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Ⅰ]

[제네바(스위스)=민지혜 한국경제 기자] 명품 시계 트렌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매년 1월 열리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 가면 한눈에 알 수 있다. SIHH는 제네바 고급시계협회(FHH)가 주최하는 박람회로 올해로 29회를 맞았다. 각 브랜드들이 올해 어떤 신제품을 내놓는지, 박람회에 참가한 바이어와 초우량 고객(VIP)들이 구입해 간 시계는 어떤 제품인지에 따라 그 해 시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spop@hankyung.com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해시태그(#) SIHH’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할 수 있게 꾸며 놓은 스튜디오.

스위스 제네바 팔엑스포 전시장에서 1월 14~17일 열린 올해 SIHH엔 역대 최대인 35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바쉐론콘스탄틴·까르띠에·피아제·예거르쿨트르·IWC·몽블랑·로저드뷔·파네라이·랑에운트죄네·보메메르시에 등 리치몬트그룹에 속한 내로라하는 명품 시계 브랜드들이 참가했다. 또 HYT·르상스·에이치모저앤씨(H.Moser&Cie) 등 창조적 시계를 선보이는 독립 브랜드들도 참가해 신제품을 공개했다. 특히 2019 SIHH에서는 예년보다 더 화려해진 여성 시계, 더 복잡해진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볼 수 있었다.


◆시계업계 ‘큰손’으로 부상한 ‘여성’을 잡아라

올해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저마다 작고 화려한 여성 시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박람회에선 묵직하고 큼지막한 남성 시계가 메인 제품이었다. 시계를 소비하는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확대되면서 신규 소비자를 영입하려는 브랜드별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한 명품 시계 브랜드 관계자는 “남성과 여성의 매출 비율이 예전엔 9 대 1이었다면 이젠 7 대 3에서 6 대 4까지 확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여성 손목에 맞도록 다이얼 크기를 더 작게, 디자인은 더 화려하게 만드는 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화려한 여성 시계는 주얼리 워치로도 불린다. 여성 시계의 강자로 꼽히는 피아제는 올해 다이아몬드와 골드로 제작한 시계를 선보여 ‘화려함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피아제의 대표 시계인 ‘포세션’ 라인에서 시계 전체를 다이아몬드로 뒤덮은 신제품을 공개했다. 또 금으로 제작한 브레이슬릿(시곗줄)과 다이얼(문자판)의 표면을 마치 파충류의 피부처럼 일일이 깎아 반짝이게 만든 신제품도 선보였다.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는 방식도 더 화려해졌다. 여러 각도에서 봐도 다 반짝이도록 다이아몬드를 마치 꽃봉오리처럼 깎아 베젤(테두리)에 세팅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오묘하게 변하는 진주조개로 다이얼 표면을 제작한 시계도 여럿 내놓았다.

기술력을 앞세우는 예거르쿨트르도 여성 시계를 강조했다. 예거르쿨트르의 대표적인 여성 시계 ‘랑데부’는 올해 문 페이즈(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기능) 디자인을 바꾸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신제품을 공개했다. 문 페이즈는 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기술력이자 시계의 기능이지만 그 자체를 예쁜 디자인으로 여기는 여성들이 많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동글동글한 구름 위에 달과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주얼리 워치로 유명한 까르띠에는 우아한 곡선 형태의 ‘베누아’와 클래식한 사각 디자인의 ‘팬더’와 ‘산토스’ 등 여성 시계 신모델을 대거 선보였다. 베누아는 베젤을 독특하게 깎아 반짝임을 극대화하거나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반짝이게 했다. 팬더는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원석을 잔뜩 세공한 고가의 하이 주얼리 워치도 여럿 공개했다. 특히 브랜드를 대표하는 표범을 형상화한 하이 주얼리 워치는 금·다이아몬드·사파이어 등의 원석으로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에 이어 둘째로 SIHH에 참가한 에르메스도 여성 시계 경쟁에 뛰어들었다. 에르메스의 ‘아쏘 레흐 드라룬’은 두 개의 달을 다이얼에 담았다. 천연운석과 사금석을 사용해 다이얼을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게 제작했다. 문 페이즈는 보통 한쪽 달의 표면만 보여주는데 이 시계에는 남반구에서 보는 달과 북반구에서 보는 달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달이 다이얼 위를 천천히 돌아다니도록 제작한 것도 예술적 측면을 중시하는 여성 소비자를 겨냥했다는 설명이다. 에르메스가 올해 처음 출시한 ‘갤롭 데르메스’는 아래가 넓은 비스듬한 사각형의 다이얼로, 원형과 사각형의 강점을 모아 세련된 여성미를 뽐냈다.

큼지막한 남성 시계로 유명한 로저드뷔와 리차드밀 등도 사이즈를 줄이거나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여성 시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로저드뷔는 대표 시계인 ‘엑스칼리버’에서 사이즈를 줄이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핑크색 ‘슈팅스타’를 출시했다. 리차드밀은 마시멜로와 사탕 등 알록달록한 디자인을 다이얼에 고스란히 담은 1억5000만~2억원대 신제품을 내놓았는데 벌써 예약 주문이 완료됐다. 리차드밀 관계자는 “여성들도 이젠 기술력은 기본이고 디자인과 색상, 화려함을 기준으로 시계를 구입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주얼리 워치로 화려함을 뽐냈다면 기술력을 총집결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브랜드 간 자존심을 겨루는 대결이다. 얼마나 더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한꺼번에 한 시계에 완벽하게 담아내는지, 복잡한 기능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동시키는지 등 기술력 경쟁이 치열한 것도 관전 포인트였다.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바쉐론콘스탄틴 트윈비트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피아제 포제션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원오프


◆브랜드 자존심 대결 ‘컴플리케이션 워치’

예거르쿨트르는 브랜드의 모든 기술력을 한데 담은 시계를 야심차게 공개했다. 기존 투르비용(중력에 따른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보다 크기를 20% 줄인 자이로 투르비용,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윤년까지 계산해 날짜를 자동으로 맞춰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다이얼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에나멜·기요셰·인그레이빙 등 모든 기술력을 ‘마스터그랑트래디션 자이로 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 캘린더’에 담은 것이다. 이 시계는 블루와 실버 2가지를 각각 18개씩만 한정 제작, 판매한다. 13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동 등에서 온 바이어들이 이미 여러 개 예약을 걸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명품 시계 브랜드 바쉐론콘스탄틴은 4년 동안 개발한 역작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수동으로 태엽을 감는 ‘트윈비트’는 파워 리저브 기능을 65일까지 늘린 혁신적 시계로 평가받았다.

이 시계는 5㎐, 1.2㎐ 2개의 진동수를 선택할 수 있어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을 때는 구동에 필요한 동력을 아낄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계의 비트를 간편하게 바꿀 수 있다. 두 달이 넘는 파워 리저브,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담았지만 가격을 2억원대로 책정한 것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1년에 3~4개밖에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 필요한 시계다.

바쉐론콘스탄틴 관계자는 “기계식 시계의 메커니즘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비트를 둘로 나눴다는 데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며 “벌써 올해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의 예약이 다 끝났다”고 말했다.

단 1개만 선보인 로저드뷔의 컴플리케이션 워치도 박람회 첫날 ‘품절’됐다. 13억9500만원에 달하는 로저드뷔의 ‘엑스칼리버 원오프’는 SIHH 첫날 싱가포르 바이어가 예약을 걸어 판매가 완료됐다.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 레이싱 타이어 전문 브랜드 피렐리와 함께 협업해 제작한 이 시계는 버튼을 눌러 태엽 감기(와인딩), 시간 조정(타임 세팅)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카본 소재를 직조해 케이스를 제작하는 등 차별화한 디자인과 소재, 기능으로 스포츠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시계다. IWC는 파일럿 워치에 처음으로 항력 투르비용을 적용한 ‘빅파일럿 워치 항력 투르비용 어린왕자 에디션’을 선보였고 몽블랑은 산악 탐험가들이 꿈꾸는 세계 7대 정상에 빨간 점을 찍어 표시한 ‘1858 지오스피어’를 출시하는 등 브랜드별 기술력 경쟁도 치열했다.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신제품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부스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도 공을 들였다. 기술력·예술성·상품성을 두루 갖춘 신제품 시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한 해의 신제품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중요한 전시회이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부스를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몇 달 전부터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몽블랑 1858 지오스피어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IWC 빅파일럿워치 항력 투르비용 어린왕자 에디션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예거르쿨트르 랑데부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까르띠에 베누아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에르메스 갤롭 데르메스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에이치모저앤씨 스위스 알프스 워치 콘셉트
더 화려하고 더 복잡해진 명품시계…스위스 SIHH서 본 올해 시계 트렌드
HYT 타임 이스 플루이드

◆시계 콘셉트 따라 부스도 화려하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예거르쿨트르 부스였다. 이 브랜드는 공방이 있는 스위스 발레 드 주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나무 냄새, 평온함을 표현하기 위해 발레 드 주 지역의 나무를 통째로 뽑아왔다. 박람회장 내부 부스 안에 실제 나무를 심은 것은 이 브랜드가 처음이다. 나무를 잘 아는 전문가가 다른 나무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350kg짜리 나무 열 그루를 캐 왔다고 한다. 부스 콘셉트를 잡는 데만 2개월, 흙으로 바닥을 덮고 나무를 옮겨와 심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나무 높이는 7m 50cm~8m 50cm에 달한다. 실내 천장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아 안쪽 천장을 뻥 뚫린 채로 설계했다. 이 때문에 예거르쿨트르 부스에 들어서면 다른 곳과 달리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풍겨왔다. 갑갑한 실내 부스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스를 꾸민 것이다.

12억원대에 달하는 슈퍼카도 등장했다. 로저드뷔는 이탈리아 슈퍼카 람보르기니와 협업한 13억9500만원짜리 초고가 신제품 시계를 공개한 이번 박람회에서 람보르기니 ‘SC18 알스톤’을 부스에 설치했다. 이 차는 중국의 푸쑹양이 구입한 차로, 로저드뷔는 푸쑹양이 창설한 세계 정상급 레이싱팀 FFF와 2016년 6월부터 파트너십을 맺었다. 람보르기니와의 협업을 기념한 신제품 ‘엑스칼리버 원오프’ 시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푸쑹양의 차를 빌려와 부스에 전시한 것이다. 로저드뷔 부스는 슈퍼카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로 늘 북적였다.
올해 주력 상품으로 파일럿 워치를 선보인 IWC는 부스를 비행기 내부처럼 꾸몄다. 일등석 고객을 위한 바(bar), 푹신한 소파 등 옛날 비행기에서 착안해 디자인했다. 또 부스 한가운데 실제 경비행기를 설치해 관람객들마다 사진을 찍었다. IWC는 VIP를 초청한 갈라 디너쇼를 열고 그 자리에 ‘스핏파이어’ 항공기를 착륙시키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영국의 파일럿 매트 존스가 이 항공기를 착륙시킨 뒤 걸어 나오는 이벤트였다. 그는 올여름부터 스핏파이어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창의적 시계 선보인 독립 브랜드들

리치몬트그룹에 속하지 않은 독립 브랜드들의 신제품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디자인은 물론 기술력·소재 등을 다양하게 제조해 독특한 시계를 찾는 바이어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다만 독립 브랜드들은 기존 대형 브랜드에 비해 생산력이 부족해 1년에 보통 20~30개, 많아야 100~200개씩밖에 만들지 못하는 곳이 태반이다. 이 때문에 차별화된 시계를 재빨리 구입하려는 시계 마니아들은 독립 브랜드 시계를 누가 먼저 구입하는지 그들만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독립 시계 브랜드 에이치모저앤씨는 올해 다이얼 전체를 새카맣게 가린 ‘스위스 알프스 워치 콘셉트 블랙’을 선보였다. 6시 방향에 투르비용만 넣었을 뿐 어디를 봐도 시간을 읽을 수 없게 했다. 왼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미닛리피터가 소리로 시간과 분을 알려주는 시계다. 기존에 핸즈(시곗바늘)로 시간을 읽었던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독립 시계 브랜드 HYT는 독자적인 액체를 활용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시계 안에 특수 가공 처리한 액체를 넣었는데, 시계 부품이 피스톨처럼 이 액체를 밀어내 현재 몇 분인지 알려주는 방식이다.

오틀랑스(Hautlence)는 3개의 디스크가 돌아가는 ‘배가본드 투르비용’을 공개했다. 6시 방향에 플라잉 투르비용을 탑재했고 마치 왈츠를 추듯 3개의 디스크가 돌아가는 구조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워치로, 파워 리저브는 3일 동안 가능하다.

올해 처음 SIHH에 참가한 보베(BOVET)는 플라잉 투르비용, 문 페이즈, 10일 파워 리저브 등의 기능을 갖춘 ‘레시탈 26’ 등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정교한 에나멜링 기법으로 다이얼을 제작한 화려한 시계들도 선보였다. 1822년부터 시작된 보베는 특히 포켓워치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손목시계는 스트랩을 풀어 줄을 엮으면 포켓워치로 활용할 수 있게 제작된다.

[돋보기]
가장 럭셔리한 ‘아날로그의 끝판왕’, 디지털과 만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매년 1월 열리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는 최고급 기계식 시계의 경연장이다. 수백 가지의 부품을 정교하게 조합해 스스로 구동되게 만드는 시계는 ‘가장 럭셔리한 방식의 아날로그 기계’로 불린다. ‘아날로그의 끝판왕’인 시계가 디지털과 만났다. 이번 SIHH에서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을 채택한 것이다.

제29회 SIHH에서는 처음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작년에는 SIHH 조형물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어 각자 이메일과 SNS 계정으로 보낼 수 있게 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올해는 각 브랜드의 최고경영자(CEO), 브랜드 앰배서더(홍보대사), 명품업계 유명 인플루언서 등이 신제품과 브랜드 철학·기술력 등을 토론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것이다. SIHH 주최 측이 이처럼 라이브 방송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SIHH를 주최한 제네바 고급시계협회(FHH)의 파비엔 루포 회장은 행사 첫날 오프닝 행사에서 “e커머스(전자상거래)·SNS 등 시계 제조사가 소비자와 소통하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가 SIHH 랩을 신설한 것도, SIHH 라이브를 생중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SIHH는 시계 바이어, 초우량 고객(VIP), 미디어 등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지금은 박람회 마지막 날을 ‘퍼블릭 데이’로 정하고 일반인들도 무료로 들어가 신제품을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이렇게 바뀐 것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최고급 기계식 시계를 선보이는 행사를 가장 빠르게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셈이다.

이번에 선보인 라이브는 각 브랜드의 CEO, 앰배서더, 시계 디자이너 등이 자사의 기술력과 예술성 등을 재미난 토크쇼 형태로 진행, 이를 생중계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몽블랑에서 5년 넘게 브랜드 앰배서더를 맡고 있는 유명 배우 휴 잭맨이 니콜라스 바레츠키 몽블랑 CEO와 함께 신제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이탈리아의 만화가 밀로 마나라와 협업한 율리스 나르덴이 마나라와 함께 그림에 대해 토론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올해 처음 시작한 ‘SIHH 랩’ 부스에도 관람객들이 몰렸다. 이곳에는 예거르쿨트르·까르띠에·로저드뷔 등 시계 제조사들의 특정 기술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코너는 물론 일본 섬유 전문 업체 시마세이키의 3차원(3D) 니트 방직기를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2대의 인공지능(AI) 로봇 ‘페퍼’도 올해 처음 등장했다. 페퍼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2013년 인수한 프랑스 휴머노이드 개발 업체 알데바란 로보틱스가 개발했다. 사람의 눈을 마주 보고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이다. 페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음. 기분이 좋아요. 내가 마치 고양이가 된 것 같아요”라고 애교를 떤다. 페퍼의 눈을 바라보고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저는 페퍼예요”라고 사람 눈을 보고 얘기해 준다. 또 “페퍼, 하이파이브”라고 외치면 손을 든 채 하이파이브를 기다려 준다. 마치 친구처럼, 반려동물처럼 소통하는 로봇을 본 관람객들은 “귀엽다” “신기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페퍼의 기본 기능은 SIHH에 참가한 브랜드 소개, 부스 안내 등이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로봇과 소통하는 것을 신기해했다. “페퍼, 오늘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최고야”라고 답하고 “제일 좋아하는 시계 브랜드는 뭐야”라고 물으면 “글쎄, 사실 다 좋은 브랜드라서 하나만 꼽을 수가 없어”라고 능청도 떨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등 2개의 언어가 입력돼 있어 관람객이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한편 SIHH는 내년부터 큰 변화를 예고했다. 매년 1월 전시를 열던 관행을 깨고 내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보석·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와 시기를 맞춰 열기로 한 것이다.

바젤월드는 매년 3월 바젤에서 열렸었다. 하지만 바젤월드의 최대 참가 기업인 스와치그룹이 “더 이상 바젤월드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위기론이 등장했다. SIHH에 매년 참가하던 오데마피게·리차드밀도 내년부터 불참을 선언하면서 위기를 느낀 SIHH와 바젤월드가 손을 잡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내년부터는 SIHH는 4월 말에 제네바에서, 바젤월드는 5월 초 바젤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12억원대 람보르기니의 슈퍼카를 부스에 설치한 로저드뷔.

바쉐론콘스탄틴 트윈비트
피아제 포세션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원오프
몽블랑 1858 지오스피어
IWC 빅파일럿워치 항력 투르비용 어린왕자 에디션
예거르쿨트르 랑데부
까르띠에 베누아
에르메스 갤롭 데르메스
에이치모저앤씨의 스위스 알프스 워치 콘셉트 블랙
HYT의 타임 이스 플루이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