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자동 소멸 시행 앞두고 논란…외항사에 비해선 조건 나쁘지 않은 편

항공사 마일리지의 진짜 가치는 얼마?
여행이나 출장 등을 목적으로 비행기 좀 타봤다는 이들은 최근 항공사 마일리지 챙기기에 분주하다. 내년 1월 1일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 마일리지 10년 초과분이 자동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두 항공사들은 저마다 ‘똑똑한 마일리지 사용’을 권장하며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용객들의 눈높이에는 영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마땅한 사용처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일방적인 마일리지 소멸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회계상 부채 급증이 소멸 배경

논란의 시작은 2008년 이뤄진 두 항공사의 약관 개정에서 비롯됐다. 항공 마일리지는 항공사들이 자사 항공편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구간별로 일정한 마일을 적립해 주는 제도다. 한 번 쌓아두면 향후 같은 항공사를 이용해 국내외로 나갈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항공사로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쌓여 가는 마일리지가 일종의 ‘채무’로 인식되는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당시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이 예고된 상태였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IFRS는 마일리지 판매 대금 전체를 선수부채로 인식한다.

단기적으로 장부상 인식해야 하는 부채가 급증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해 재무 상태 개선 차원에서 쌓여 가는 마일리지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항공은 5년, 아시아나항공은 고객 등급에 따라 5~7년 뒤 마일리지가 소멸하도록 약관을 변경했다. 물론 이용객들이 가만있었을 리 없다. 쌓아둔 마일리지를 쓰지 못한 채 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다. 2010년 항공사 마일리지와 관련한 조정안을 내놓고 5~10년 사이에 유효기간이 만료되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지금처럼 대한항공은 10년, 아시아나항공은 등급에 따라 10~12년으로 마일리지 소멸 기한을 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내년 1월 1일부터 처음으로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가 자동으로 없어지게 된 것이다.

대한항공은 2008년 7~12월,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10~12월 적립된 마일리지가 그 대상이다. 단 2008년 7월(대한항공) 또는 10월(아시아나항공) 이전에 적립된 마일리지는 유효기간이 없고 마일리지 사용 시에는 유효기간이 적게 남은 마일리지부터 순차적으로 차감된다.

최근 두 항공사는 마일리지 사용처를 늘리고 내년 소멸되는 마일리지를 보유한 고객들에게 문자나 e메일 등을 통해 소멸 시일과 규모 등을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객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데 실패한 모습이다.

온라인상에는 마일리지가 소멸에 대한 비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용객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마일리지 사용처가 마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사용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활용할 수 있는 상품 중 대부분이 여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국내외 호텔이나 렌터카 이용이 가능하지만 모두 여행을 가야 쓸 수 있다. 또한 이마저도 한진그룹 계열사로 제한을 뒀다. 여행 외 상품으로는 담요나 인형, 모형 비행기 등이 있지만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커피·치킨·영화관 등 대체 사용처를 마련해 마일리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매주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가격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않아 보인다. 1마일의 가치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확인할 수 없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보통 1마일리지를 20원 정도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대체 사용처는 대략 1마일리지 가치를 10원 정도로 매겨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다.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약관에 따라 여유 좌석에 한해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기나 인기가 많은 노선 항공권을 마일리지를 사용해 구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여유 좌석이 얼마나 되는지는 항공사 영업 비밀에 해당돼 공개하지 않아 이용을 더욱 어렵게 한다.

다만 항공사들도 억울한 면이 있다. 이미 외국 항공사들은 모두 마일리지 소멸 정책을 시행 중이다. 게다가 유효기간만 놓고 본다면 국내 항공사만큼 소멸시효를 오래 두는 곳도 사실 없다. 미국 델타항공과 같이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두고 있지 않은 곳도 일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외항사들의 마일리지 소멸 기한은 대부분 10년 보다 짧다.
항공사 마일리지의 진짜 가치는 얼마?
◆“국내 항공사 유효기간이 가장 길어”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부 외항사는 타인에게 마일리지 양도가 자유롭거나 다양한 사용처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항공사의 유효기간이 가장 길다”며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측도 이런 부분을 이용객들이 모르는 게 다소 아쉽다는 설명이다. 다만 비난이 이어지는 만큼 내년에는 이용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다 개선된 마일리지 정책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미 두 항공사는 국토교통부와 합의해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마일리지 제도를 개선하기로 한 상태다.

내년부터 휴가철 등 성수기에도 마일리지 좌석을 5% 이상 배정하기로 했고 분기별로 전체 공급 좌석 중 마일리지 좌석 비율도 공개하기로 했다.

5000마일 이하 소액 마일리지를 보유한 소비자를 위해 항공 분야 이외의 사용처를 꾸준히 확대한다. 마일리지 사용가치가 지나치게 낮은 분야는 공제 마일리지를 조정해 사용가치도 높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안들이 비난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소멸시효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홍수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소멸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며 “조만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