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차기 대선 후보 거론되는 이낙연과 황교안, ‘행정가’ 탈피해 ‘정치가’ 돼야
‘총리 출신 도전자’는 왜 항상 실패했을까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지난 대선 때 저런 모습을 보였으면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리가 2007년 11월 10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을 때 보여준 파격적인 모습에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무소속 대선 후보로 나선 이 전 총리는 여의도에 마련한 대선 캠프 2층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구두를 신은 채 책상 위로 올라갔다. 노타이에 점퍼를 입은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으샤, 으샤”를 외친 뒤 “이제부터 나를 총재로 부르지 말라. 우리 모두 같이 뛰는 동지”라고 했다. 이어 “발로 뛰자, 아래에서 위로, 창을 열자”는 구호를 큰 목소리로 선창하기도 했다.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 ‘점잖은 판사, 귀족적 엘리트 분위기, 서민과 거리감 있는 정치인’ 소리를 들었던 것과 확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여의도에 화젯거리가 됐다. “정치권 입문 10년이 지나서야 여의도 정치에 적응됐나 보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2007년엔 이미 ‘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던 터라 이 전 총리의 언행은 술자리 안줏감 정도에 그쳤다.

역대 총리 출신 대선 주자들이 많이 나왔지만 승리를 거머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왜 그럴까. 김종필 전 총리를 제외하고 과거 대선 주자로 거론됐던 총리들은 대부분 행정가나 학자 스타일이었다. 정치가와 행정가에게 요구되는 조건엔 차이가 있다. 정치판에서 리더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온갖 간난신고·산전수전을 겪어야 한다.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온갖 음모와 모략을 돌파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행정가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기술했다. “행정가는 데마고그(선동가)가 아니며 데마고그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데마고그가 되려고 한다면 대체로 매우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진정한 행정가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정만 하게 돼 있으며 무엇보다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을 해야 한다. 행정가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정치가·지도자나 그의 추종자들이라면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것, 즉 투쟁해서는 안 된다. 당파성·투쟁·열정·분노와 편견 등은 정치가, 특히 정치적 지도자들이 활동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이다.”


행정가에 대한 막스 베버의 조언

이 전 총리가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이런 정치가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게 그를 도왔던 참모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다른 총리 출신 대선 주자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건 전 총리다. 고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냈고 김대중 정부 때는 민선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때 다시 국무총리가 됐다. 2004년 3월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해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그해 5월 12일 탄핵 기각이 결정돼 노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뒤 국무총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두 달여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안정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유력한 대권 주자로 올라섰다.

고 전 총리는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대선 후보 3강을 형성했다. 여권 주자로 출마한다면 정동영·김근태·유시민 등을 가볍게 제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2007년 1월 16일 그는 “대결적 정치 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 부족함을 통감한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왜 중도 낙마했을까. 그는 2017년 12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는 영남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다. 그런데 호남 출신이라 그런지 여론조사상 영남에서 지지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여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를 도왔던 한 전직 의원은 “무엇보다 권력의 생리를 잘 몰랐다. 그는 전형적인 행정가 출신이었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면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를 지지한다던 의원들이 돌아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 행정에선 ‘달인’이라는 평판을 받았지만 정치판의 ‘이전투구’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를 돌파할 정치적인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채 좌절감을 맛봤다. 명성에 의지한 채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식’의 추대를 바랐다. 권력 의지 부족과 현실 정당정치의 경험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홍구·이수성·박태준·정운찬 전 총리 등도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지만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한 것도 고 전 총리의 실패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총리가 주목받는 것은 여의도 정치에 실망한 국민이 ‘전문 행정가인 총리가 국가를 경영하면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에 바탕하고 있는데, 기대 심리와 정치 현실 간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며 “선거와 정당정치라는 두터운 관문을 통과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확고한 권력 의지 부족’이 항상 문제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가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각각 여권과 보수 진영 1위에 올라 주목된다. 최근 2, 3개월 동안 거의 대부분 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총리 대망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두 사람이 부상한 것은 총리로서 큰 잡음 없이 국정을 수행했거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절제된 이미지, 좀체 실언을 하지 않는 것이 큰 강점이다.

여야 모두 뚜렷한 대권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여권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사실상 낙마하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형 강제 입원 의혹 등 여러 문제로 내상을 입었다. 보수 진영도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 올해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한 뒤 아직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리와 황 전 총리 모두 대선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이낙연 대망론’을 언급하자 “어리둥절하다. 왜 이렇게 빨리 이런 조사를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 반 가까이 남았는데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데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황 전 총리도 대선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

하지만 물밑에선 주목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11월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당직자 등과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총리가 옛 민주당 세력을 규합해 대선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황 전 총리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내년 2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 입문에 상당히 근접해 있고 시기 선택만 남은 것 같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계에서 영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총리와 황 전 총리의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이 총리는 4선 의원 출신이지만 당내 자기 세력이 거의 없다.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친노무현·친문재인계의 지지를 받는 게 관건이다. 황 전 총리도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황 전 총리 영입을 추진하는 친박계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다. 두 사람이 대선 주자로 확실한 입지를 닦으려면 정치적 리더십과 역량에 달렸다. 옹립만 기대해선 ‘기대난망’인 게 정치판의 엄연한 현실이다. 두 사람이 이전 총리 출신들의 대선 도전 흑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4호(2018.12.24 ~ 2018.12.3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