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트러블 반복하며 ‘협조적 균형점’ 도달…미·중 무역 분쟁도 ‘균형’ 찾아갈 것
게임 이론으로 본 G2의 전쟁, 배신 아닌 협조가 답이다
[한경비즈니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뷰티풀 마인드’는 노벨상을 수상한 존 내시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야기다. 심리학자는 존 내시의 정신분열증이 과대망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겠지만, 필자는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게임 이론’을 묘사한 장면이 선명하다.

존 내시는 금발 여인을 꾀어내려는 친구들의 대화에서 게임 이론을 착안한다. 한 친구가 “경쟁에서 개개인의 야망은 공익에 기여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자 내시는 “애덤 스미스는 틀렸다”고 반박한다. 금발 여인을 향한 남자들 개개인의 야망은 공익에 기여하기는커녕 싸움을 일으키고 여성들을 술집 밖으로 나가게 만들 뿐이라는 반론이다. 그 누구도 금발 여인에게 대시하지 않는 것이 공익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야 친구들은 싸울 필요도 없고 다른 여자들은 상처받지 않으므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 네 가지 시나리오

두 남자의 이야기를 게임 이론으로 단순화해 보자. 서로 접근해 경쟁하다가 금발 여자와 데이트를 못하게 되는 것이 내시 균형(Nash Eguilibrium)이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경제학에서 가정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 합리성과 집단 합리성의 충돌 때문에 생긴 딜레마 상황이다.

여성을 둘러싼 남자들 간의 경쟁이나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나 게임의 성격은 유사하다. 각 국가(개인)의 개별 합리성과 글로벌 경제(친구들)의 집단 합리성의 충돌이다.

게임은 게임 참가자(players), 참가자들의 전략(strategy), 게임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얻는 보상(payoff) 등 세 가지로 구성된다. 참가자는 미국과 중국이고 전략은 글로벌 공조에 대한 협조와 배신이다. 보상은 경제성장이다. 논리적 가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경제·정치적 힘이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했다.

네 가지 조합이 도출된다. 미국이 배신하고 중국이 협조하면 미국 경제는 성장한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상황이다. 미국이 협조하고 중국이 배신하면 미국 경제는 부진의 늪에 빠진다. 미국의 경상 적자가 심화되는 시나리오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이 모두 배신함에 따라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환율 전쟁이 확산되면서 G2(미국과 중국) 경제 모두 감속하는 것이다. 최선은 미국과 중국 모두 협조하면 G2 경제가 완만히 성장할 때다.

게임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 협조보다 배신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내시 균형이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 대공황 이후 각국의 선택에서 찾을 수 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은 1930년 6월 초고율 관세법인 스무트-할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조치에 자극받은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수입관세를 높임으로써 전 세계에 보호무역주의의 연쇄효과를 일으키게 됐다.

내시에 이어 2005년 게임 이론으로 둘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아우만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초기에는 비관적 균형점에 도달하지만 게임이 반복되면 협조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를 ‘전래 정리’라고 한다.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다가 이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협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크음악처럼 누가 만든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 ‘전래(fork)’ 정리라고 이름 지은 것을 수학 박사인 아우만이 이를 풀어냈다.

이를 현 상황에 대입해 보자. 유한 게임이라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의 종착역은 최악의 상황에 치닫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무한 게임이라면 게임을 지배하는 구조가 바뀌게 된다. 배반 후 따라오는 보복의 위협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보복한다’는 전략을 취하면 게임의 지배구조가 변화한다. 한 번으로 끝나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만 게임이 반복되면 양국 간의 협조가 내시 균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래 정리다.
게임 이론으로 본 G2의 전쟁, 배신 아닌 협조가 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달러 약세’


미국과 중국이 자발적으로 자국 이익 우선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를 위한 이타주의로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보복’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당장은 이익이겠지만 무역 보복에 따른 미래 손실이 커지면 커질수록 차라리 협조로 나아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마주한 딜레마는 상대방의 선택과 관계없이 일단 배신하는 편이 낫다는 데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 것이고 그 충돌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이기적 행동보다 이타적 행동에 따른 결과가 더 낫다.

더욱이 두 국가 모두 장기적으로 글로벌 공조가 최선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경제 냉전(New Economic Cold War) 시대라고 표현하지만 소련과 중국은 다르다. 소련과의 냉전 시대 미국은 소련과 경제적 유기성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과는 이미 금융과 실물 모두 연결돼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고 이 돈으로 미국이 중국의 상품을 구입하는 형태를 일컬어 ‘판매자 금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중국과 미국은 서로를 자본 조달처와 상품 판매처로 필요로 한다. 성장으로 서로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나친 양보로 초래할 수 있는 일본의 과거 ‘잃어버린 10년의 재현’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빠른 성장으로 자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급속히 붕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1930년대와도 다르다. 당시 미국은 저축도 남아돌았고 무역수지도 흑자였다. 지금은 저축도 없고 무역수지는 적자다. 여전히 미국은 자국의 수요를 달러 유출로 풀어내고 있다.
2019년 1월 1일은 미국과 중국의 수교 40주년이다. 이제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둘의 공약수는 바로 ‘미래’에 있다. 1930년대와 달리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최전선에 ‘지식재산권’과 ‘기술이전’이 자리해 있다. 무역 전쟁이 쉽게 종전으로 가기 힘든 배경이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지만 폭풍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불균형보다 균형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글로벌 경제 재편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부과보다 달러 약세를 원한다. 달러를 610% 약세로 만들면 전 세계 수출품에 대해 10%의 경쟁력이 생긴다.
중국은 일본의 교훈을 학습해 왔다. 일방적 자국 통화 강세와 비생산적인 부동산 상승의 부작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는 중국에 급격한 위안화 강세의 부작용을 일깨워 줬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도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10년 전 금융 위기 직후 열린 G20 런던 회의의 첫 반응이 떠오른다. 중국이 처음 참석했고 글로벌 공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기대했다. 하지만 성명서 내용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2009년 4월의 런던 G20은 각국이 금융 완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성명서보다 공감대가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의 기술 우위를 지켜주는 방안과 위안화의 점진적 강세 유인 등이 가늠자가 될 것이다. 합의문 자체보다 이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