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XC, 텐센트 등 다양한 매각 시나리오…중국시장 상황 등 인수전 장기화 가능성
김정주 대표는 ‘10조원’ 지분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새해 벽두부터 게임업계가 혼란스럽다.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가 넥슨의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월 3일 업계에 따르면 김정주 대표는 본인과 부인 유정현 NXC 감사, 개인회사 와이즈키즈가 보유한 NXC 지분 전량(98.64%)을 매물로 내놓았다. NXC는 일본 상장 법인 넥슨의 최대 주주로, 47.98%를 보유하고 있고 넥슨은 넥슨코리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튿날인 1월 4일 김 대표는 “넥슨을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 회사로 만드는 데 뒷받침이 되는 여러 방안을 놓고 숙고 중에 있다”고 밝히며 간접적으로 매각설을 인정했다.

지난해 규제와 히트작의 부재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 게임업계는 넥슨의 매각 가능성으로 인해 술렁이고 있다. 당장 넥슨 직원들의 고용이 흔들릴 수 있고 동시에 국내를 대표하는 게임사가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 다양한 리스크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김정주 대표는 ‘10조원’ 지분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중국 게임 규제가 넥슨에 미친 영향은

1월 2일 기준으로 넥슨의 시가총액은 1조2626억 엔(약 13조원)이며 NXC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약 6조원을 웃돈다. 여기에 NXC가 보유한 비트스프와 스토케 등의 가치 등을 고려하면 인수가는 10조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인수 후보는 중국 최대 게임 회사인 ‘텐센트’다. 텐센트는 넥슨의 대표적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배급사로 퍼블리싱을 담당하고 있다. ‘던전앤파이터’는 넥슨의 중국 내 매출액을 견인하며 수년간 넥슨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 왔다.

KB증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넥슨의 지역별 매출액 분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49.1%에 이른다. 이동률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텐센트는 주력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퍼블리싱을 담당하고 있고 충분한 현금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력한 인수 주체로 보인다”며 향후 중국발 신규 게임의 판호(유통 허가) 발급이나 퍼블리싱 측면에서 양 사의 시너지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텐센트가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은 “한국 게임사에 주는 로열티를 회사 내부로 흡수하기 위해서”라며 “텐센트는 한 해 2조원을 한국 게임사에 로열티로 송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내부 사정도 텐센트가 넥슨에 관심을 갖도록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텐센트의 온라인 게임 서비스 허가 발급을 중단하고 온라인 게임 규제들을 연이어 내놓았다. 결국 텐센트는 포커 게임 ‘천천덕주’와 ‘몬스터헌터’의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텐센트는 매출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던 게임 사업을 중국 내부에서는 축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위 교수는 “중국 게임 시장이 정체된다면 텐센트는 해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이 높은 일본과 한국이 유력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주 대표는 ‘10조원’ 지분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정점에 오른 넥슨의 기업 가치

2009년 넥슨 인수설이 불거진 미국의 월트디즈니도 인수 후보로 꼽힌다. 디즈니가 오랜 시간 동안 넥슨에 관심을 보여 왔고 10조원대에 달하는 인수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콘텐츠 사업 강화를 위해 픽사·마블·루커스필름을 사들인 바 있다.

지난해에는 21세기폭스까지 인수하며 지식재산권(IP)을 꾸준히 늘려 가고 있다. ‘피파온라인4’ 서비스를 통해 넥슨과 협력을 맺은 바 있는 미국 일렉트로닉아츠(EA)도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글로벌 사모펀드들도 재무적 투자자(FI)로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 사모펀드가 해외 기업이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위 교수는 “넥슨에는 텐센트 등 중국 기업으로의 직접 매각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홍콩이나 미국의 사모펀드가 전면에 나서고 텐센트가 그 배후에 서는 형태의 인수 시나리오를 제기했다. 디즈니도 이와 유사한 방법을 택할 수 있다.

1994년 설립된 넥슨은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히트작을 내놓아 국내 대표 게임 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넥슨은 김정주 대표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히트작들을 확보하며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했다.

한국 게임 역사에서 맏형 격으로 분류되는 넥슨이 매각되면 국내 게임업계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넥슨이 매각되면 게임 개발사로 유지되기보다 외국 기업의 퍼블리싱 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각 과정에서 국내 기술과 인력이 유출될 수도 있다. 넥슨의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는 지난 1월 7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넥슨이 외국계 자본에 매각되면 대대적 구조조정이 일어나거나 자체 개발 역할이 축소될 것이 우려된다”며 “국내 게임 산업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넥슨이 10조원이라는 기업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위 교수는 “현재 넥슨의 가치는 2009년 디즈니가 인수를 추진했던 당시보다 상당히 치솟은 상황”이라며 “인수자들이 시간을 끌며 넥슨의 가치가 하락하기를 기다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넥슨의 기업 가치는 현재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넥슨은 중국과 한국에서 ‘던전앤파이터’와 ‘피파온라인’이 매출 상승을 견인하고 있지만 다른 게임사와 비교할 때 신규 IP의 출시가 더딘 상황이다.

또 모바일 게임 시장이 하드코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재편된 것과는 동떨어지게 캐주얼 게임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지니고 있어 실적 상승의 동력이 적다는 분석이다.

현재 넥슨의 매출액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김 대표가 매각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넥슨의 인수 주체가 누가 되든 인수전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7호(2019.01.14 ~ 2019.01.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