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시장 역행하는 빅홀더들의 혈투…엘리트들의 영향력 줄며 생태계 안정될 것
비트코인 캐시 ‘하드포크 내전’의 진짜 의미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 ABC를 내 정원의 비료로 쓰겠다.” 비트코인 SV 진영을 이끌고 있는 크레이그 라이트의 발언이다. 비트코인 ABC 진영의 자원이 고갈될 때까지 싸움을 지속하겠다는 협박이다. 이는 단지 협박에 그치지 않고 비트코인 캐시 내전을 치르는 두 진영 모두 상대의 코인을 내던지는 방식으로 암호화폐 시장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

일반인들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유로두 진영은 서로를 없애려고 한다. 그것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의 코인을 시장에 던져 상대를 제압하는 파괴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비중이 높은 인물들이 주축이 돼 서로를 없애려는 전쟁을 하는 바람에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까지도 덩달아 실추되고 있다.

하드포크는 의견 차이로 발생한다. 발단 자체가 싸움이다. 하드포크가 일어나면 상대방도 이쪽의 코인을 가진다. 상대의 코인을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자신의 코인을 매집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은 빤한 수순이다.

하지만 자신이 파괴적인 공격을 감행하면 상대방도 동일한 수단을 사용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둘 다 경제적인 손실을 입기 때문에 싸움이 실제로 이런 식의 상호 파괴로 전개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중요한 하드포크들은 논쟁이 요란했어도 파괴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다오(DAO) 사태로 이더리움이 하드포크할 때도 논쟁이 치열했지만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으로 갈라선 직후 두 코인의 거래 비율이 안정되면서 싸움이 멎었다.

그간의 하드포크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

비트코인 캐시가 비트코인으로부터 갈라져 나올 때도 비트코인 진영의 반응은 격했다. 비트코인 캐시가 단 한 번의 블록도 생성할 수 없다고 장담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국의 대형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비트코인 캐시를 절대로 거래소에 상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기에 비트코인 캐시를 투매해 이익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하는 비트코이너들도 있었다. 게다가 비트코인의 채굴 파워가 막강했기 때문에 다양한 공격이 가능했다. 비트코인 캐시가 1주일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비트코인 캐시는 준비가 철저했고 채굴 난이도 코드를 바꾼 덕에 하루가 지나기 전에 첫 블록을 생성해 조롱하는 이들의 허를 찔렀다.

비트코인 진영은 마이닝 파워를 동원해 51%로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나 공격자들은 오합지졸이었다. 비트코인 캐시의 시장가격은 낮지 않았고 쉬운 난이도 덕에 채굴이 쉬웠다. 한동안 비트코인 캐시는 1분에 여러 차례 채굴이 일어났다. 공격하러 들어왔던 채굴자들은 비트코인 캐시의 수익률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닫고 눌러앉기도 했다.

막강한 마이닝 파워로는 비트코인 캐시의 시스템을 불완전하게 만들 수 없었다. 당시 비트코인 참여자들은 지금의 비트코인 캐시처럼 중앙화돼 있지 않았고 합리적인 다수의 경제인들이 주축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호황이었다. 빅홀더들이 던지는 비트코인 캐시를 넉넉히 받아냈다. 저가에 팔아 치운 이들만 손실을 보는 구조라는 게 바로 드러났다. 비트코인 캐시의 성공적인 분리 이후 하드포크는 공포감을 자아내기는커녕 무상증자와 같이 득이 되는 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비트코인 캐시 이후 지금까지 비트코인에서만 40차례 이상 하드포크가 일어났다. 하지만 비트코인 캐시와 또 다른 하드포크인 비트코인 골드처럼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PoW) 방식은 코인 가격과 시스템의 강건성이 순환적 구조를 이루기에 악순환을 역전시켜 선순환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코인이 가치를 가지면 채굴자가 생기고 채굴자가 생기면 시스템이 강건해지고 시스템이 강건해지면 코인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나 반대 순환이 더 일반적이다. 코인 가격이 낮아 채굴자가 없고 채굴자가 없어 시스템이 허약해지고 코인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데 이를 역전시키려면 하드포크의 명분이 뚜렷하고 이를 대중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PoW의 순환 구조를 이용해 비트코인 캐시 내전의 양측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상대의 코인을 시장에 내다 팔아 가치를 떨어뜨리면 손실이 두려워 채굴자들이 떠나고 채굴자가 없으면 시스템이 허약해지므로 가격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 이에 대해 상대방도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채굴자들이 손실을 보게 됐다. 일반 투자자나 채굴자들에게는 불확실성이 가장 나쁘다. 승패가 확정되면 그에 맞춰 모든 자원이 정렬돼 투자나 투입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역행하는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비트코인과 달리 비트코인 캐시 진영에서는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짧은 만큼 분산성을 이루지 못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해를 역행해 싸움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양 진영의 엘리트들이 그간 손쉽게 얻은 부를 소진하는 시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싸움이 지속되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얻은 부도 잃게 된다. 상대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멈추게 하기 위해 스스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는 고통의 한계선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엘리트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로서 비트코인 캐시는 물론 암호화폐 전체에 또 하나의 내성이 유전자처럼 각인될 것이다.


[용어 설명] 작업 증명(PoW : Proof-of-Work) : P2P 네트워크에서 일정 시간 또는 비용을 들여 수행된 컴퓨터 연산 작업을 신뢰하기 위해 참여 당사자 간에 간단히 검증하는 방식. 또는 블록체인에서 정보를 랜덤한 난스(nonce) 값과 해시(hash) 알고리즘을 적용해 설정된 크기의 해시보다 작은 값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새로운 블록을 블록체인에 추가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돋보기] 하드포크가 ICO보다 더 나은 이유
일반적인 암호화폐 공개(ICO) 대신 비트코인처럼 유력한 코인을 하드포크해 코인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이미 널리 배포된 상태이기 때문에 에어드롭(airdrop : 보상)할 필요가 없다. ICO 토큰은 초기에 생태계 확산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에어드롭을 한다. 토큰을 공짜로 얻은 이들은 조금만 가격이 올라도 막대한 부를 손쉽게 손에 쥘 수 있어 에어드롭은 토큰 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둘째, 토큰을 발행하는 주체가 토큰을 팔지 않기 때문에 증권 관련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ICO 토큰이 주식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미국의 증권감독위원회(SEC)는 토큰의 성격보다 발행자와 투자자의 관계를 유가증권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드포크하면 코인이 널리 유포된 상태에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고 증권 관련 규제도 피할 수 있어 생태계에 구축이 우선이라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주체가 얻는 당장의 이익이 없다는 것 때문에 그간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대량의 로스트 코인이 있고 하드포크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변경하면 로스트 코인을 되살릴 수 있다. 비트코인의 로스트 코인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코인에서 로스트 코인만큼 주최 측이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코인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코인의 가격이 오르고 주최 측이 확보한 자산의 가치도 증가한다. 남은 문제는 코인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장에 납득시키는 것인데, 이는 ICO도 마찬가지로 직면하는 어려움일 뿐이다.

ICO는 규제 불확실성과 에어드롭에 따른 가격의 불안정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구축하고자 하는 코인 생태계가 진정으로 가치가 있다는 확신만 줄 수 있다면 비트코인의 하드포크와 로스트 코인의 수집으로 얼마든지 빠르고 안전한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