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글로벌 현장]
- 뉴욕 인근 바다에 10억 개의 굴 키워낸다…굴 한 개가 하루에 물 189리터를 정화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미국 뉴욕은 해안 도시다. 맨해튼은 섬이다. 그러다 보니 뉴욕에서는 굴 요리가 유명하다. 유명 레스토랑에 가면 대부분이 애피타이저에 생굴 요리 등을 갖추고 있다. 굴 요리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도 수십 개가 있다.
뉴욕에 생명을 불어넣는 굴,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
2011년부터 뉴욕 오이스터 위크(New York Oyster Week) 행사도 열린다. 굴이 가장 맛있을 때인 9월 중순 2주간 뉴욕 각지의 레스토랑들은 다양한 굴 요리를 선보인다. 이렇게 뉴욕에서 팔리는 굴들은 안타깝게도 뉴욕산은 아니다. 코네티컷 주와 메인 주 등 다른 지역에서 채취된 것이다. 하지만 뉴욕은 한때 세계 최대의 굴 생산지였다.

1609년 영국의 탐험가인 헨리 허드슨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청탁으로 항로 개척에 나서 뉴욕에 도달했을 당시 뉴욕 인근에는 22만 에이커(약 890㎢)에 달하는 천연 굴 암초가 있었다. 이후 유럽인들이 차차 뉴욕 인근으로 이주해 올 때 굴 암초가 너무 많아 배를 댈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바닷물은 너무나 맑았고 해산물은 풍부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풍족한 것은 굴이었다.

19세기 뉴욕의 인구가 급증했을 때 굴은 뉴요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로 떠올랐다. 거리에서는 노점상들이 굴을 핫도그처럼 팔았고 지금도 유명한 델모니코스(Delmonico’s) 등 레스토랑들은 ‘하프셸’이라고 불리는 껍데기를 반만 벗겨낸 뒤 차가운 얼음 위에 올려 여러 소스와 함께 내놓는 생굴 요리를 개발했다. 뉴요커들은 당시 매일 100만 개가 넘는 굴을 먹어치웠다. 수없이 쏟아져 나온 굴 껍데기는 분쇄돼 뉴욕의 도로 포장이나 빌딩 건설에 쓰였다. 뉴욕 맨해튼의 다운타운을 감싸고도는 펄스트리트는 굴 껍데기로 포장한 도로로 알려져 있다. 월스트리트의 명소인 트리니티교회를 지을 때 사용된 석회도 모두 굴 껍데기에서 나왔다.

한때 뉴욕에서는 전 세계 굴의 50% 정도가 채취돼 뉴욕시내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른 도시 등으로 팔려 나갔다. 뉴욕은 ‘빅 애플’이라고 불리기 전에는 ‘빅 오이스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런 급속한 굴 소비는 재앙을 가져왔다. 약 100년 만에 뉴욕에서 대부분의 굴이 남획됐다. 또 급속한 도시화 속에 해안 지역이 매립되고 빌딩을 건설하기 위한 모래 채취를 위해 끊임없이 준설하면서 굴이 서식할 공간이 사라졌다. 16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맨해튼의 면적은 매립으로 약 20%가 넓어졌다. 게다가 뉴욕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오폐수는 뉴욕산 굴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1906년 뉴욕에선 굴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1972년 미국 의회에서 오수처리법(Clean Water Act)이 통과됐다. 오폐수와 하수를 바다에 직접 버리는 게 금지되면서 굴·조개·홍합 등은 겨우 명맥을 이어 갔다. 하지만 현재 뉴욕의 굴 암초는 1700년대와 비교하면 면적으로 따져 0.01%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굴은 ‘생태 기술자’

이런 굴이 요즘 다시 뉴욕에서 생명을 찾고 있다. 아니 뉴욕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2014년 시작된 이른바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BOP : Billion Oyster Project)’다. 2035년까지 뉴욕 인근 바다에 10억 개의 굴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10월 뉴욕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샌디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뉴욕과 뉴저지 주는 허리케인이 덮치면서 큰 홍수가 발생해 182명이 숨지고 지하철과 터널이 침수되는 등 650억 달러(73조3460억원)의 재산 피해가 생겼다. 당시 무엇보다 피해가 컸던 곳은 로어 맨해튼 등 해안 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은 해안에 굴 암초 등 다른 자연적 장벽이 없어 피해를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실제 굴 암초는 수세기 동안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해안선 주변에서 폭풍 해일과 침식성 파도로부터 육지를 보호해 왔다.

이에 따라 뉴욕시는 비영리단체들과 손잡고 ‘BOP’를 발족했다. 굴 암초가 발달하면 뉴욕의 골칫거리인 습지와 해안선 침식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해서다. 굴은 방파제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굴은 오염된 바닷물을 정화해 수질을 개선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굴은 작은 섬모로 플랑크톤과 침전물 등을 빨아들인 뒤 깨끗한 물을 뱉어낸다. 또 바다를 오염시키는 하수에는 질소가 지나치게 많이 포함돼 있다. 이는 갑작스러운 녹조류 번식을 부르고 일시적으로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물고기 등 다른 해양 생물을 죽인다. 하지만 굴은 이런 질소를 흡수해 껍데기에 저장한다. 환경과학자인 베스 라빗 럿거스대 교수는 “굴은 ‘생태 기술자’로서 굴 한 개가 하루에 물 189리터를 정화한다”며 “말 그대로 더러운 물을 물리적·화학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또 굴 암초는 작은 물고기 등 각종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될 수 있다.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과거 뉴욕에는 굴을 먹는 물개도 대거 서식했었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당시 “BOP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며 “습지가 사라지는 것을 막고 수질 정화에도 도움이 되며 인근 주민에게도 자연 정화된 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시작된 BOP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굴을 키워내고 있다. 뉴욕시에 있는 70여 개 굴 전문 레스토랑과 협력해 이들로부터 소비되고 남은 굴 껍데기를 정기적으로 수거한다. BOP 측은 이를 모아 맨해튼 동쪽의 작은 섬인 거버너스섬으로 옮긴다. 약 1년 동안 외부에 노출시켜 빗물과 바람 등을 활용해 각종 유기물 등을 자연스럽게 씻어낸다. 그런 뒤 이 껍데기에 양식한 어린 굴을 부착해 뉴욕 인근의 바다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BOP는 2016년 뉴욕 공립학교에서 수거된 변기 5000개를 재활용해 굴 암초로 바꿨다. 2013년 이후 뉴욕 공립학교는 물을 절약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화장실을 설치하면서 과거에 쓰던 변기를 버려야 했는데 이를 수거해 굴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바다에 투입한 것이다. 현재 변기로 만든 굴 암초에선 수십만 개의 굴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BOP 측은 현재까지 뉴욕 바다 12곳에 변기 등을 활용한 집단 굴 암초를 만들어 투입했다. 이를 통해 2018년 말까지 약 3000만 개의 굴을 복원했다. 특히 최근에는 야생 굴의 자연적인 번식이 증가하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뉴욕에서 발견된 것으로 100년 만에 가장 큰 길이 22cm, 무게 876g의 굴이 발견돼 뉴욕타임스가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BOP를 이끄는 피트 말리노스키 이사는 “굴 암초의 복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스템에서 야생 굴의 증가가 필요하다”며 “야생 굴이 번식을 시작한다면 굴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BOP 측은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특히 어린 학생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있다. 뉴욕 시내 80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1200여 명의 고등학생, 6500여 명의 중학생들은 정기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들은 굴 암초 인근 바다의 수질을 측정하고 굴의 성장을 돕는다. 또 굴 암초 지대나 연구소 견학을 통해 해양 생태계와 뉴욕 바다에서 굴의 역할에 대해 익힌다.
말리노스키 이사는 “굴들이 뉴욕의 환경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할 때 더 많은 이니셔티브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욕에 생명을 불어넣는 굴,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