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김기남 부회장 승진·SK하이닉스 이석희 대표이사 선임·LG화학 신학철 부회장 내정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재계에서 매년 실시하는 연말 인사는 각 기업들이 내년을 어떤 전략으로 임하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단서다. 올해도 주요 기업들은 저마다의 경영 철학을 인사에 투영하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을 둘러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전반적으로 ‘위기 대응’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물론 위기를 대응하는 방식은 기업마다 다르다.

◆반도체 이끈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승진

삼성전자는 12월 6일 ‘2019 정기 사장단·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늘 그래왔듯이 ‘성과’를 중시하면서도 이번 인사에서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사장단 승진자는 단 2명에 불과해 최근 4년 새 가장 적었다. 김기남 반도체·부품(DS) 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노태문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은 부사장에서 사장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탁월한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을 이끈 것이 승진 배경이다. 그는 올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영업이익 추정치 64조원)을 내는 데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특히 그가 맡은 DS부문의 영업이익은 올 1~3분기까지 38
조원이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79.1%에 달한다.

삼성전자 측은 “글로벌 초격차 경쟁력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부품 사업의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에도 매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의 승진 배경을 설명했다.
조용한 재계 연말 인사, ‘위기 대응’이 핵심 키워드
노태문 사장은 ‘갤럭시 S’와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개발한 주역이다. 올해 50세로 최근 5년 기준으로 ‘최연소’ 사장이 됐다. 젊은 리더십을 통해 IM(IT·모바일)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는 수평적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타 부서와의 협업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만큼 차세대 모바일 기기 시장에 대응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상 최대 실적이 확실시되지만 ‘승진 잔치’는 없었다. 이날 임원 인사도 단행하고 부사장 13명, 전무 35명, 상무 95명 등 총 158명을 승진시켰다. 지난해 221명보다 임원 승진자가 약 30% 줄었다.


또 지난해 선임한 김기남(반도체·부품)·김현석(소비자가전)·고동진(IT·모바일) 등 ‘트로이카 최고경영자(CEO) 체제’는 한 해 더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인사에 안정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가격이 4분기부터 하락하는 등 내년 경영 여건이 올해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나친 내부의 변화보다 검증된 리더십에 조직을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결과로 해석된다.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자리 이동이 일어났다. 삼성복지재단은 이날 이사회를 개최해 오너가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본인이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나 사회공헌 사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물산은 사장단 인사에서 설계·구매·시공(EPC)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장을 맡고 있는 김명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올렸다.

SK그룹도 삼성전자와 같은 날인 12월 6일 사장 승진자 4명을 포함한 총 151명의 승진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임원 승진 폭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주력 사업부문이 우수한 성과를 냈지만 경기 전망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 특징은 삼성전자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안정보다 ‘변화’를 통해 내년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SK는 ‘안정’보다 ‘변화’에 초점

SK그룹은 주요 계열사 사장단에 과감한 변화를 줬다. 특히 50대 초·중반의 젊은 전문 경영인을 전진 배치하며 ‘새판 짜기’에 돌입한 것이 눈에 띈다.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사상 최대 실적이 유력한 SK하이닉스는 박성욱 부회장이 용퇴를 결심하고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정보통신기술(ICT)위원장으로 옮겼다. 자리를 대신할 신임 CEO에는 박 부회장이 일찌감치 후임으로 점찍었던 이석희 사업총괄 사장이 선임됐다.

이 사장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연구원 출신이다. 미국 인텔로 이직해 약 10년간 몸담으며 최고기술자에게 수여되는 ‘인텔 기술상’을 3회 수상한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당시 박 부회장이 그를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조용한 재계 연말 인사, ‘위기 대응’이 핵심 키워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내년 불안한 반도체 업황을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SK건설 사장에는 안재현 글로벌비즈 대표가, SK가스 사장엔 윤병석 솔루션&트레이딩 부문장이, SK종합화학 사장엔 나경수 SK이노베이션 전략기획본부장이 승진했다.

LG그룹은 지난 11월 연말 정기 임원 인사를 마쳤다. 40세 나이로 LG그룹 총수가 된 구광모 회장 취임 후 첫 정기 인사로 ‘안정 속 변화’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승진자는 사장 1명, 부사장 17명, 전무 33명, 상무 신규 선임 134명 등 총 185명이다. 이는 지난해 157명보다 17.8% 증가한 규모다. 부회장 대부분을 유임시킨 가운데 유일한 사장 승진자는 김종현 LG화학 부사장이다. 자동차 배터리 신규 수주 등을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전지사업본부장(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조용한 재계 연말 인사, ‘위기 대응’이 핵심 키워드
조직 재정비를 위한 자리 변동도 있었다. 우선 LG이노텍은 정철동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서브원도 수장이 바뀌었다. 그간 서브원을 이끌었던 이규홍 대표이사(사장)는 LG스포츠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동열 서브원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부장(사장)이 서브원 대표이사 역할을 대신 맡게 됐다.

LG그룹 광고 지주사인 지투알에는 정성수 HS애드 어카운트 서비스 1사업부문장(부사장)이, LG경제연구원장에는 김영민 LG경제연구원 부사장이 각각 선임됐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외부 인사의 영입이다. 앞서 LG화학 역시 정기 인사 전인 지난 11월 9일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을 내정한 바 있다. LG화학이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조용한 재계 연말 인사, ‘위기 대응’이 핵심 키워드
LG화학은 전통적으로 내부 순혈주의에 따라 LG맨들만 수장 자리에 올랐다. LG화학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이끌 적임자로 그를 낙점한 것이다. 신 부회장이 몸담았던 3M은 대표적인 혁신 기업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구·개발로 연결해 혁신 제품을 출시하며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부회장은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미국 본사로 발령돼 부회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향후 LG화학의 혁신을 선두에서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기 인사에서도 지주사인 (주)LG 경영전략팀장(사장)에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대표를 영입했다. 그는 통신·미디어·테크놀로지 분야 전문가다. 그의 영입을 통해 내년 LG그룹은 새 먹거리로 육성 중인 인공지능(AI)·로봇·전기차 등의 신사업에 보다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