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제국’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새 도약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4월 초 김정주 NXC 대표가 미국의 미디어 기업 월트디즈니컴퍼니를 직접 방문해 NXC의 인수를 제안했다. NXC는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의 지주회사로, 김정주 대표와 부인 등 최대 주주가 지분 98.64%를 가지고 있다. 현재 투자은행(IB)업계에선 기업 가치가 14조원에 이르는 NXC에 대한 인수전이 한창이다. 이 가운데 NXC의 수장이 타 기업을 방문해 “우리 회사를 사 달라”고 말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김 대표가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에 자신이 키운 기업을 팔고자 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오래전부터 디즈니가 경영의 롤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넥슨의 창업 과정을 다룬 ‘플레이’라는 책에서 “디즈니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로,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또 “디즈니에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는데 아쉽게도 넥슨은 그렇지 못하다”고도 말했다.

IB업계에선 김 대표가 게임 사업이 ‘어린이들에게 게임 중독을 유발한다’는 비판을받는데 대해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NXC 매각도 넥슨을 중심으로 한 게임 사업 부문이 주된 대상이다.

김 대표가 만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영화·TV 등을 망라하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 기업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김 대표의 이례적 행보의 이유로 만약 디즈니가 넥슨을 인수하면 게임 또한 훌륭한 문화 콘텐츠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IB업계에서는 진작부터 김 대표가 디즈니에 회사를 팔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쇼트 리스트(적격 인수 후보)에 올라 있는 사모펀드들은 디즈니에 지분 투자 의향이 있느냐고 미국 측 관계사를 통해 접선했다는 후문이다.

1923년 설립된 디즈니는 창업자이자 초대 대표이사인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회사 이름 그대로 썼다. 1928년 11월 첫선을 보인 캐릭터 ‘미키 마우스’의 성공은 디즈니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에 이어 도널드 덕, 곰돌이 푸 등 수많은 인기 캐릭터들을 탄생시키며 브랜드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후 극장용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인어 공주’, ‘알라딘’ 등으로 성공을 거두며 미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현재 디즈니의 사업 영역은 미디어 기업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한다. 영화·TV·홈비디오 제작·유통, 테마파크·출판·음악 등 모든 콘텐츠 분야를 망라한다. 디즈니는 기술 발달 등 미디어 환경이 바뀔 때마다 항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선두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왔다. 일각에서 “선진국 10억 명 인구가 디즈니 속에서 태어나 디즈니를 보다가 죽는다’는 말을 하는 이유다.

디즈니의 도전이 가장 빛을 발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다. 디즈니는 전운이 짙어지던 1937년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149만9000달러를 투자,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다. 사회 분위기가 암울할수록 대중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해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1950년대엔 기존의 놀이공원과 완전히 차별화된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로 사업을 넓히며 미국의 오락 문화를 바꿔 놓았다. 놀이기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원에 디즈니 캐릭터를 덧붙여 만화 속에 들어온 듯한 테마파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현재 테마파크 사업은 디즈니의 매출에서 3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디즈니의 2018년 매출액은 594억 달러(약 67조447억원, 전년 대비 8.2%), 영업이익은 149억 달러(약 16조8176억원, 전년 대비 8.0%)에 달한다.

디즈니가 종합 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한 것은 1990년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과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사업을 펼쳤지만 이때부터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른 콘텐츠 그리고 콘텐츠와 연결된 산업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방식은 인수·합병(M&A)을 통해서였다. M&A는 디즈니의 5대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아이스너 CEO가 이끌었다. 그는 ABC와 파라마운트를 거쳐 월트 디즈니 사후에 회사의 전문 경영인으로 입사한 인물이다.
‘미디어 제국’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새 도약
◆디즈니를 성장시킨 2명의 CEO

아이스너 CEO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95년 중대 결정을 내렸다.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를 19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 인수 과정에서 미국의 대표 스포츠 채널인 ESPN을 계열사로 확보했고 디즈니는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또한 M&A와 대규모 투자를 통해 테마파크·방송사·스포츠팀·출판사·음반제작·호텔까지 산업의 반경을 확장한다.

2005년부터는 현 CEO인 로버트 아이거 CEO의 시대다. 마이클 아이스너는 디즈니를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재탄생시켰지만 ‘재무적 성과’에 지나치게 치중하며 디즈니의 뿌리인 ‘창조성’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디즈니의 근간이 흔들리며 2000년대 들어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결국 2004년 월트 디즈니의 아들인 로이 디즈니가 중심이 돼 벌인 아이스너 퇴진 운동으로 43%의 주주들이 불신임 투표를 단행했고 결국 이사회 의장에서 쫓겨나는 사상 초유의 굴욕을 경험하며 쓸쓸히 사라졌다

아이거 CEO는 취임하자마자 ‘아이스너 색깔 지우기’에 돌입했다. 아이거는 가장 먼저 아이스너가 큰 힘을 실어줬던 ‘전략기획팀’을 전격 해체했다. 디즈니 직원들은 아이스너가 전략기획팀을 통해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일이 개입한다며 불만이 컸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전략파괴팀’이라는 오명도 붙였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가 가지고 있던 ‘창조성’을 되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아이거 회장은 2006년 1월 당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운영하던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를 74억 달러를 들여 전격 인수했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몬스터’, ‘인크레더블’ 등을 만들며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업체다. 애니메이션 중심이던 디즈니에 디지털 기술을 추가, 창의성이 시들해진 디즈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조치였다.
‘미디어 제국’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새 도약
(사진)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CEO


◆전문가들은 말렸던 마블 인수

아이거 CEO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2009년 8월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선택으로 회자되는 합병을 이룬다. 바로 마블코믹스의 합병이다. 디즈니는 40억 달러(약 4조원)에 마블코믹스를 사들이고 이후 확장 세계관 계획을 이어 가는 영화 제작을 위한 독자적 스튜디오 ‘마블스튜디오’를 세워 운영한다. 당시 마블은 경영난으로 주요 캐릭터인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의 저작권을 소니픽처스와 폭스에 각각 넘긴 상태였다. 마블에 남아 있던 캐릭터는 당시 B급 히어로였던 아이언맨과 토르 등이었다. 이 때문에 디즈니의 마블 인수에 월가에서는 인수 가격이 높다며 아이거 CEO에 대한 비판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이언맨과 토르는 아이거 CEO의 손을 거치면서 특급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고 이들을 중심으로 2012년 개봉된 ‘어벤져스’ 한 편으로 인수 금액의 3분의 1인 15억 달러를 수익으로 거둬들였다.

이후 2012년 41억 달러에 ‘스타워즈’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화 제작사 루카스필름을 인수하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대부분의 판권을 손에 넣었다. 루카스필름 인수 후엔 ‘스타워즈’ 시리즈 한 편으로 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스타워즈’는 역사가 짧은 미국에선 자국의 ‘신화’로 인정받는 콘텐츠다.

또한 2014년 개인 인터넷 방송 업체 ‘메이커 스튜디오’를 인수해 회사에 소속된 수많은 1인 크리에이터들까지 영입했다. 최근에는 디즈니 인터랙티브 스튜디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게임 콘텐츠 제작 관련 사업에도 조금씩 손대고 있다.

13년간의 디즈니 CEO 경력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듯 그는 2019년 7월 예정이던 퇴임 시기를 2021년까지 미루기로 회사 측과 합의한 상태다. 당초 2015년 4월 퇴임 예정이었지만 그의 임기는 2016년 6월, 2018년 6월, 2019년 7월로 수차례에 걸쳐 연기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디즈니가 올해 또 한 번의 큰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해 디즈니의 주가는 최근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화 ‘어벤저스 :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 덕분이다. 4월 24일 개봉된 ‘엔드게임’은 5일 만에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벌어들였다. 개봉 5일 만에 ‘빌리언 달러’, 즉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린 영화는 역사상 ‘엔드게임’이 유일하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마블 시리즈이지만 이 같은 흥행 광풍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그 결과 디즈니 주가는 연초 이후 27%나 올랐다. 증권사들은 디즈니의 이익 추정치를 상향하고 나섰다. JP모간은 디즈니의 3분기 주당순이익을 1.80달러로 올렸다. 목표 주가도 137달러에서 15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디즈니의 핵심 성장 동력은 장르의 확장, 업종 간 융합, 포맷 다변화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이뤄지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은 원작의 작품을 다른 매체로 옮겨 이를 제작,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만하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디즈니는 다수의 스타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만화·테마파크·게임·뮤지컬·완구·생활용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사업 간 시너지를 창출하는 한편 안정적으로 수익의 규모를 키우고 다각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엔드게임’의 성공은 단지 영화로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디즈니라는 기업 자체의 도약을 의미한다. 실제로 2008년 ‘아이언맨’부터 2018년 ‘앤트맨’과 ‘와스프’까지 마블 작품 20편의 영화 상영만으로 디즈니는 전 세계에서 37억3700만 달러(약 4조2179억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인 영화 프랜차이즈로 기록돼 있다.

또 다른 이유는 4월 20일 마무리한 21세기폭스 인수다. 디즈니는 21세기폭스가 소유한 영화 스튜디오, TV 프로그램 제작 기능 대부분을 흡수했다. 인수 가격은 무려 710억 달러(약 80조원)에 이른다. ‘데드풀’, ‘엑스맨’ 등 21세기폭스의 인기 프랜차이즈 시리즈도 디즈니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아이거 CEO는 “회사와 주주에게 장기간 중요한 가치를 더해주는 역사적 순간”이라면서 “양 사의 창조적 콘텐츠와 뛰어난 인재가 결합하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탁월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디즈니의 폭스 M&A가 최종 확정되면서 넷플릭스가 촉발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전쟁
이 격렬해질 전망이다. 디즈니는 세계 최대 OTT 기업인 넷플릭스와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앞서 디즈니는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던 자사 콘텐츠를 내년부터 전부 철수하고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지난해 8월 선언한 바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동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시장이 전통 콘텐츠 기업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하자 디즈니도 직접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디즈니는 먼저 미국에서 2500만 가입자를 확보한 OTT 훌루를 유럽 등 세계로 확장할 계획이다. 21세기폭스는 훌루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기존에 보유하던 30%를 합해 6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미디어 제국’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새 도약
◆넷플릭스 뛰어넘을 유일한 경쟁자

여기에 하반기 ‘디즈니플러스(디즈니+)’라는 새로운 OTT를 출시해 넷플릭스와 정면 대결한다. 장기 관점에서 인지도가 높은 독자 콘텐츠들의 지식재산(IP)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는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알렉시아 쿼드러니 JP모간 애널리스트는 “디즈니플러스 플랫폼이 미국 내 4500만 가입자를 포함해 세계에서 1억6000만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가입자가 1억40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디즈니 잠재력을 짐작할 수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디즈니플러스에 마블·스타워즈·픽사·하이스쿨 뮤지컬 등의 영화·드라마와 폭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 브랜드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이거 CEO 역시 “자체 제작 콘텐츠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즈니의 OTT 서비스는 하나의 서비스가 아닌 디즈니플러스·ESPN플러스·훌루 등 세 가지가 동시에 이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준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디즈니플러스는 디즈니가 보유한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제공할 예정이고 스포츠 스트리밍 서비스 ESPN플러스는 유의미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훌루는 아직 차별화 요인이 부족하지만 추후 디즈니가 보유한 폭스와 ABC 콘텐츠의 독점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디즈니플러스는 디즈니·픽사·마블·루카스필름의 콘텐츠와 내셔널지오그래픽 콘텐츠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언급된 주요 내용은 디즈니플러스가 시청 등급이 높은 콘텐츠는 담지 않을 것이고 서비스 요금은 넷플릭스의 요금 이하로 책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경쟁력 있는 디즈니 콘텐츠가 독점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ESPN플러스는 2018년 4월 서비스를 개시한 스포츠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다. 핵심 콘텐츠는 UFC·MLB·NHL·PGA 등 스포츠 경기와 스포츠 관련 영화·TV 프로그램이다. 특히 EPSN플러스는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UFC의 페이퍼뷰를 독점 제공할 예정이다. ESPN플러스의 가입자 수는 올해 2월 기준 약 200만 명으로 5개월 만에 가입자 수가 2배가 됐다.

훌루는 넷플릭스와 유사한 서비스로 2018년 말 기준 2500만 명 가입자를 확보했다. 현재 미국에서만 서비스 중이며 넷플릭스·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이은 3등 사업자다. 훌루의 자별화 포인트는 스포츠와 TV 채널 생중계 옵션을 별도의 유료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3호(2019.05.06 ~ 2019.05.12) 기사입니다.]