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JP모간·MUFG·미즈호 등 발행 예정…블록체인 경제의 전환점 될 것
변화에 적응하는 전통 금융 기업들의 마지막 카드 ‘스테이블 코인’
(사진)디지털 통화 ‘MUFG 코인’을 상용화하기로 결정한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종이돈과의 교환을 보증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블록체인 이슈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비트코인을 공개적으로 저주하기도 했던 JP모간이 자체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4월에는 세계 5위이자 일본 최대의 금융 기업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도 2019년 말까지 디지털 통화 ‘MUFG 코인’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1500명의 노동자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2018년 9월 편의점을 이용해 소액 결제 테스트에 성공하기도 했다. MUFG는 올해 10만 명에 달하는 계좌 소유자를 대상으로 MUFG코인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일본의 거대 은행인 미즈호금융그룹도 지불·송금 서비스를 위해 디지털 화폐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J코인 플랫폼은 기존 은행 계좌를 디지털 지갑과 직접 연결하는 프로젝트로 5600만 명의 계정을 보유한 60개 금융회사의 합작 사업으로 주목 받았다.

한편 스테이블 코인의 원조랄 수 있는 테더의 USDT는 미국 수사 당국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뉴욕 검찰은 4월 25일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파이넥스가 8억5000만 달러의 손실을 채우기 위해 테더로부터 예치금을 받은 사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테더는 USDT 발행량의 74%에 해당하는 현금만 보유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이 출렁거렸다. 테더 경영진은 그동안 USDT가 100% 법정통화와 연계돼 있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비트파이넥스가 뉴욕에서 진행하는 서비스를 중단하는 법원 명령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전통적인 금융 기업들이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과도한 비판들조차 전통적인 금융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대처할 시간을 주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의 참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반면 블록체인 시장의 확장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서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미묘한 형국도 이런 맥락에 비춰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확산이 불러온 전통 금융의 위기

전통적인 은행들의 위기는 블록체인보다 스마트폰의 확산이 불러왔다. 구글·페이스북·카카오와 같이 개인 정보를 빨아들인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애플이나 삼성과 같이 스마트폰 단말기를 제조하는 기업들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금융업의 영역에 손쉽게 도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규제만 아니었다면 이들은 진작 금융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은행이라는 중재자를 거치지 않고 대출자와 대여자를 맞춤형으로 찾아 지구적으로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다. 사람(person)과 사람을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소위 P2P 금융이라고 한다. 소액의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어떤 채무자는 방만하게 자금을 운영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히겠지만 대부분의 채무자는 성실하게 이자와 원금을 정해진 시간에 갚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차입자의 신용 등급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진다.

소액 투자의 거래비용을 대폭 낮추려면 개별적인 신용 정보가 공개돼야 하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신용을 공개해 투자자를 그러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증 기관을 거칠 때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까지 줄일 수 있다. 정부를 등에 업은 은행들이 금융 혁신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고 있지만 초연결 시대의 도래가 결국 금융의 개념을 근본부터 바꿀 것이라는 예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공룡들 간에 펼쳐지는 치열한 게임판에 블록체인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해 규칙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은행들이 스테이블 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도 블록체인이 금융 혁신에 미칠 영향력을 이용해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이 아닌 IT 기업들도 블록체인을 무기로 금융 혁신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달러나 엔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면 다수의 예금 계좌를 합법적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테이블 코인을 팔아서 받은 종이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시 은행 망을 거쳐야 하는 데다 정부가 허가해 줄지도 미지수다. 은행이라면 은행 잔액을 스테이블 코인으로 환전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이다.

스테이블 코인 자체는 신속한 소액 결제라는 점 이외에 특별한 이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결국 지구적 공급 사슬망의 근간이 된다면 스테이블 코인은 공급 사슬망을 거대한 금융 네트워크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달러나 엔화와 안정적으로 교환되는 스테이블 코인은 블록체인 공급 사슬망에서 회계 단위이자 교환의 매개, 신용의 담보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허가 받지 않은 화폐라는 개념에 대한 경제학자들과 대중의 심리적 저항을 의식해 암호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자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진정한 힘은 모든 자산들을 화폐화하는 능력이다. 블록체인상에서 코드화된 기업의 주식이나 부동산 등기는 토큰처럼 분할된다. 선적된 농산물이나 병입이 완료된 와인, 잡힌 참치까지도 토큰화되므로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팔려 나갈 수 있다. 모든 자산의 자본화와 동시에 모든 자본의 유동화가 즉시 가능하다. 블록체인의 다른 이름은 바로 신뢰망이다. 결국 블록체인은 신용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킨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고 하는 글로벌 금융 기업들은 블록체인이 금융 혁신을 제로섬 게임에서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단말기를 가장 많이 생산해 전 세계에 심어 놓은 나라가 막상 그 단말기를 매개로 지구촌 시민들을 금융망으로 묶어 내는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기존 체제에서의 우월적 지위만으로는 파괴적 혁신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경영학의 경험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줄 뿐이다.


[돋보기]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이 불러온 위기

은행 없는 금융 시대를 꿈꾸는 이들은 은행의 도덕적 해이와 신용 창출 기능이 만나 현대적인 금융 위기를 창출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2008년 미국 월가를 진원지로 했던 금융 위기는 금융공학을 이용해 월가가 창안해 낸 파생상품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수학이나 금융공학에서 훈련 받은 전문가들조차 금융상품들이 워낙 복잡해 실체에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있어 상수도나 하수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조립주택이 100만 달러에 거래되다가 거품이 꺼진 후에야 실상이 드러난 사례가 많았다. 여러 채권과 함께 뒤섞이면서 담보물에 대한 개별적인 가치 평가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때 각광 받았던 금융 파생상품들은 ‘대량 살상 무기’라는 오명을 얻고 말았다.

핀테크는 전통적 금융 기업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도덕적 해이의 해법으로 부상했다. 핀테크는 ‘직접·분산·공개·개별’이라는 키워드와 관련 있다. 직접 금융 시대에는 회사채나 주식, 담보와 신용 상태가 모두 개별적으로 평가받는다.

개별적인 회사의 장부나 개별적인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명료하다. 게다가 직접 금융은 투자자 본인이 고스란히 위험 부담을 져야 하므로 차입자나 프로젝트의 신용과 가치 평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직접 금융이 발달하면 도덕적 해이가 줄고 부실한 채권이 시장에 장시간 누적되는 일이 없으므로 금융 위기의 가능성도 줄어든다.
변화에 적응하는 전통 금융 기업들의 마지막 카드 ‘스테이블 코인’
글 =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3호(2019.05.06 ~ 2019.05.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