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04호 (2018년 12월 26일)

“은행, 이대로 가면 IT 기업에 밀려날 것”

기사입력 2018.12.24 오전 10:46

-김윤주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 “테크 기업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미래 없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10년 후 금융 서비스업의 승자는 KB국민은행일까, 카카오일까.”

금융과 기술이 융합된 핀테크 시대에 돌입하면서 은행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기존 금융 사업자가 중심을 내주고 정보기술(IT)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윤주 보스턴컨설팅그룹(이하 BCG) 서울사무소 파트너는 “은행의 운영 방식과 일하는 방식에 디지털을 입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파트너는 BCG에서 금융회사의 경영전략과 디지털 뱅킹 자문을 주도하는 핵심 임원이다. 12월 18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BCG 서울사무소에서 김 파트너를 만났다.

“은행, 이대로 가면 IT 기업에 밀려날 것”
사진=서범세 기자

-현재 은행업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은행업은 규제 산업입니다. 즉 은행업 허가(라이선스)를 받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경제 사이클에서 오는 외부 충격만 잘 방어하면 굉장히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은행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만 내부 규제를 강화하다 보니 상당히 보수적으로 회사를 운영합니다. 이런 은행들에 작금의 ‘디지털 변화’는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실제 기존 은행들은 디지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입니다.”

-은행 역시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디지털’을 말합니다. 모바일 채널을 만들고 알고리즘도 개발하고 빅데이터 팀도 꾸립니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디지털 퍼스트가 되려면 기술적으로 준비돼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은행들은 그 수준이 초기 단계에 불과합니다. 단적으로 내부 개발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있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에 그칩니다. 디지털 작업을 할 때에는 외주(아웃소싱)를 줍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글로벌 은행들은 다릅니다. 골드만삭스는 직원의 40%가 IT를 담당합니다. 시스템 관리만이 아니라 개발자의 비율이 30~40%입니다. JP모간은 모든 직원에게 코딩 교육을 시킵니다. 은행을 ‘테크 컴퍼니(기술 기업)’로 바꾸기 위해 시스템을 뜯어고칩니다.

네덜란드 ING나 호주 ANZ는 1~2년 내에 전체 조직을 기술 기업처럼 바꾸는데 성공할 것입니다. 이들의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기술 기업’으로의 변신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은행에 ‘디지털의 색’을 덧입히는 정도입니다. 본질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기술 기업이 돼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은행업은 규제 산업 안에 들어와 있고 또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IT 업무가 은행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외주를 통해 ‘덧대는 수준’에서 혁신보다 안정을 추구합니다.”

-은행이 기술 기업이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 관리입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규제 강화로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고도화되면서 제1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에 큰 차이가 없어진 상황입니다. 금융의 본질이 리스크 관리인데 차별화가 없어졌다면 이제는 차별성의 관점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기술’입니다.

문제는 은행이 디지털화하는 속도보다 기술 기업들이 금융 비즈니스까지 손 뻗는 이른바 ‘테크 뱅킹’의 진입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입니다. 속도 차가 더 벌어지면 기존 은행들은 기술 기업에 사업 영역을 빼앗길 우려가 점점 더 커집니다.

최악에는 채널을 IT 기업에 내주는 대신 은행은 리스크 관리를 해주고 대형 자본을 빌려주는 인프라 산업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마존이 채널을 관리하고 씨티은행 등 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식입니다. 은행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채널 플랫폼을 빼앗긴다고 하더라도 은행 간 기술 경쟁은 치열할 것입니다. 채널을 가진 기술 기업과 연계하려면 기술 수용성을 가진 금융회사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행, 이대로 가면 IT 기업에 밀려날 것”
사진=서범세 기자

-이미 테크 뱅킹이 진행 중인데 은행의 변화가 너무 더딘 것은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은행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테크 뱅킹이 본격화되는 것에 가장 큰 걸림돌이 규제입니다.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기술 기업들이 뱅킹 라이선스를 갖고 들어오면 본업(IT)까지 규제를 받을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 회사들이 망설이고 있을 시간에 기존 은행은 보다 더 근본적인 기술 회사로의 체질 변신을 시도해야 합니다. 은행의 IT 수준이 고도화돼야 하고 고객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술 회사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은행과 기술 기업의 관점은 어떻게 다릅니까.

“은행보다 일하는 방식이 유연한 기술 기업들은 고객 중심적 사고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냅니다. 기술 기업들이 많이 하는 작업 중 하나가 고객 여정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그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에 가서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을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카카오뱅크는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편해질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본인 인증만으로 서류 제출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객 중심 사고입니다. 금융 상품에는 고객 중심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상품들이 여전히 많고 은행들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까.

“기술 기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ING의 최고경영진은 가능한 한 이르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애자일(프로그래밍에 집중한 유연한 개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I

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애자일 조직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개발자나 마케터, 리스크 관리자 등 상품 출시에 필요한 핵심 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여 짧고 반복적인 주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기존 조직은 마케팅팀과 기획팀, 리스크관리팀과 개발팀들이 순차적으로 움직인 끝에 6개월 뒤 ‘짜잔’하고 완성된 상품을 내놓는다면 애자일 조직은 각 팀의 핵심 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완의 상품을 내놓고 계속 업데이트 과정을 거칩니다. 반복된 과정을 통해 2~3개월 후 완성된 상품이 만들어지는 식입니다. 고객의 가치를 먼저 두고 전문가들이 같이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변화에 고통이 따르지 않을까요.

“디지털이 가져올 은행의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행업은 금융 사업자들이 할 것’이란 믿음, 이제는 그 믿음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변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개척하거나 변신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투자비용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방식과 모든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는 ‘규제’가 막아주고 있기에 단기간에 기존 은행업이 무너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규제 뒤에 숨을 수는 없습니다. 경쟁력을 갖고 맞서야 할 때입니다.”

◆약력 = 1976년생. 200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8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 MBA. 2003년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입사. 2008년 UBS 투자은행 홍콩 지사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2010년 웅진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2012년 BCG서울사무소 상무. 2018년 BCG 서울사무소 파트너(현).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4호(2018.12.24 ~ 2018.12.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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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12-26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