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테크놀로지]
-가정용 청소기에서 차량·항공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로봇 개발보다 효율적
‘커지는 로봇화 시장’… 기존 장비·도구 개조가 로봇 시대 이끈다
[한경비즈니스=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1월에 열렸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도 로봇은 여전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큰 관심과 기대에 비해 로봇의 상용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로봇 기술의 상용화는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효과(AI Effect)’는 개발 당시 AI라고 불리던 기술이나 제품들이 일단 성공적으로 상용화되고 나면 더 이상 AI로 간주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최초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고 관련 연구·개발(R&D)의 초석을 닦은 마빈 민스키 등 당대의 AI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AI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사용 경험의 확산이 역설적으로 관련 기술들의 공헌도를 과소평가 받게 만드는 주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AI 효과의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그 누구도 AI로 보지 않는 전자계산기나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도 모두 AI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제품들이다. 이 두 가지도 한때에는 AI로 불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AI 효과는 로봇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아주 흔해 빠진 자동화 기계나 도구들 중에도 불과 수년 전에는 로봇이라고 불리던 것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도 적용되는 인공지능 효과
‘지능’, ‘교육’ 등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로봇에 대한 정의는 보는 관점과 연구 분야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관련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에서 나타난 공통점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로봇은 센서·AI·작동체(effector) 등 3대 요소로 이뤄진 인공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봇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각각 고유의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상호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우선 센서가 주변 여건을 감지하면 AI는 감지된 정보를 분석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결정하며 작동체는 결정된 대응책을 현실에 투사,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로봇과 일반적인 기계 간의 핵심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 일반 기계는 주변 여건의 변화와 무관하게 규칙적·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극히 수동적으로만 움직인다. 반면 로봇은 주변 여건의 변화에 맞춰 적절한 대응책을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로봇이 단순한 기계와 달리 능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센서와 AI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의외로 물리적 동작을 수행하는 로봇의 기구부는 일반 기계와의 차별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요소다. 용도, 경우에 따라 완성도 높은 기존 기계의 기구부를 그대로 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나 수단, 기계도 로봇으로 만들 수 있다. 용도에 적합한 센서와 AI를 추가함으로써 기존 기계를 로봇으로 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이나 방식을 가리켜 로봇화(robotize)라고 한다. 즉, 로봇화는 어떤 도구와 기계를 스스로 판단하고 작동하는 기계인 로봇이 되도록 적절하게 개조하는 일련의 과정이나 방식을 의미한다. 로봇화의 핵심은 기계가 스스로 판단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기계를 로봇화한다는 것은 자율화·스마트화·무인화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다.

로봇화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용도에 적합한 센서와 AI를 추가하고 때로는 기구부까지 개조하면 주변에 널린 많은 도구나 수단들도 충분히 로봇으로 탈바꿈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주방 도구나 거실의 가구들은 모두 로봇화의 대상이 된다. 거실 소파는 사용자의 선호도나 외부 햇살의 조도에 따라 스스로 위치를 옮겨가는 로봇화된 가구로 개조될 수 있다.

심지어 물류 창고에서 사용되는 지게차나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포클레인 등 각종 중장비들은 이미 로봇화가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로봇 중 일부도 이미 로봇화를 거친 것들이다. 로봇화된 기계 중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는 무인 항공기와 자율주행차를 들 수 있다.

갈수록 용도와 수요처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드론은 항공기가 로봇화된 결과물이다. 기존 유인 항공기에 각종 센서와 AI를 설치함으로써 인간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 항공기로 탈바꿈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항공기를 로봇화하려는 최초의 의미 있는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군에 의해 진행됐다.

당시 미군은 현역으로 투입되던 대형 폭격기를 드론으로 개조해 전략 목표 타격용 유도폭탄으로 사용한다는 아프로디테 작전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 개조 대상이 된 기종은 당대의 주력 기종인 대형 폭격기 B-17과 PB-4Y 10여 대였다. 로봇화 작업은 항공기의 조종석에서 파일럿용 시트 등 조종사 전용 장비를 철거하는 대신 계기판 주시용과 전방 시야 확보용의 카메라 2대와 원격조작 장치를 설치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물론 당시의 원격조작 기술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므로 이륙 과정을 포함한 난이도 높은 구간에서는 파일럿이 직접 조종해야 했다.

로봇화는 당분간 B2B 중심으로 진행될 전망
원격조작이 가능한 구간에 진입하면 드론에 탑승했던 파일럿이 낙하산으로 탈출하고 뒤따르던 모선 역할의 유인 항공기에서 통제권을 넘겨받아 최종 목표물까지 유도하는 식이었다. 실험 비행이 성공적이었으므로 이에 고무된 미군 지휘부는 개조된 드론들을 당장 실전에 투입했다. 하지만 실제 성과는 미미했고 때로는 비극적인 결과도 낳았다. 작전에 투입된 드론들 중 상당수는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지며 추락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최초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에도 진행된 유인 항공기의 로봇화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이던 F6F 헬켓은 오렌지색의 표적용 드론으로 사용됐고 6·25전쟁 중에는 붉은색으로 도장된 정밀유도폭탄 드론(F6F-5K)으로도 활용됐다. 지금도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은 일선에서 퇴역한 F-4 팬텀, F-16 팰컨 등의 유인 전투기들을 표적용 드론으로 개조해 실사격 훈련에 사용하고 있다.

청소기 시장에서 로봇화 속도 내
드론과 마찬가지로 무인 육상 이동체(UGV)인 자율주행차도 인간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로봇화한 것이다. 드론과 비교하면 센서와 AI가 로봇화의 기반이 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둘 간의 차이는 AI의 역할에서 나타난다. 자율주행차에 적용되는 AI는 주행 여건을 이해하고 차량의 운전 상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인간 운전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행할 정도로 주도적인 역할을 맡도록 요구 받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주변 환경과 장애물을 감지하는 카메라·레이더·라이다 등 센서류의 역할은 드론에서의 쓰임새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의 로봇화는 특수용에서부터 민수용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기존 양산되는 민수용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개조해 군사용 무인지상차량(UGV)을 개발하기도 한다. 유사 사례 중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 이스라엘의 국경 순찰용 UGV다. 이스라엘의 UGV는 미국 포드의 민간용 픽업트럭 F150에 자율주행 플랫폼과 기관총을 탑재해 군사용 UGV로 개조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일부 민수용 기계류의 로봇화 속도도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 청소기 시장에서는 로봇화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형 상업용 청소기는 카처(Karcher)·닐피스크(Nilfisk) 등 글로벌 대형 청소기 제조업체들이 자사의 완성도 높은 상업용 청소기에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인간 작업자 없이 스스로 바닥을 청소하는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샤오미 등 후발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가정용 로봇 청소기 시장에 진입했다. 중장비 분야에서도 로봇화가 진행 중이다. 건설장비 제조업체들은 기존 장비에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해 무인 굴삭기와 무인 불도저 등 각종 무인 장비류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는 2016년 무인 덤프트럭과 무인 휠로더 등 각종 자율주행 중장비의 프로토 타입을 공개한 바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국내 스타트업 기업 포테닛의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무인 굴삭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화 추세에 힘입어 카메라·라이다 등의 센서와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회사들도 글로벌 기업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017년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는 브레인OS 자율주행 플랫폼을 개발하는 브레인코프에 투자한 바 있다. 2019년 현재 브레인코프는 ICE·테넌트·미니트맨 등 다수의 상업용 청소기 제조업체들과 함께 실내 청소 로봇 개발과 출시를 속속 진행하고 있다. 또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을 위해 물류 자동화를 계속 추진하는 아마존은 1월 프랑스의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업체 발리오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발리오의 자율주행 플랫폼은 물류 창고에서 사용되는 유인 지게차를 스스로 주행하는 로봇 지게차로 개조하는 데 사용된다. 아마존은 향후 7년간 발리오로부터 최대 3억 유로 규모의 자율주행 지게차를 구매하고 그 대가로 약 29%의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전해진다.

수요 측면에서도 로봇에 대한 필요성과 구매력에서 우세한 정부나 기업이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로봇화는 국방 등의 B2G 시장과 제조, 건설, 기타 상업 서비스 등의 B2B 시장에서 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용·가정용 도구의 로봇화는 센서와 AI의 기술이 보다 보편화되는 시점부터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