투원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맞닥뜨리는 극도의 두려움도 제거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원초적 가치를 제공하는 로봇은 성인용 로봇이다. 성인용 로봇은 또 다른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킬러 로봇 중에서 자주 사용되는 동시에 개발 속도도 빠른 것은 ‘UAV(Unmanned Aerial Vehicle)’, 즉 ‘드론’이다. 잘 알려진 군사용 드론인 MQ-1프레데터와 MQ-9 리퍼는 이륙에서 경로 이동을 거쳐 임무 수행을 마치고 착륙하는 비행의 전 과정에 걸쳐 인간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는 원격 통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완전한 수준의 자율비행을 할 수 있는 드론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노스롭그루먼의 X-47B는 이착륙, 공중 급유 등의 고난도 기동조차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해내면서 본격적인 무인기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주인공이 됐다.

영국 BAE시스템의 타라니스, 보잉의 팬텀레이 등에서 개발 중인 고성능 드론들은 첨단 스텔스 기능을 지닌 전익기 형태를 띠고 있어 전투기로서의 성능 자체도 웬만한 유인 군용 항공기 못지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중에서 드론이 발전하고 있다면 육상에서는 ‘무인 차량’에 살상용 무기를 탑재한 킬러 로봇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16년쯤 가자 지구 순찰용으로 엘비트시스템이 개발한 UGV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UGV는 민수용 트럭인 포드F150에 자율주행용 카메라 4대와 360도 관찰용 카메라를 달아 무인화했고 기관총을 장착해 공격 기능도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가 2015년 공개한 원격조종 무인 전차 우란-9은 여타 UGV와 달리 기관포 1문과 대공·대지 미사일 4발 등 공격용 무기를 대거 장착한 전투용 UGV인데 수년간 실전에서 테스트됐다고 한다.

원초적 가치를 주는 로봇의 등장

킬러 로봇이 다양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개발되는 것과 달리 성인용 로봇은 로봇·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성인용 로봇 중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2018년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CES)에 참여했던 R의 로봇이다.

R의 제품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인데, 사용자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피부처럼 느껴지는 소재로 만들어졌고 목소리나 표정으로 감정 표현을 하도록 AI 기술도 적용됐다.

또한 사용자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상형 캐릭터로 만들 수도 있고 학습 데이터를 업그레이드해 맞춤형 작동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최근 개발되는 성인용 로봇들은 소니의 아이보 등 컴패니언 로봇과 유사한 점도 엿보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스마트 스피커나 컴패니언 로봇에서 구현되는 감성 지능의 일부가 장기적으로는 성인용 로봇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킬러 로봇과 성인용 로봇은 형태와 용도 등 제품 측면에서는 상이한 반면 산업 측면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속성을 보인다. 첫째, 둘 다 첨단 기술의 복합체다.

킬러 로봇이든 성인용 로봇이든 행동 대상을 식별하고 각 대상에 적합한 대응 행위를 판단하고 수행해야 하므로 인식·이해·판단에 관련된 AI 기술과 소재, 메커니즘 등 로봇공학 전반에 걸친 다양한 기술들이 총동원돼야 한다.

둘째, 해당 산업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한계가 크다. 킬러 로봇은 윤리적 논쟁의 기폭제일 뿐만 아니라 각국이 안보 측면에서 공개를 꺼릴 정도로 중요한 첨단 기술의 결정체라는 점 때문에 관련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이 강제 착륙시킨 후 대내외에 공개한 미국의 정찰용 드론 RQ-180처럼 의도하지 않게 알려지는 것을 제외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킬러 로봇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성인용 로봇은 사업적으로는 적극 공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논쟁 때문에 쉽사리 공개하기 힘든 다소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로 제품 공개 행사에서조차 잠재 고객층인 성인들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공개되는 것도 많다.

이런 다양한 제약 때문에 두 로봇 분야에 대해서는 기술 동향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들의 매출, 시장 규모 등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관련 기업들의 법적 형태가 정보 공개 의무를 지지 않는 비상장 기업이거나 유한회사도 많고 킬러 로봇은 각국 정부가 정보 공개 자체를 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일부 자료들을 통해 관련 시장 추이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국제로봇협회(IFR)의 서비스 로봇 시장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군사용 로봇 시장은 약 7억600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데, 특정 시기에 수요가 집중되는 군수산업의 특성 때문인지 최근 3년간 연평균 15%씩 역신장한 것으로 보인다.

성인용 로봇 시장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업적 잠재력은 상당할 것으로 평가된다. 조사 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연관 시장인 성인 용품 시장이 2015년쯤에 2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0년께면 3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첨예한 윤리 논쟁의 대상

최근 모든 로봇 분야에서는 인간의 생사와 관련된 결정권을 로봇에 위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가 아주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또한 로봇의 행동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도 중요한 법적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생사 결정권과 관련된 킬러 로봇이나 사용 책임과 관련된 성인용 로봇도 당연히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킬러 로봇 분야에서는 유명 인사들의 주도하에 체계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스티븐 호킹, 엘론 머스크 등 유명 인사들이 설립한 민간단체 퓨처오브라이프는 자율성을 갖춰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기 개발·사용을 금지할 것을 유엔과 각국 정부에 꾸준히 촉구해 왔다.

그 결과 2017년 11월 유엔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로봇 무기의 연구·개발과 사용에 대한 규제 여부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구글 임직원 3000여 명이 최고경영자(CEO)에게 구글의 전쟁 사업 참여 반대를 선언하도록 촉구하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카이스트와 국내 모 기업의 공동 연구를 킬러 로봇 개발로 오해한 50여 명의 해외 학자들이 카이스트에 경고장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성인용 로봇도 마찬가지여서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책임 있는 로봇공학재단(FRR)’ 등 관련 단체들과 많은 연구자들은 성인용 로봇의 사용이 성의 상품화를 조장하고 성범죄를 만연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성인용 로봇은 구매나 사용 과정에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법·제도적인 문제에도 봉착해 있다.

특이한 가치를 제공하는 두 로봇 시장의 성장 과정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기술적 완성도 못지않게 윤리적·법적 제약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