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자본시장법 10년…다시 그리는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
- ‘아시아 3대 금융허브’ 청사진 퇴색…규제완화, 은행 중심 타파 ‘한목소리’
“절반의 성공·절반의 실패”… 자본시장법 10년 현주소
[편집자 주]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10주년을 맞았다. 자본시장의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은 국내 금융투자업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 2009년 2월부터 시행됐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은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대한 여정’이 결실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본시장법 도입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봤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최은석 기자]“영국의 금융 빅뱅보다 강도 높은 개혁으로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2005년, 김석동 당시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한국에서도 골드만삭스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유연한 규제 환경이 필요하다.”(2018년,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탄생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꼭 10년을 맞았다. 자본시장법은 2007년 국회를 통과했고 2009년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판 골드만삭스 탄생이라는 야심 찬 포부는 ‘10년째 도돌이표’만 그리고 있다. 2005년과 2018년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언급한 두 발언은 10년의 시차를 무시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동어반복이다.


‘새로운 금융 빅뱅’을 열 것이라던 자본시장법은 지난 10년간 우리 금융시장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결국 바꾸지 못한 부분들도 적지 않다. 자본시장법을 통해 애초 바꾸고자 했던 부분들이 계속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자통법’이 ‘자본시장법’ 된 사연


자본시장법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당시 정부는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 설립을 유도하겠다며 통합금융법 구상을 발표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내 금융시장은 취약성을 드러냈다. 인수·합병(M&A) 등 기업금융을 무기로 한 론스타·골드만삭스와 같은 해외의 금융사들이 국내시장에서 손쉽게 이익을 취했다. 자본시장법 도입을 논의하면서부터 굳이 한국판 JP모간이 아닌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육성을 외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통합금융법 구상은 1986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단행한 ‘금융 빅뱅’이 그 모델이었다. 주식 매매 고정 수수료 폐지 등 은행과 증권회사 간 장벽 철폐, 외국 금융회사의 자유로운 시장 참여 등이 골자였다.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유럽의 금융 허브인 영국 런던을 찾아 원대한 포부를 밝힌다. 자본시장 장벽을 무너뜨려 2020년까지 한국을 아시아의 3대 금융 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절반의 성공·절반의 실패”… 자본시장법 10년 현주소
1년 뒤인 2005년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통합금융법의 얼개를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이 법의 이름은 ‘자본시장통합법’ 또는 줄여서 ‘자통법’으로 불렸다. 증권업·은행업·보험업 등 자본시장 관련 업종의 장벽을 없애는 일종의 ‘금융시장통합법’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업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법 적용 대상이 증권 분야로 좁혀졌다. 은행업과 보험업을 제외한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법률을 통합했다. ‘자통법’이 ‘자본시장법’이 된 사연이다.


자본시장법은 쉽게 말해 증권사·자산운용사·종금사·선물회사·신탁회사 등 자본시장을 이루는 여러 금융회사들을 ‘하나로 묶는 법’이다. 그전까지 이들 금융회사는 각자 고유의 영역을 갖고 있었다. 판매하는 금융 상품이 다르고 적용받는 법도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증권사는 주식을 사고파는 일에만 집중하고 자산운용사는 펀드를 운용하는 데만 집중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들 업종을 엄격하게 구분하던 칸막이를 허물어뜨린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금융사들의 ‘업종별 보호막’을 걷어내 경쟁력을 높이고 보다 혁신적이고 다양한 금융 상품의 탄생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법안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였다. 먼저 금융 투자 상품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정의해 다양한 금융 상품의 출현을 유도하는 ‘포괄주의 규율 체제로의 전환’이고 둘째, 증권회사와 신탁회사 등 기관별 규율 체제에서 매매업·중개업·투자자문업 등 ‘기능별 규제’로의 전환이다. 셋째, 금융 투자업 상호간에 겸영을 허용해 업무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고 넷째, 투자 권유 규제 제도를 도입해 설명 의무를 신설하는 등 투자자 보호 제도를 선진화했다.


◆자본시장법 10년, ‘덩치’ 키운 증권업계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빅뱅’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당장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논의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투자자 보호’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중시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특히 자본시장법이 첫 시행된 2009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가 본격화되던 때였다. 강력한 규제 완화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자본시장법은 이후에도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보완을 거쳤다.

‘초대형 IB’를 위한 첫 디딤돌이 놓아진 것은 2011년이었다. 정부는 자기자본이 큰 대형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기로 했다. 2년 뒤인 2013년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갖춘 5개 증권사가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당시 삼성증권·현대증권·대우증권·우리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 등이다. 이들에는 기업 신용공여와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대출, 증권 대여, 자문, 리서치 등 관련 종합 서비스)를 신사업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증권사들의 수익 모델은 브로커리지 중심이었고 글로벌 IB가 탄생하기에는 요원한 환경이었다.
“절반의 성공·절반의 실패”… 자본시장법 10년 현주소
2015년 기업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후 2016년 8월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5개 증권사가 초대형 IB로 지정됐다. 이들은 중소 증권사 인수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자기자본을 확충해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맞출 수 있었다.


자본시장법 도입 이후 10년간 국내 자본시장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쳤다. 국내 증권사들의 덩치는 몰라보게 커졌고 수익 구조 또한 상당 부분 달라졌다. 당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기자본 규모가 2조원을 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5개 증권사가 자기자본 규모 4조원을 넘어섰다. 미래에셋대우만 하더라도 2018년 8월을 기준으로 자기자본이 8조원을 넘어선다. 국내 증권사 수는 2008년 61개에서 현재 56개로 줄었지만 자본총계는 2009년 36조원에서 56조원까지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20여 건의 M&A를 통해 시장이 재편된 결과다.


브로커리지 중심의 ‘천수답’ 수익 구조도 깨지고 있다. 이미 증권사의 핵심 사업은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수수료수익 중 위탁 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 74.7%, 2015년 56.7%에서 지난해 45.8%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비해 IB 관련 수수료 수익의 비율은 2005년 9.4%에서 2015년 29.5%, 2018년 42.3%로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규제, 은행 중심 금융시장 깨야


이처럼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국내 증권사들의 덩치가 커졌어도 자기자본 규모 100조원을 거뜬히 넘어서는 골드만삭스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증권사들의 수익 비율에서 브로커리지 비율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30%가 넘는다. IB 부문의 괄목할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진행되는 대형 M&A나 계열사 매각과 같은 ‘빅딜’은 여전히 강력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외국계가 독식하고 있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리서치·리스크 관리능력을 높이고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등의 체질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글로벌 IB를 따라가기에는 힘겹다. 겉으로 보기에 덩치는 커졌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2020년 아시아 3대 금융 허브’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무색할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여전히 과도한 규제와 은행 중심의 시장 구조다. 2009년 당시 자본시장법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포괄주의(네거티브) 규율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모든 것을 금지하는 가운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항을 나열하는 기존 방식(열거주의)을 벗어나 모든 사항을 자유화하고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항만 나열하는 포괄주의로의 전환은 다양하고 혁신적인 금융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자본시장법은 사실상 ‘무늬만 포괄주의 규제’에 그치게 됐다. 2017년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찾아온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지속적인 후속 규제가 덧대기 식으로 과도하게 생산됐다”며 “예외의 예외를 낳는 후속 규제들의 속출로 자본시장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시장 참여자들의 규제에 대한 내성만 커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월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자본시장 내 금융투자업자에게 적용되는 전체 규제 건수는 총 1407건에 달한다. 이 중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규제가 1005개로 압도적이다. 더욱이 이는 금융투자업자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법규만 파악한 숫자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규제 간 충돌 문제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여전히 은행을 중심축으로 한 자본시장 구조도 견고하다. 전통적으로 국내 기업금융 시장은 은행과 정책 보증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상대적으로 자본시장의 역할이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내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 자본시장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수익률보다 안정성이 중시되면서 자본시장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 중심으로 재편됐다. 증권사를 자회사로 데려간 은행들이 수익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를 지속하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시도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조가 더욱 강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은행 중심의 자본시장은 규제 완화 문제와도 번번이 부딪쳤다. 대표적인 것이 증권업계에서 10년째 요구 중인 ‘증권사의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이다. 증권사는 은행이나 저축은행과 달리 소액 지급 결제 시스템을 ‘법인 고객’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금융위는 2007년 자본시장법을 제정할 당시만 해도 증권사에 법인 지급 결제 기능을 허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은행권의 반발이 거셌다. 국내 대기업이 은행에 넣어둔 돈을 계열 증권사로 옮겨 ‘사금고화’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게 결정적이었다. 법인 지급 결제는 IB 업무의 기본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IB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이후 기획재정부가 2015년 증권사 고객의 편의를 위해 법인 지급 결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도 적극 지지했다. 금융위도 2016년 초대형 IB에 한해 허용을 검토할 뜻을 시사했지만 상황은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10년 만의 자본시장법 대대적 개편


“2009년 자본시장법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다.” 2018년 11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자본시장 혁신 과제’를 발표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자본시장 혁신 과제’는 자본시장법 절반 이상을 수정하는 대대적인 개편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늬만 포괄주의’를 벗어나 실질적인 ‘포괄주의 규제’가 실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의지다. 금융 투자회사의 영업 행위와 기업 자산 유동화 등 부문에서 ‘열거주의’ 규제를 ‘포괄주의’로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융 투자회사의 정보 교류 차단 장치(차이니즈월), 업무 위탁 등 내부 업무 절차가 열거주의로 돼 있다. 예를 들어 금융 투자회사는 차이니즈월 규제에 따라 이해 상충의 소지가 있는 부서끼리는 사무실이나 출입구를 별도로 둬야 한다. 앞으로는 ‘정보 교류 차단 장치를 갖추라’는 일반 원칙만 지킨다면 회사가 세부 사항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절반의 성공·절반의 실패”… 자본시장법 10년 현주소
‘자본시장 혁신 과제’는 특히 ‘모험 자본시장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다. 미국의 페이스북에 투자한 골드만삭스처럼 국내에서도 한국판 구글과 테슬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는 판단이다. 혁신 기업 자금 조달 체계 전면 개선, 전문 투자자 육성과 역할 강화, 기업공개(IPO) 제도 개편과 코넥스 역할 재정립, 증권회사 자금 중개 기능 강화 4개 전략을 뼈대로 제시했다. 뒤이어 금융위는 1월 21일 이와 관련한 첫째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혁신 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 개인 투자자를 늘리고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전문 투자 중개 회사를 도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는 올해 1분기 내 사모 발행 공개 자금 모집 등 자본시장 자금 조달 체계 다양화 방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자산유동화 자금 조달은 2월 개선안을 발표하고 상반기 중 자산유동화법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투자 전문 회사(BDC)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내년 1분기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09년 자본시장법 도입과 함께 출발한 금융투자협회의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해 취임 당시부터 ‘자본시장의 혁신’을 강조해 왔다. 올해도 신년사를 통해 “자본시장 혁신 과제가 혁신 성장 촉진과 일자리 창출, 금융 투자회사의 경쟁력 증대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자본시장 혁신 과제 1탄이 IB 부문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자산 운용의 혁신 과제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업계의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권 회장은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5일부터 9일까지 국내 증권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미국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등을 돌아보며 골드만삭스와 블랙록뿐만 아니라 구글X·아마존 등 혁신 기업을 방문하기도 했다. 1월 15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개최한 ‘금융 투자업계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권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혁신 클러스터인 실리콘밸리만 하더라도 활발한 투자가 뒷받침되는 곳에 기업가 정신이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이해관계인들이 새로운 규제를 완성해 나가는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증권거래세 등 투자 세제 개편과 자본시장 혁신 과제 등의 입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인 자본시장특위를 출범시키고 입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운열 의원은 “법의 체계를 현시대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금융시장의 희망은 없다”며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가는 것은 물론 규제 중심에서 원칙주의 중심으로 법의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금융 산업이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자본시장법을 제정할 당시 포괄주의 규제를 처음으로 도입했지만 우려한 대로 하위 규정으로 가면서 포괄주의 정신이 훼손됐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세계적인 흐름이 규제 강화 분위기로 흐른 영향이 컸다. 금융 선진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우리도 따라서 규제를 강화하면서 과거로 회귀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 도입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대했던 많은 부분들이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다.


최 의원은 “학생으로 따지면 미국이나 영국은 대학원생 수준이고 한국은 초등학생 수준”이라며 “대학원생 수준의 사고 때문에 우리에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자본시장법 개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 의견-자본시장법, 기업금융 활성화 취지 살리려면?


자본시장법 10년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자본시장법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자본시장의 역할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의 실패’로 규정짓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이와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 이들도 있었다. 자본시장의 활성화가 부족한 것은 맞지만 이를 ‘자본시장법의 실패’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의견이다. 다만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들도 한 가지 점에서는 목소리가 일치했다. 향후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를 통해 ‘자본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은 “자본시장법 도입 이후 오히려 10년 전보다 자본시장이 더 취약해졌다”고 진단했다. 각 증권사 금융 상품의 수익률이 자본시장법 시행 전보다 더 떨어졌고 직접 금융시장이 조성됐지만 기업들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 위원은 “자본시장법은 근본적으로 ‘돈’의 문제인데, 돈이라는 것은 규제가 있으면 제대로 흐르기 어렵다”며 “자본시장법이 제대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에는 규제가 너무 많아 이와 같은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한 위원은 ‘경쟁 촉진적 규제’와 ‘경쟁 제한적 규제’를 구별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 촉진적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돈 문제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반드시 위기가 따르기 때문이다. 시장 인프라와 그 위에서 활동하는 주체들에 대한 규제는 튼튼히 해야 한다. 반면 ‘경쟁 제한적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쟁 제한적 규제 위주로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자본시장법이라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는 것을 먼저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큰 틀’이 마련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송 실장은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시장의 주체가 되는 플레이어들이 직접 활동하면서 느끼는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해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법령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논의하며 규제 철학을 모아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나열식으로 디테일하게 열거된 자본시장법을 반드시 금지하는 것 외에는 다 해도 된다는 식의 원칙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금융사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키워 벤처기업에 자금이 돌게 하는 정책의 방향은 바람직하다. 다만 새로운 업을 만드는데 그칠 게 아니라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가 초대형 IB로 가는 첫걸음은 글로벌 IB보다 국내 수요자를 위한 해외 맞춤 서비스 위주여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곧바로 해외 M&A에 눈을 돌리기보다 국내의 M&A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성과를 거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로벌 IB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며 “국내에서 역량을 키우고 해외 기업금융(IB) 부문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글로벌 경쟁사에 뒤지지 않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M&A 할 때 외국계 기업을 상대할만큼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우리 상황에서 제대로 된 IB는 없다고 할 수 있다”며 “국내 은행과 증권사의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예대마진과 브로커리지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와 같은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외국 증권사도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제 완화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결론적으로 국내 IB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편하게 영업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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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