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리더가 직접 ‘판결’하면 불만 점점 쌓여…시간 걸리더라도 ‘기다려야’ 장기적으로 득
갈등 관리의 첫째 원칙, 스스로 해결하게 하라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갈등 해결을 위한 ‘달콤한’ 해결책은 많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기,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달콤한 해답이 현실이 되면 애석하게도 ‘씁쓸한’ 결론으로 끝나 버릴 때가 많다.

이유는 뭘까. 제대로 된 경청을 하지 않아서? 제시한 대안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잘 들어 줘도, 충분히 양보한 대안을 제시해도 거절당할 때가 있다. 이유는 뭘까.

◆오락가락하려면 차라리 ‘쭉 나쁜 상사’가 돼라

질문을 하나 해 보자. 아래의 문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자연계에 폭풍이 필요하듯이 정치계에도 때로는 혁명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판단을 돕기 위해 이 말의 출처를 밝힌다. 미국인이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제3대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이야기다. 어떤가. 올바른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철학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러면 이렇게 한 번 물어보자. 만약 위의 말을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했다면? 혹시 사회를 흔들기 위한 불온한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사실 이것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진행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다. 실험 결과 제퍼슨의 말이라는 정보를 들은 학생의 90% 이상이 “당연한 생각”이라고 답했다. 반면 똑같은 말이지만 레닌의 연설이라고 알고 평가한 학생들은 90% 이상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텍스트의 내용보다 그 말을 누가 했느냐가 사람의 판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갈등 관리의 방법을 얘기하다 갑자기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심리학 실험 얘기를 하는 이유는 효과적 갈등 관리를 위해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리더가 갈등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 또는 어떤 말을 하느냐가 갈등 당사자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닐 때가 있다. 그 대신 리더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갈등 관리를 위해서는 리더 스스로가 부서원들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신뢰받는 리더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핵심은 ‘일관성’이다. 예를 들어보자. 상사가 부하에게 기획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부하가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왔다. 그런데 마침 기획서를 보고받는 그날 아침 상사가 부인과 크게 다퉜다. 또 여윳돈을 모두 주식에 털어 넣었는데 아침에 시황을 보니 자신이 산 주식만 하한가다. 한마디로 기분이 최악인 날이다.

상사는 기획서를 받자마자 읽어 보지도 않고 말한다. “똑바로 일 안 해? 이게 기획서야? 다시 만들어 와.”

부하는 절치부심, 다음 날 아침 새로운 기획서를 준비해 간다. 그런데 불행히도 문서 저장을 잘못해 어제와 똑같은 기획서를 인쇄했다.

상사에게 기획서가 전달되는 순간 부하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채고 “잠깐만요”라고 말하면서 기획서를 회수하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이날 아침 상사는 부인과 극적으로 화해했다. 또 어제 하한가였던 주식이 모두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한마디로 기분이 최고다.

어제와 똑같은 기획서를 대충 읽어본 상사가 말한다. “거봐. 고민하니까 훨씬 좋아졌네. 진작 이렇게 만들어 와야지. 당신은 하면 된다니까.”

이때 칭찬을 듣고 있는 부하의 마음은 어떨까. 기쁠까? 아니다. 상사에 대한 신뢰가 확 무너진다. 그래서 리더십 학자들은 말한다. ‘훌륭한 리더는 예측 가능한 리더’라고 말이다. 부하에게는 최악의 리더가 ‘그때그때 다른 리더’다.

똑같은 잘못을 했어도 어떤 때는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떤 때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는 리더가 신뢰할 수 없는 리더다. 한마디로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락가락하는 상사를 믿고 따를 부하 직원은 없다. 명확한 기준을 갖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라. 좋았다 나빴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기보다 차라리 쭉 나쁜 게 부하에게 신뢰를 얻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구성원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제공하라

그러면 신뢰가 부족한 리더는 갈등 해결 자체가 불가능한 걸까.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겐 좀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많은 리더는 갈등 상황이 닥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가 많다. 회피하며 알아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과 싸우는 둘을 불러 답을 내 주는 것이다.

회피형 리더는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면 둘째로 답을 내 주는 리더의 행동은 제대로 된 갈등 해결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아니다. 당장의 급한 불을 껐을지 몰라도 온전한 의미의 갈등 해결은 아니다. 리더의 조정안을 받아 든 두 사람은 찜찜한 마음으로 또 다른 갈등을 준비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리더의 판단이 상대에게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더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면 오해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면 이들에게 필요한 행동은 뭘까. 쉬운 예로 생각해 보자. 퇴근 시간,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때 어떤 택시 운전사는 이렇게 말한다. “1호 터널로 갈게요.”

운전사의 ‘촉’이 좋아 운 좋게 1호 터널이 막히지 않으면 서로 행복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터널 안은 이미 주차장이다. 짜증이 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택시비 조금 더 받아 내려고 일부러 막히는 길 찾아 온 거 아니야?’

똑같은 상황, 노련한 택시 운전사는 이렇게 묻는다. “1호 터널로 갈까요, 아니면 3호 터널로 갈까요?”

잠깐 고민하던 당신은 ‘1호 터널이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1호 터널은 오갈 데 없이 꽉 막혀 있다. 그때 당신은 “내가 하자고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뭐”라며 본인의 판단을 받아들인다.

자, 택시는 똑같이 막히는 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당신의 판단은 180도 다르다. 전자는 운전사의 ‘일방적 판단’에 의한 결과였지만 후자는 스스로 결정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제대로 된 갈등 관리의 핵심이다. 갈등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했다고 생각할 때 결과를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이 이를 잘 실행하지 못한다. 싸우는 이들을 불러다 놓고 얘기를 시키면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갈등의 본질을 잘못 이해해 생긴 오해다.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리더는 본능적으로 답을 주고 싶다. 판결을 내려줘야 하는 판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단 참자. 그들이 쓸데없는 넋두리를 하는 것 같더라도 기다려 주자. 그 대신 부하 직원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힘들고 괴롭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해 더 나은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이를 위해 구성원에게 얼마나 신뢰를 얻고 있는지, 구성원이 스스로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게끔 기다려 주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게 어떨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3호(2018.12.17 ~ 2018.1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