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테크놀로지]
-시뮬레이션으로 효능 빠르게 예측…연구원들의 실수, 선입견도 피할 수 있어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7000여 종의 시판 약 중 에볼라를 치료할 수 있는 약 2종을 하루 만에 찾아냈다고 한다. 방대한 신약 물질과 인체 질병 관련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은 특정 질병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신약 후보 물질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인간 연구원은 한 해 약 200~300여 건의 자료를 조사할 수 있는 반면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AI는 무려 100만 건이 넘는 논문을 동시에 조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연구원이 물질의 합성 반응 등을 일일이 실험하고 검증하는 대신 AI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으로 효능을 빠르게 예측할 수도 있다.
‘하루 만에 에볼라 치료 물질 발견’ 신약 개발 혁신 몰고 온 인공지능
AI가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발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융·복합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키워드다. 첨단 IT의 등장과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IT를 접목해 비용을 절감하거나 생산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IT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농업·금융 등 여러 산업의 기업들이 앞다퉈 IT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제약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IT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에는 AI를 신약 개발에 적용하는 아이디어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AI의 강점이 오랜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신약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질병 유형은 물론 사람마다의 신체 특징, 특정 의약품에 취약한 유전적 특성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인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반복적 실험은 물론 최종 출시까지 세심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만에 하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대기업조차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면서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미국 제약 기업들은 약 15년간 약 500조원 이상을 신약 개발에 투자했는데, 이는 항공 산업의 5배 규모에 달한다.

특히 신약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우수한 성능의 신약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지가 시장 석권의 관건이다. 게다가 개발만 마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상 시험과 효능 분석 등 이후로도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종 출시까지 오랜 시간과 거액이 투자될 수밖에 없다. 신약마다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이 소요되고 투자 금액도 조 단위에 이르는 것도 많다. 특히 수천 개 이상의 물질을 대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약 수백 개 정도의 후보 물질을 선별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임상 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의 물질만 살아남을 수 있다.

혁신적 신약 개발 수단으로 부상한 AI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IT, 특히 AI를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방법이 업계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방대한 물질의 성분을 검증하는데 AI를 적용하면 기존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신약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AI가 도입되면 시간과 투자비용을 약 75%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후 이를 기초로 특정 상황이나 조건에 맞는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AI가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발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위스의 베른대 연구진은 AI 시스템이 1660억 종의 물질 데이터를 포함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현재 시판 중인 약과 효능이 동등하거나 우수한 물질을 단 3분 만에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AI 스타트업 아톰와이즈는 자사의 기술로 7000여 종의 시판 약 중 에볼라를 치료할 수 있는 약 2종을 하루 만에 찾아냈다고 한다.

게다가 AI는 기존 신약 연구 활동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약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들은 특정 분야에 시간과 역량을 집중하느라 새로운 혁신 가능성을 간과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사소한 발견이나 예기치 않았던 실험 결과가 중요한 신약 개발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만일 AI를 연구에 활용한다면 연구원들의 실수나 선입견 등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AI 등 IT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객관적 시각에서 거대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분석·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특성은 기존에 수집한 데이터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귀중한 시사점을 도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일 연구원이 신약 개발 연구를 진행하면서 AI의 데이터 처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면 잘못된 가설을 수정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장밋빛 기대에 힘입어 최근 다수 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AI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과거보다 신약 개발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반면 성공 확률은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비즈니스 경험으로 축적한 신약 개발 노하우에 AI를 접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직은 이런 시도가 초보적 수준이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듭한다면 난치병 치료 등 지금까지 매우 어려웠던 과제 해결에도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제약 기업들이 첨단 IT 역량을 독자적으로 내재화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은 외부 기술 기업과 협력해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얀센은 영국의 AI 스타트업 베네볼런트와 협력해 신약 후보 물질 평가 등 각종 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화이자는 IBM의 AI 시스템 왓슨을 이용해 보유하고 있는 질병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신약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GSK와 사노피는 엑스사이엔티아, 머크는 아톰와이즈 등 다수 AI 기술 스타트업과 함께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기술 간 긴밀한 협력 중요
이처럼 글로벌 산업 전반에 걸쳐 AI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 업무를 넘어 숙련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전문 영역에까지 AI가 확산되고 있다. 날이 갈수록 AI 구현 수준이 발전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AI 사용은 더욱 광범위한 분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AI 활용은 미래 제약업계의 중요 연구·개발 트렌드로 부상할 잠재력이 크다. 정교한 AI 기술이 적용된다면 현재 신약 개발 과정의 일부 혹은 상당수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적용 사례가 많지 않지만 AI의 고도화 추세와 제약 기업들의 관심이 맞물리면서 신약 개발에 AI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물론 AI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AI가 제한된 분야의 사고와 판단에 능숙한 반면 여러 분야를 포괄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창의성은 사람에 비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AI가 부정확한 데이터를 사용한다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연구의 상당 부분을 AI에 의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향후 신약 개발 등 제약 비즈니스에서 인간과 AI의 업무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도 업계의 주요 과제로 부상할 수 있다.
신약 개발 성공은 제약 산업 성장은 물론 의학과 바이오 등 많은 분야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를 만들 수 있다. 고성능 AI,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첨단 IT의 도입은 신약 개발 성공률 증가와 함께 연관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AI를 비롯한 IT 융·복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약과 IT는 물론 기계·의학·바이오 등 다양한 기술 분야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서로 다른 분야 간 이해와 교류를 바탕으로 시너지 창출을 위한 전략 기획과 실행 등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노력이 학계·산업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질수록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은 가시적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루 만에 에볼라 치료 물질 발견’ 신약 개발 혁신 몰고 온 인공지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