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휠라 돌풍…LF·신세계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신
사업 다각화로 재편되는 패션 시장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패션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의 맏아들인 이규호 전무가 코오롱 패션사업의 키를 쥔 데 이어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선장도 바뀔 예정이다.

16년간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책임지던 이서현 사장은 내년부터 삼성복지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이끌어 온 이 사장이 물러난 이후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행보에 대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 전 사장은 신사복 위주였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수익성 개선 작업을 통해 패션 사업을 흑자 전환하는 데도 성공했다. 준지·구호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 해외시장에 진출했고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를 론칭했다. 하지만 에잇세컨즈 ‘2020년까지 10조원 매출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와 달리 브랜드 론칭 6년이 지나도록 매출 2000억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삼성물산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1조2649억원을 기록하며 패션업계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로 재편되는 패션 시장
독보적인 1위는 휠라코리아다. 3분기 누적 실적이 이미 2조193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까지만 해도 휠라 전체 매출은 1조원에 못 미쳤다. 하지만 2017년 2조530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패션업계 최강자로 급부상했다.


휠라의 성공 비결은 과감한 브랜드 리뉴얼이다. ‘레트로’와 1990년대 휠라 로고를 활용한 ‘헤리티지 라인’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1020세대에게 먹혀들었다.

정확한 타깃 분석과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 럭셔리 브랜드 펜디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오래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했다.

휠라코리아 국내 매출은 휠라·휠라키즈·언더웨어·골프·아울렛·기타로 이뤄져 있다. 경쟁사와 달리 백화점 컨템퍼러리 브랜드나 럭셔리 브랜드의 도움 없이도 유일하게 패션업계 2조 클럽을 지키고 있다. 휠라의 고공 행진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내년엔 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출 1조 위기 온 코오롱

사업 다각화로 재편되는 패션 시장

한때 패션업계 빅4로 불리던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이하 코오롱FnC)는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겨울 패딩 매출이 저조하면 코오롱FnC의 연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코오롱FnC의 매출액은 1조967억원으로 1조원을 겨우 넘겼다.


코오롱FnC에도 전성기는 있었다. 2010년 회사 분할 이후 코오롱FnC의 매출액은 매출 기준 업계 순위도 이랜드·삼성물산 패션부문·LF에 이어 4위까지 올랐다. 이 기간 영업이익 역시 70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했고 영업이익률도 6%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코오롱FnC의 봄날은 짧았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출액은 1조2490억원, 1조1516억원, 1조1372억원으로 계속 감소했다. 매출 기준 업계 순위도 지난해 상장사 기준 6위까지 추락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된 데다 ‘캐시카우’였던 코오롱스포츠마저 아웃도어 시장 둔화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코오롱FnC는 좀처럼 부진을 떨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69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코오롱FnC의 부진을 코오롱스포츠 위주의 단순한 포트폴리오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경쟁사들이 트렌드에 따라 수입 브랜드·온라인·가구·화장품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대응에 나설 때 코오롱FnC는 아웃도어 의류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스포츠 의류가 주력인 코오롱스포츠의 연매출은 한때 5000억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경쟁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아웃도어 시장이 침체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아웃도어 열풍이 지나간 이후 성장을 견인할 만한 브랜드도 마땅하지 않다.
2010년대 초반 ‘대박’을 터뜨린 쿠론 핸드백은 예전의 명성이 무색하다. 골프 브랜드 ‘엘로드’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시한 젊은 감각의 브랜드 ‘왁’도 성과가 저조하다. 코오롱FnC의 제화 브랜드 ‘슈퍼콤마비’는 수익성이 떨어져 론칭 3년 만에 사업을 접기로 했다.


코오롱은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인사 쇄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코오롱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전 회장의 아들 이규호 전무를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2012년 입사한 이 전무는 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글로벌·코오롱 등 굵직한 계열사들에서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이 전무는 지주회사 코오롱 전략기획 업무에서 패션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된 셈이다.

이 전무는 성장 둔화에 직면한 패션 사업의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신규 브랜드 론칭은 물론 첨단 통신기술이 탑재된 커넥티드 패션(connected fashion) 사업을 적극 육성할 것으로 분석된다.

커넥티드 패션은 사물인터넷(NB-IoT)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된 웨어러블(wearable) 의류를 일컫는다. 온라인 서비스를 확장해 원가 부담을 줄이고 e커머스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이 전무의 과제로 꼽힌다.


코오롱FnC는 최근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온라인 ‘코오롱몰’을 강화하며 ‘플랫폼’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자사 브랜드 외에 20~30대 사이에서 인기 많은 중소 업체를 입점시키며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코오롱몰에 입점한 외부 브랜드가 작년 대비 1.2~1.5배 증가했다. 여기에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 액세서리 등 제품들을 선보이며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돌파구 찾는 패션 기업


다른 패션 업체들은 전부터 신사업 기회를 찾아 나섰다. 브랜드 인수로 사업을 확장하고 가구·화장품·리빙 소품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변화를 꾀했다.


LF는 지난 몇 년간 패션을 넘어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LF는 2007년 LF푸드를 100% 자회사로 설립해 외식 사업에 진출, 현재 일식 라멘 전문점 ‘하코야’, 시푸드 뷔페 ‘마키노차야’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에는 LF푸드를 통해 베이커리 카페, ‘퍼블리크’의 지분을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일본 식자재 유통 전문 기업 모노링크와 유럽 식자재 전문 기업 구르메F&B코리아를 인수, 외식에 국한됐던 사업 영역을 식품 분야로 넓혔다.

자회사인 LF푸드는 지난해 1월 수제 맥주 브루독 등을 유통하는 주류 유통 업체 인덜지(Indulge)의 지분을 50% 이상 인수했다. 5월에는 일본 식자재 유통 회사 모노링크를 300억원대에 인수했고 9월에는 유럽 식자재 기업 구르메F&B의 한국지사 지분 약 72%를 360억원에 매입했다.


2015년에는 라이프스타일 전문 케이블방송 동아TV를 인수해 방송 사업에 진출했다. 2017년 5월에는 여행·레저 전문 케이블 채널인 폴라리스TV까지 인수하며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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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다각화로 재편되는 패션 시장
가장 최근에는 국내 3위 규모의 부동산 신탁회사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했다. 패션 기업이 화장품·리빙소품·식품으로 확장한 사례는 많지만 부동산업계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낯선 일이었다.


LF의 올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382억원, 639억원으로 전년 동기 7785억원, 648억원에 비해 매출이 증가했다. 패션 영업부문에서 7600억원, 패션 외 기타부문에서 1148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패션 외 사업부분은 지난해에 비해 약 2.5배 상승했다.


현대백화점 패션 계열사 한섬은 M&A로 몸집을 키우면서 지난해 패션업계 4위를 기록했다. 한섬은 지난해 인수한 SK네트웍스 패션부문 리빌딩과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허제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한섬은 성장이 정체된 내수 의류 시장 내에서도 탄탄한 브랜드력을 기반으로 성장 중”이라며 “노세일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타임·마인·시스템 등 대표 브랜드를 중심으로 중고가 시장 내 높은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로 재편되는 패션 시장
2019년엔 수익성이 둔화되는 수입 브랜드를 철수하고 SK네트웍스를 인수하며 생긴 한섬글로벌·현대G&F에 리브랜딩을 거친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섬은 지난해 3월 SK네트웍스를 인수하며 한섬글로벌의 클럽모나코·세컨플로어와 현대G&F의 SJYP·타미힐피거·캘빈클라인 등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더 강화됐다.

한섬은 이 브랜드에도 노세일 정책을 유지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품목할인·브랜드데이 등의 비정기적으로 운영됐던 프로모션들을 줄여 나가고 있다.

회사 측은 “브랜드 본연의 가치와 상품력 등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객관계관리(CRM) 전담 부서를 신설해 고객별 맞춤형 마케팅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자체 브랜드 더캐시미어·래트바이티의 성장세 또한 고무적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더캐시미어는 출시 2년 만인 2017년 손익분기점 달성 이후 본격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패션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미 사업다각화에 성공했다. 올해 실적을 이끈 동력도 패션이 아닌 화장품이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사업부의 매출액은 지난해 630억원에서 올 상반기 947억원으로 급증했다.

매출 비율(올 상반기 기준)이 16%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 기여도는 66%에 달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올 연말 기준으론 화장품 사업부 단독 매출이 2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기대도 쏟아진다. 특히 2012년 인수한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공이 컸다.

비디비치는 홀로 월매출 100억원을 달성 중이다. 또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는 수입 향수 카테고리 확대가 수익성을 견인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원가에 비해 마진이 많이 남고 신세계가 수입하고 있는 브랜드가 딥티크·바이레도·산타마리아노벨라 등 고가 제품이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화장품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고 올해 럭셔리 한방 화장품 ‘연작’을 출시했다.


홈퍼니처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SI의 리빙 브랜드 ‘자주’는 한국 대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